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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택시 종일 몰아도 배달보다 못해" 서울 '심야택시 대란'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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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법인택시 업체 4곳 방문했더니>
기사 못 구해 차량이 차고지 바깥까지 늘어서
"젊은 사람은 배달·택배… 노인들만 택시 몰아"
한국일보

서울의 한 주유소에 택시 기사를 구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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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 수수료는 계속 오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택시 요금은 항상 그 자리인가요?"

18일 서울 시내 택시 운수업체 차고지에서 만난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표면화한 심야 택시 대란을 두고 첫손에 꼽히는 요인이 법인택시 운행량 감소, 보다 정확히는 법인택시 운전자 급감이다. 한국일보는 서울의 법인택시 업체 4곳을 방문해 실태를 확인했다.

택시 차고지마다 기사를 구하지 못해 서 있는 차량이 가득했다. 한 업체는 택시를 주차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차고지 밖 도로에 차량을 줄지어 세웠다. 이 업체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차고지에 택시가 없어야 정상"이라며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떠났던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12월 50.3%던 법인택시 가동률은 올해 3월 31%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법인택시 기사 수는 3만527명에서 2만622명으로 줄어들었다. 택시 가동률 100%가 의미하는 '10시간 운행-2시간 정비' 체제가 유지되려면 택시 1대당 기사 2.3명이 필요한데, 현행 가동률로 단순 계산하면 1대당 기사 수가 1명 아래로 떨어진 셈이다. 같은 기간 개인택시 면허는 4만9,000명 수준을 유지한 점에 비춰봐도, 법인택시 인력난은 이례적인 수준이다.

한국일보가 찾아간 한 운수업체는 73대의 법인택시 면허를 갖고 있는데 고용된 기사는 67명에 불과했다. 주야간 택시 운용, 휴무일 등을 감안하면 기사가 최소 167명은 필요한데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셈이다. 이 업체 채용 담당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인력난이 심했다"며 "젊은 사람들이 더는 들어오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60대 미만 기사는 10%도 안 되고 70대 이상이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이 지적하는 구인난 원인은 간단하다. 택시 영업보다 나은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배달, 택배 등 비대면 업종이 성장하면서 젊은 인력이 그리로 많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한 택시기사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주 6일 10시간을 일해야 한 달에 250만 원 정도를 겨우 벌어갈 수 있다"며 "젊은 사람이라면 배달이나 택배 등을 선택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대면 업무라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한 기사는 "최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손님들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얘길 했더니 욕을 하더라"며 "고작 1만 원 벌기 위해 이런 치욕을 감수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거리두기 해제로 심야 영업이 재개되면서 술 취한 승객들에게 곤욕을 치르는 일도 각오해야 한다.

업계가 지적하는 근본적 해법은 택시요금 인상이다. 택시 운영 방식을 버스처럼 공영제로 전환할 게 아닌 바에야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2019년부터 기본요금이 3,800원으로 동결된 상태"라며 "성인 3명이 기본 거리를 이동하면 버스 요금보다도 적은데 이게 온당한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전엔 법인택시를 오래 운전하면 개인택시 면허를 주기도 하는 등 메리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다"라며 "택시업계의 몰락은 예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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