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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임종린의 53일 단식 멈춰도, 시민의 ‘#SPC_불매’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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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지회장 53일차 단식투쟁 중단

노조탈퇴 회유 등 부당노동행위 사과 촉구

체중 20㎏줄고, 혈압·혈당도 위험수위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겠다 마음 먹어”

시민들 자발적 ‘불매’…70곳 단체 공동행동


한겨레

부당노동행위 사과 등을 요구하며 지난 3월28일부터 53일째 서울 양재동 에스피씨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한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식품섬유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19일 오전 단식중단 기자회견을 한 뒤 농성천막으로 돌아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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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일차 단식을 중단합니다.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단식을 접습니다.”

19일 오전 서울 양재동 에스피씨(SPC)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임종린(38)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이 동료 조합원 부축을 받으며 어렵게 입을 뗐다. 물과 소금만 먹으며 53일 동안 천막에서 지내온 그는 체중이 20㎏ 넘게 빠져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노조 탈퇴 회유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와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건강 상태에도 단식을 이어왔다. 그러나 “회사와 10여차례 만남을 통해, (내가) 쓰러지면 이슈도 사그라들 것이라며 (회사가)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살아 끝까지 싸우려 한다”고 했다.

갈등의 뿌리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지회장은 2017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이 이뤄질 당시 파리바게뜨지회를 만들고 문제해결 촉구 투쟁에 나섰다. 그해 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불법파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체불임금 지급과 직접고용을 지시했다. 이에 에스피씨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제빵기사를 직접고용하는 대신 자회사(피비파트너즈)를 통해 고용하고, 이들의 임금을 3년 안에 본사 제빵기사 수준으로 맞추기로 ‘사회적 합의’를 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건 임 지회장을 중심으로 한 파리바게뜨지회지만, 5년 가까이 회사와 실질적인 ‘단체교섭’조차 할 수 없었다. 파리바게뜨지회가 설립된 이후 협력업체 중간관리자를 중심으로 설립된 노조(현 한국노총 산하 피비파트너즈노조)가 조합원 수가 더 많다는 이유로 교섭대표노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노조가 조합원 수를 늘려 4천명에 이르는 사이 700명이 넘었던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은 200여명대로 쪼그라들었다. 이렇게 된 배경엔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다. 관리자들은 ‘그 노조에 있으면 승진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파리바게뜨지회를 탈퇴하고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하라 회유했다. 실제 지난해 5월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은 승진에서 대거 누락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조 탈퇴 회유와 승진 차별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해 시정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파리바게뜨지회는 한국노총 노조와 별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개별교섭’을 회사에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한 사업장에 노조가 복수로 존재하는 경우, 각 노조와 개별교섭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선정된 ‘교섭대표노조’와 교섭하도록 규정한다. 회사가 교섭대표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이 오는 10월 만료될 예정이어서, 회사가 수용한다면 파리바게뜨지회와의 개별교섭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전날 임 지회장의 단식 중단 소식이 알려지자 회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대화하자”고 노조에 전했다 한다. 단식은 중단됐지만 시민들의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거대 기업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분노하는 시민들은 ‘#SPC_불매’ 해시태그를 붙이고 있다. 전날 여성·인권·노동단체 등 70여곳은 파리바게뜨·던킨도너츠·배스킨라빈스 같은 에스피씨 계열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매장 앞 1인시위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 임종린 지회장 입장문

단식 53일차, 단식을 중단합니다. 단식을 중단하는 이유는 투쟁에서 승리해서도, 투쟁을 포기해서도 아닙니다. 어제 아침 회사는 모성보호도 잘 하고 있고, 코로나19지침도 명확히 공지했고, 사회적합의도 잘 이행했다며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들에 대해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공지를 했습니다. 그간 회사와 가진 10여차례의 만남에서 한 발언들과 아침의 공지를 보며, 직원이 50일 넘게 단식을 해도 이 사태를 해결할 마음은커녕 단식, 그거 영원히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쓰러지면 이슈도 곧 사그러들겠지 하며 버티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 겠다는 마음으로 단식을 접습니다.

50여일이 넘어가는 단식에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만류해도 포기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고, 단식을 끝내면 관심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들도 살아서 노조를 지키자 이야기 하고, 또 이 투쟁을 이어받겠다며 70여개의 시민단체들이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으로 결집했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우리 문제를 알리며 불매를 조직하며 함께 싸울테니 살아서 끝까지 투쟁하자고 이야기 해주셔서 그 연대의 힘을 믿고 투쟁하려 합니다. 이제 투쟁 2막을 시작합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겠다고 했지만 단식 53일동안 여러 가지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평소보다 더 안부전화를 많이 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회사의 지속적인 감시, 뜬눈으로 밤을 지세워야 하는 고통, 치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괴로움, 무엇보다도 단식기간이 길어지면서 찾아오는 두려움과 초조함이었습니다.

하지만 53일이 그렇게 괴롭지만도 않았습니다. 매일 이어진 촛불집회를 책임져주시고 집회가 있을 때마다 저 먼 거리에서 한걸음에 달려와주신 화섬동지들, 멀리서 찾아와 주고, 톡으로, 편지로 마음을 전달해준 조합원들, SNS보고 찾아왔다며 꽃을 건내고 편지를 건네주시던 많은 시민들, 신문광고를 위해 힘 모아주신 시민들,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친구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 하시며 도와줄 일 없냐며 찾아오고 연대해주신 많은 분들. 시간을 낸다는 건 마음을 나눈다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더욱 감사했고 덕분에 단식 53일을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단식을 중단한다고 하니 화섬과 시민단체에서 릴레이 단식으로 이어 간다고 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조합원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우리 조합원을 더 이상 차별하지 마라. 제가 단식에 들어 가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괴롭힘과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함께 해 주신 조합원께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지난 5년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우리 조합원을 믿고 다시 힘을 내겠습니다. 우리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시민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분들을 믿고 함께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단식을 하면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분노와 절망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끄럽게도 단식을 하면 그래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거부할 때, 너무나 명확한 것을 부정할 때,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가 쌓여갔고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정도 이구나,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다시 한번 확인 하였습니다.

회사는 아직도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는 불법행위자에 대한 처벌도, 너무나도 당연한 휴식권과 모성보호도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나 사회적 합의는 이행되었다고 하며, 검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투쟁을 멈출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시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조합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5월 19일 단식 53일차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 임종린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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