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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후 간병, 하루 두번 사는 느낌”... 50% 뛴 간병비에 가족들 쓰러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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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직장인 어모(31)씨는 지난 1월부터 4개월째 요양병원에서 거의 24시간 어머니(56)를 간병한다. 어머니는 작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계속 입원 중이다. 그는 어머니 몸에 욕창이 생기지 않게 수시로 몸을 뒤집어야 하고, 끼니마다 코로 밥줄을 연결해 죽을 먹여야 한다. 병원에서 원격으로 직장 일도 한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작년 말 구한 간병인은 하루에 13만원을 달라고 했다. 도저히 감당이 어려워 직접 간병을 시작했다. 그는 “새벽에 회사 일을 하다가 오후부터 간병을 하는데, 하루를 두 번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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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간병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호소가 곳곳에서 나온다. 특히 간병인에게 드는 간병비가 크게 뛰었다. 간병인은 환자를 곁에서 돌보며 식사나 이동 등 각종 생활 편의를 봐주는 사람으로, 주로 병원이나 환자의 집에서 상주한다. 요양원 등 요양 시설이 필수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요양보호사’와 달리 각종 병원은 간병인을 고용할 의무가 없어 간병 비용은 온전히 환자 몫이다.

수요는 느는데 간병인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코로나로 중국 동포 등 외국 국적 간병인이 대폭 줄었고 감염 우려 등으로 병원 근무 기피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본지 취재 결과 일대일 관리가 필요한 중증 환자의 경우,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 7만~9만원 안팎이었던 간병비가 40~60% 안팎 올라 지금은 10만~15만원에 이른다. 1개월 기준 300만~450만원이다. 주로 간병인 1명당 환자 6명을 돌보는 공동 간병도 비슷하게 올라 한 달에 90만~150만원 안팎이다. 가족 구성원 한 명이라도 다치거나 아프게 되면, 월급보다 간병비가 더 들어 직장을 그만두거나 간병과 일을 병행하며 일상이 무너지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직장인 성모(38)씨의 90대 할머니는 지난 3월 호흡 곤란 증상으로 닷새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성씨의 60대 어머니가 간병을 맡았다. 성씨는 아이를 키우느라 간병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족들이 간병인 구인 사이트에 ‘일당 10만원’으로 글을 올렸지만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간병을 한 지 5일 만에 성씨의 어머니는 체중이 6kg이나 빠졌고 소화불량 증세도 겪었다. 성씨는 “간병이 이렇게 고되다는 걸 처음 알았다”면서 “60대 노인이 90대 노인을 돌보는 게 죄송하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간병비가 급등한 것은 코로나 여파가 크다. 한국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간병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 간병인으로 많이 일했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감염 우려나 자가 격리 부담 때문에 한국을 떠났고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전체 간병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 국적 동포라고 본다. 간병인으로 일할 수 있는 취업 비자(H-2)를 보유한 중국 국적 동포는 2019년 말 약 19만명에서 지난 3월 10만명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며 간병인 수요는 더 늘었다. 감염 우려 탓에 각 병원이 ‘한번 간병인을 입원실에 들이면 2~4주 이내엔 교체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가족 가운데 여러 명이 돌아가며 간병을 하는 게 불가능해지다 보니 직업 간병인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 것이다. 지난달 코로나 거리 두기가 해제됐지만, 이런 방침은 여전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간병인 시세는 코로나 이전 하루 7만~9만원에서 꾸준히 올라 지금은 10만~15만원에 이른다. 지난달 어머니가 뇌질환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직장인 송모(48)씨는 한 달 간병비로 450만원을 선금으로 냈다. 송씨는 “월급으론 버틸 수 없어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간병인 자체가 귀해지다 보니 환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간병인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이 너무 많다”는 불만도 코로나 전보다 더 커졌다. 보너스나 휴가 수당, 약속에 없던 밥값 등 각종 웃돈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올 초 뇌출혈로 쓰러진 60대 어머니를 위해 간병인을 2개월간 쓴 유모(38)씨는 “일당 13만원에 하기로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꼴로 10만원씩 보너스를 달라고 요구했다”면서 “어머니가 해코지를 당할까 걱정이 되는 데다 다른 사람을 구할 수도 없어 요구를 들어줬다”고 했다.

간병용품을 사실상 강매당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이모(36)씨가 폐렴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 고용한 간병인은 이씨에게 ‘간이 영수증’을 건넸다고 한다. 욕창 방지를 위해 에어매트를 12만원에 샀으니 그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전에 말도 없었고, 시중엔 비슷한 제품이 3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씨는 돈을 지불했다.

환자 가족들 입장에서 돈은 많이 드는데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조모(31)씨는 “작년 다른 가족이 병원에 방문했는데 뇌출혈 환자인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서 땀을 뻘뻘 흘리건만 간병인은 보조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만 하고 있었다”며 “땀이 고이면 욕창이 커지는데 그냥 방치한 것”이라고 했다. 드물지만 간병인이 환자를 때리고 학대하는 일도 발생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해 ‘고비용 저품질’의 간병 서비스 폐해가 더 드러났을 뿐, 근본적인 원인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무런 자격이 없어도 간병인으로 일할 수 있는 데다, 전국 간병인이 얼마나 되는지, 각 의료기관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에 대해 정부·지자체 등 누구도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은 “국회와 정부가 간병인 관련법을 도입하고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으면, 노령화 사회에서 간병 문제는 곪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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