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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서울 구의원 3분의 1이 벌써 무투표 당선... 4년전의 13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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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세 불리한 민주당, 국민의힘보다 후보 적게 낸게 주원인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서울 지역 구의원 3분의 1가량이 투표하기도 전에 이미 당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무투표 당선자는 역대 최다다. 지난 3월 대선 이후 서울 지역 판세가 국민의힘으로 넘어가면서, 더불어민주당이 4년 전 지방선거보다 후보를 적게 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선일보

지방선거 서울 구의원 무투표 당선자 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373명을 뽑는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 투표 없이 당선된 구의원만 107명이다. 무투표 당선자가 8명이던 2018년 선거와 비교하면 13배나 늘어난 것이다. 유권자의 검증과 투표로 선출돼야 할 구의원 3명 중 1명이 공천만으로 무혈입성한 것이다. 경쟁률도 1.4대1로 사실상 투표가 무의미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선거에서 250명의 구의원 후보를 냈지만, 이번엔 30명 줄어든 220명만 후보로 등록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185명에서 229명으로 더 많은 후보를 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018년 지방 선거는 민주당이 유리했기 때문에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2인 선거구를 독식하려고 후보를 2명씩 낸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판세를 불리하게 봐서 안전하게 1명만 내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지세가 강한 중랑구에서도 지난 선거(11명) 보다 3명 줄어든 8명만 등록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지세가 강한 서초·강남 지역 출마자 수를 늘렸다. 국민의힘은 강남 지역 출마자가 13명에서 15명으로 늘었지만, 민주당 후보는 11명에서 10명으로 줄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대선 전후로 서울시 선거 자체가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며 “서울시장 선거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서울 지역에서 45.7%를 득표해 국민의힘(50.5%)에 뒤졌다. 대선 결과가 그대로 지방선거로 이어진다면 낙선이 유력하기 때문에 후보 등록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원 선거에서도 강남구 제5선거구와 강남구 제6선거구 2곳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이 확정됐다. 시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나온 건 8년 만이다. 민주당은 두 곳 모두 후보를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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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투표용지 - 6·1 지방선거를 앞둔 17일 경기 성남 중원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유권자들에게 발송할 투표용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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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구의원을 암묵적으로 나눠 먹는 ‘짬짜미’ 현상도 무투표 당선자 수 폭증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 등 제3정당은 이번 무투표 당선자 수 폭증이 양당 체제 공고화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정의당 관계자는 “기초 의회 선거에는 2인 선거구가 많은데 수차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거대 양당에서 후보를 여럿 내지 않고 당선될 1명씩만 내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특히 이번엔 대선을 치르며 양당 구도가 공고해지면서 양당이 암묵적으로 한 지역에서 여럿의 후보를 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지방선거에는 바른미래당이 151명의 후보를 내면서 다수의 지역구에서 3자 구도로 선거가 진행됐었다.

정치권에서는 기초의원 선거 무투표 당선자 급증이 ‘기초 의회 무용론’에 불을 지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투표는 후보를 검증하는 기능도 하는 것인데 당에서 공천만 받으면 부적격자여도 무조건 당선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많은 유권자들이 구의회에 대해 ‘세금만 먹는 하마’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무투표 당선자 급증으로 여론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선거학회장인 강우진 경북대 교수는 “거대 양당 구도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한 경향이 있다”며 “오랜 기간 준비해서 선거에 출마하고 대표성을 얻는 게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를 뽑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양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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