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러시아 등지는 글로벌 기업들…화석연료 '중독'에 제재 한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천여개 기업, 러 사업 축소·중단…토종 기업이 빈자리 메워

원유 수출 감소에도 우크라 전쟁발 고유가에 세수 호조 전망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도주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2년 전 우리를 러시아 시장 진출로 이끌었던 희망과 장래성을 상징하는 '황금 아치'를 상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6일 직원들과 매장 운영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러시아 시장 철수 계획을 밝히면서 이같은 이유를 들었다.

황금 아치는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노란색의 'M'자 조형물로, 러시아 내 매장은 850개에 달한다.

1990년 1월 모스크바 시내 푸시킨 광장에 1호점을 연 맥도날드는 냉전 종식과 구소련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서방의 제재와 함께 글로벌 기업의 철수를 불러오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과의 대립으로 국제 금융 거래와 교역이 제한되면서 경제 타격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원유와 천연가스는 여전히 러시아의 중요한 자금줄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기업 러시아서 속속 철수 (CG)
[연합뉴스TV 제공]



◇ 외국인 투자 매력 감소…1천여개 기업, 사업 축소·중단·철수 검토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팀은 이달 16일 기준 1천여개의 글로벌 기업이 러시아 사업을 축소나 중단, 철수했거나 이같은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파악했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는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했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 가동을 멈췄다. 다국적 호텔기업 힐튼은 러시아 신규 투자를 보류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러시아 내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다만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자회사 매각은 단기간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미국, 유럽연합(EU) 국가, 일본 등 비우호국으로 분류한 국가의 기업이 러시아 자회사와 주식을 러시아 기업에 매각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외국 기업의 철수를 어렵게 한 것이다.

인수자로 서방 기업을 찾기 어렵고, 중국과 인도 등 러시아와 가까운 나라의 기업에 넘길 경우 러시아 제재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220여개 글로벌 기업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정상적인 사업을 하고 있고, 글로벌 기업이 비운 자리는 러시아 기업이 메우며 내수를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스웨덴 이케아가 영업을 중단하자 러시아 1위 가구업체 호프가 매장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서방과의 교역이 상당 부분 막히는 등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 제동이 걸리면서 심각한 경기 침체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4.7% 성장한 러시아 경제가 올해는 큰 폭의 역성장(-8.5%)을 할 것으로 지난달 전망했다. 지난 1월 예상치 2.8%와 비교하면 경제성장률이 11.3%포인트나 추락하는 것이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올해 러시아 성장률 전망치는 -10%로, IMF보다 더 비관적이다. IMF는 내년 러시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2.1%에서 -2.3%로 낮췄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지난 4월 말 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경제 제재: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서방의 경제 제재 가운데 단기적으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하고, 수출 규제를 가한 것이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코트라는 경제 제재가 지속할 경우 러시아의 성장 촉진 요인인 정보기술(IT) 등 혁신 산업 부문의 훼손, 외부와의 협력 단절, IT 엔지니어 등 인력 유출 가속으로 저성장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요구하며 시위하는 독일 환경단체
3월 15일(현지시간) 독일 동부 슈베트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활동가들이 '석유 아닌 평화'라고 쓰인 피켓과 '평화의 상징' 조형물을 들고 PCK 정유공장으로 통하는 철로를 막은 채 시위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며 수입 금지를 요구했다. [슈베트 AP/DPA=연합뉴스 자료사진]



◇ 원유·가스로 버티는 러시아…국가부도 우려 지속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우크라이나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원유와 가스가 버팀목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세계 1위, 원유는 2위 수출국이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금지했지만 EU는 주저하는 기색이다.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에 대한 EU의 수입 의존도가 30~40%에 달해 당장 끊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EU 회원국들은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어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를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할 정도로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반대가 강하다.

향후 6개월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내년 1월까지 석유제품 수입도 끊는 EU의 러시아 6차 제재안이 실현될지 불투명하다.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까지 완전히 끊는 구상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러시아가 오히려 덕을 보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러시아의 전체 수출액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작년 같은 기간보다 8% 증가한 반면 수입액은 44% 감소해 기록적인 무역흑자를 낸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에너지 연구·컨설팅업체인 리스타드에너지는 러시아가 원유 생산이 급감해도 원유 가격 급등으로 올해 세수가 작년보다 45% 많은 1천800억달러(약 229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인도와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리고 있고,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할인가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의 높은 화석 연료 의존도가 원자재 강국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약화시키는 셈이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센터의 비키 프라이스 이사는 최근 영국 매체 기고문을 통해 "EU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 등 추가 조치가 모두 실제 실행될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서방이 제재를 확대되는 한편 외국인 투자자들이 외면하면 러시아 경제에 부는 역풍이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의 국가 부도(디폴트) 우려도 여전하다.

러시아는 지난달엔 만기가 돌아온 달러 국채 원금과 이자를 유예기간 전에 상환해 디폴트 위기를 일단 넘겼다.

주혜원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16일 관련 보고서에서 "오는 27일 달러 및 유로화 국채 이자 9천900만달러(약 1천262억원)의 지급일이 도래한다"며 "앞으로도 만기 도래액이 상당하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유지되고 있어 디폴트 우려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ms1234@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