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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동성결혼 안 되는 이유가 뭐죠?…그들은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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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 계기로 본 혼인신고 분투기

전산시스템 정비 뒤 동성도 혼인신고 가능

“신고 접수할 수 없다” 담당 공무원 응대에

“접수는 된다니 해달라” 준비한 말로 요구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는 동성부부 혼인”

불수리 통지서 대신 수리증명서 받을 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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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결혼식을 올린 김지현(가명·35), 이소영(가명·36)씨의 스튜디오 웨딩 사진. 김씨는 “웨딩플래너가 각각의 취향을 만족하는 드레스를 골라줘 즐겁게 웨딩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김지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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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행정기관에서 동성커플의 혼인신고 ‘접수’가 가능해졌다. 이성커플이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접수가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신고자의 성별에 관계없이 혼인신고를 접수할 수 있도록 전산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커플의 혼인신고가 처리돼 이들이 법적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프닝에 가까운 이 작은 기회를 발판 삼아 강고한 사회적 장벽에 작은 균열을 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둘(2)이 하나(1) 되는 ‘부부의 날’을 앞두고, 법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동성커플들의 험난한 혼인신고 과정을 들여다봤다.
우연히 주어진 기회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밑불이 됐다. 지난 4일 오전 9시 김규리(가명·34), 문유진(가명·34)씨가 구청에 들어섰다. 이들은 5년차 커플이다. 김씨는 민원실 번호표를 뽑아 손에 꼭 쥐었다. 번호표에는 ‘가족관계 등록신고’라는 글자와 함께 숫자 2가 적혀 있었다. 담당 공무원이 이내 숫자를 불렀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기를 낸 것은 문씨였다. 그는 ‘혼인신고서’를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든 공무원은 남편과 아내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모두 ‘2’로 시작하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혼인신고서를) 접수할 수 없다”고 했다. 문씨는 준비한 말을 꺼냈다. “혼인신고 접수는 된다고 들었으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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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가명·34), 문유진(가명·34)씨는 지난 4일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을 찾았다.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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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자의 성별에 상관없이 혼인신고 ‘접수’가 가능하도록 행정시스템이 바뀐 것은 지난 3월의 일이다. 전산시스템 오류로 이성끼리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접수가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정비한 것이다. 다만 동성 간의 혼인신고는 접수만 될 뿐 여전히 ‘수리’(처리)되지 않는다.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지현(가명·35), 이소영(가명·36)씨는 지난 10일 결혼식 1주년을 기념해 혼인신고를 하러 갔다. 이들도 “동성의 혼인신고는 접수가 안 된다”는 공무원의 말에 “접수는 할 수 있다”는 말로 응수해야만 했다. 잠깐 당황하던 공무원은 서식과 서명을 확인한 뒤, 익숙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기계적인 움직임에 김씨는 안도했다고 한다. “그 순간, 우리가 마치 ‘일반적인’ 부부로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 씨는 그날 접수증을 받아왔다. 구청은 조만간 이들에게 불수리 통지서를 우편으로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들 커플은 구청을 나오면서 “죽기 전에는 (동성커플의) 혼인신고가 수리되는 날도 오겠지?”라는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혼인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동성커플들은 혼인신고서를 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특별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규리씨는 “혼인신고 접수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우리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지현씨는 “혼인신고 접수증을 웨딩 앨범에 보관하고 있다. 액자에 넣어두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유난스럽게 보일까봐 고민 중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접수증이 별것 아니겠지만, 우리는 이 서류 하나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소영씨는 “혼인신고서를 접수하니 비로소 공적인 관계라는 의미 부여가 되는 것 같았다. 비록 ‘접수’만이었지만, 그 과정이 벅차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동성커플이 혼인신고를 하는 이유는 이성커플과 다른 목적도 있다. 문유진씨는 “곧 국외로 연수를 가는데 이성 부부처럼 배우자 비자를 받을 수 없으니 최대한 우리 사이를 증명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부부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동성 연인 전다영(27)씨와 혼인신고를 할 예정인 한진아(26)씨는 비혼주의자다. 한씨는 “나는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이라며 “제도권 밖에 흩어진 목소리를 국가 전산망에 공식적으로 기록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권리 투쟁’의 하나로 혼인신고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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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김규리·문유진씨는 그곳에서 혼인신고를 할 예정이다.