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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만물상] 바이든 “우린 땡잡았소(married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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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조상들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아끼는 일은 있어도 거꾸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치-’는 ‘위를 향하여’, ‘위로 올려’를 뜻하는 접두사다. 비슷하게 ‘치혼사(婚事)’라는 단어가 있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 자주 나온다. 가령 “옛말에도 딸은 치혼사 하고 며누리는 내리혼사 한답니다. 애당초 안 할 혼사 한 기라요” 같은 구절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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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에 견주었을 때 신부가 미모도 뛰어나고, 나이도 한참 어리고, 처갓댁 재력도 넉넉하면 ‘치혼사’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대개 신랑 쪽이 좀 더 괜찮은 경우가 많아서 박경리도 “딸은 으레 치혼사 한다”고 한 셈이다. 그런데 이것이 반대로 되면 그때 신랑은 “땡 잡았다” “수지맞았다” “대박 났다” 같은 소리를 듣는다. 짓궂은 신랑 친구들은 “네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도둑놈 장가간다”면서 농담 섞인 시샘을 한다.

▶그제 바이든 미 대통령이 공식 만찬을 하기 앞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인사하며 조크를 했다.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 윤 대통령과 저는 매리드 업(married up)한 남자들입니다.” 우리말로 치면 ‘치혼사’를 했다는 뜻이다. 결혼과 관련된 서양 조크를 200개쯤 찾아보니 신부 쪽을 꼬집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크 생산자가 주로 남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자신을 포함한 두 남편을 낮추면서 김건희 여사를 추켜세웠다.

▶몇 년 전 미네소타 대학이 37개 문화권의 1만명을 조사했더니, 여성은 자신보다 우월한 조건을 가진 남성을 고르려 했다. 여성 넷 중 셋은 평균을 웃도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신랑을 원했다. 이걸 ‘하이퍼가미’라고 한다. 카스트 제도가 있는 인도에서 두드러졌다. 연구들을 모아보면 짝을 고를 때 여성이 남성보다 더 까다롭고 신중했다. 그런데 바이든은 이걸 뒤집어서 “윤 대통령, 당신과 내가 수지맞았소”라고 한 것이다.

▶한쪽이 확연하게 기우는 혼사가 있을 때면 앙혼(仰婚)과 낙혼(落婚)이란 말을 짝을 이뤄 썼다. ‘토지’에서 하인 길상은 앙혼, 최참판댁 서희는 낙혼을 한 셈이다. 고구려의 바보 온달도 평강 공주와 혼인함으로써 ‘매리드 업’한 대표 케이스다. 김 여사가 자리를 뜬 뒤에도 바이든이 김 여사 얘기를 하며 연거푸 “뷰티풀”이라 했다 한다. 바이든이 김 여사의 외모를 높게 평가하고, 또 부부의 나이 차가 꽤 있음을 미리 알았던 것 같다.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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