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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단독] 법무부가 마련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법안에...대법 "신중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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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이뤄지는 2차 피해 막으려면...법무부 "증거보전절차 도입"

법원행정처 "오히려 피해자 더 자주 불러야 할 수도"

뾰족한 대안 없어...예산·인력 확보 뒤따라야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을 재판에서 증거로 쓰는 걸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조계에선 "아이가 받을 2차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동안 성폭력을 당한 미성년 피해자는 해바라기 센터 등에서 처음 진술하며 찍어놓은 영상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었습니다. 법정에 나가 두세 번 진술하며 받을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섭니다.

그런데 헌재는 "피고인의 반대 신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에 대해 반박할 기회는 줘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피고인이 원하면 이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라도 법정에 나가 진술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제 가해자 측이 다 보는 법정에서 어린아이들이 성폭력 피해를 진술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법무부가 대안을 준비해왔는데, JTBC 취재 결과 최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피해자 증언, 재판 전 증거로 인정돼도...대법 "법정에 또 나와야 할 수도"

법무부가 내놓은 대안은 '증거보전절차'를 도입하는 겁니다. 증거보전절차란 미리 증거를 보전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재판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판사에게 피해자 증언을 비롯한 각종 증거를 증거로 인정해달라고 판단을 구하는 절차입니다.

JTBC

법무부 청사 〈사진=연합뉴스〉


검사나 피고인 측이 증인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묻고 판사는 증거능력에 대해 판단하는 식으로 이뤄집니다. 통상의 증인신문 과정과 거의 유사하게 이뤄진다고 보면 됩니다.

그동안 이 절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주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증인으로 나올 사람이 사망할 우려가 있거나,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 추후에 법정에 나올 수 없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검사 또는 피고인 측에서 이 절차를 신청했습니다.

미성년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는 피고인이 반대하지 않는 이상 이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하겠다는 게 법무부의 생각입니다. 헌재가 피고인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라고 했으니, 재판 전에 피고인 측이 피해자에게 궁금한 것을 물을 기회를 주고 재판에 들어가면 더이상 피해자를 법정에 부르지 않아도 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는 여기에 대해 "오히려 피해자가 두 번, 세 번 진술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증거보전절차로 피해자를 더이상 법정에 부르지 않아도 되면 좋긴 한데, 만약 쟁점이 추가로 생기면 결국 재판에 들어가서도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녹화물 증거로 쓸 수 있다"지만 "헌재 결정 취지에 안 맞아" 비판도

법원행정처는 오히려 미성년 피해자가 직접 진술이 어려운 경우에 대한 예외조항을 확대 적용해 반대신문 없이도 이전에 찍어둔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인정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법무부 대안은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질병에 걸려 직접 진술이 어려운 경우 미리 찍어둔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여기에 더해, 전문가가 아이의 심리상태에 대해 진단하고 직접 진술이 어려운 상황이라 인정하면 이전에 찍어둔 영상녹화물이라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편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이 결국 피고인에게 반박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였던 만큼,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증거보전절차가 될 수밖에 없단 평가도 나옵니다. 법무부 젠더폭력처벌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 위원 오선희 변호사는 증거보전절차가 "피해자 증언에 대해 증거능력을 따져보며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편으로 보인다"며 법원이 지적한 우려에 대해선 "판사가 피해자를 법정에 더 부르지 않으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비대면 재판'은 늘어날 듯...법무부·법원 공감대

JTBC

〈YONHAP PHOTO-3664〉 여가부·법원행정처,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증인신문 시범사업 (서울=연합뉴스) 여성가족부와 법원행정처가 재판 과정에서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오는 11일부터 전국 8개 해바라기센터에서 '영상증인신문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고법과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화면)를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재판 모습. 2022.4.6 [대법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2-04-06 15:09:29/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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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법무부와 법원 모두 헌재가 말한 "조화로운 대안"에 대해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다만, 법원과 법무부 모두 영상중계시스템을 이용해 증인을 신문하는 방식을 늘리자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해바라기 센터를 확대 설립하고, 피해자가 이곳에서 증언을 하면 영상중계시스템을 통해 이를 법정에 송출하는 방식의 증인신문을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법무부 역시 어떤 경우라도 아동이 법정에 나가 증언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아동과 친숙한 환경에서, 아동전문조사관이 아동과 질답을 하고 이를 법정에 송출하는 식으로 신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미성년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가지 않고 자신과 친숙한 환경에서 증언하도록 해 법정에서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겁니다.

JTBC

〈YONHAP PHOTO-3668〉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증인신문 시범사업 추진 (서울=연합뉴스) 여성가족부와 법원행정처가 재판 과정에서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오는 11일부터 전국 8개 해바라기센터에서 '영상증인신문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고법(화면)과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를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재판 모습. 2022.4.6 [대법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2-04-06 15:09:36/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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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건 예산인력 확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상 증인신문 제도를 활성화한다고 해도 필요한 장치와 인력,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넉넉한 예산 확보가 필요합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 역시 "필요한 예산, 실무 인력 확충을 위한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법무부는 오는 24일까지 입법 예고를 마치고 완성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회에 법안을 내고도 실제 시행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사이 제도의 공백으로 피해를 보는 아이들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관계기관들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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