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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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변화는 더디지만 세상의 편견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김지현씨는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야외 결혼식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동성 결혼식은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019년 마음이 바뀌었다.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쓴 김규진 작가의 동성 결혼식에 참석하고서다. “동성 커플도 남들처럼 똑같이 결혼식을 할 수 있구나, 우리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식 업체에서 ‘퀴어 프렌들리(성소수자 친화적)’한 웨딩플래너를 소개받으면서 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웨딩플래너는 단순한 드레스를 선호하는 김지현씨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싶어하는 이소영씨의 취향을 모두 충족하는 드레스가게를 섭외했다.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두 명이다보니, 버진로드(결혼식장에서 부부가 걷는 길)를 넓혀달라고 예식장에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의 결혼식을 진행한 웨딩업체 관계자는 “동성커플 결혼식을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세 팀 째 준비하고 있다. 한 커플은 아버님과 신부가 함께 춤을 추고 어머님이 축가를 부르시는 등 축제처럼 진행하기도 했다. 서로 사랑하는 두 분이 와서 결혼식을 하는 건데, 우리 입장에서는 동성부부라고 해서 이성부부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결혼업계에서는 동성부부 결혼식이 늘어나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규리·문유진씨 커플은 요즘 결혼반지를 알아보고 있다. 김씨는 “매장 7곳을 돌았지만 동성 커플이라고 해서 불편하게 대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고 했다. 여자 둘이 결혼반지를 낄 거라고 이야기하면 매장 직원들은 별말 없이 반지를 내보였다. 직원들은 두 사람의 손을 포개며 잘 어울리는 반지를 찾는 데 열중했다. 문씨는 “외국에 나가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고 말하자 ‘멋있다’며 대놓고 지지해 준 직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 말을 들은 매장에서 결혼반지를 맞췄다. 지난해 만남 4주년을 기념하러 갔던 레스토랑에서도 직원은 “두 분의 기념일을 축하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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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문유진씨가 받은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 이 통지서를 건넨 공무원은 이들에게 “현행법상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아 불수리 통지서를 드릴 수밖에 없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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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커플들은 혼인신고를 하니 동성결혼 법제화가 더욱 간절해졌다고 말한다. 김규리·문유진 커플이 구청에서 받은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에는 그 사유로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의 혼인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씨는 “돌이켜 생각할수록 슬펐다. (혼인신고를) 재미있는 이벤트로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불수리 사유를 눈으로 직접 읽으니 제도권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우리의 관계가) 거부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그나마 우리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이 공무원인 친구들은 기록에 남을 것이 두려워 (혼인신고 접수) 시도조차 못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김씨와 문씨는 각각 뉴질랜드 영주권자, 미국 시민권자다. 이들 나라에서는 동성결혼이 인정돼 이들은 부부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차별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김씨는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인데도 정작 모국에서는 (동성 부부로) 살아갈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게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대만·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동성결혼 법제화와 관련해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유독 한국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대만은 2017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일본 삿포로 지방법원은 지난해 3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반면 한국은 동성 관계인 사람의 혼인은 물론 피부양자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소성욱(31)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인 배우자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현행법 체계상 이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특정인 1명과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성인을 ‘생활동반자’로 보고,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생활동반자법’ 도입도 2014년 논의됐지만, 보수단체 등의 반대로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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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문유진씨가 혼인신고 때 증인으로 나선 친구들에게서 지난 14일 받은 ‘혼인신고 수리증명서’ 케이크. 김씨는 “케이크를 받는 순간 감동해 눈물이 터졌다”고 말했다.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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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김규리·문유진씨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혼인신고 때 증인으로 나선 친구들이 ‘혼인신고 수리증명서’를 새겨 넣은 축하 케이크를 선물한 것이다. “이렇게 몇 명에게 축하받을 때도 관계에 대한 무게가 느껴지는데, 수많은 하객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고 혼인신고를 하게 된다면…. 우리 관계를 제도로 인정받아, 서로의 인생을 책임지는 반려자로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소원을 빌고 난 문씨가 촛불을 껐다. 가늘고 긴 연기가 느리게 피어올랐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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