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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모아씨가 "불편한 숙소"를 운영하는 진짜 이유[플랫][보통의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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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발을 벗고 숙소에 들어간다. 큰 통창 바깥으로 대나무 숲이 보인다. 집을 둘러본다. 화장지 색이 누렇다. 나무를 베지 않고 만드는 대나무 화장지다. 커다란 샴푸, 바디워시 통은 없다. 대신 플라스틱 용기가 없는 고체 비누, 고체 치약이 있다. 플라스틱 재질의 수세미도 없다. 대신 주방에는 삼베로 만든 수세미, 친환경 주방 세제가 보인다. 수납장을 여니 다회용기가 가득하다. 숙소 근처 음식점에서 포장한 음식을 가져올 때 ‘용기내’ 빈 용기를 내고 음식을 받아오는 경험을 위함이다. 제로웨이스트 숙소 ‘모악산의 아침’을 방문할 여행객이 다른 숙소와 다르다고 느낄 지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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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서 제로웨이스트 숙소인 ‘모악산의아침’을 운영하고 있는 모아씨(활동명)가 지난달 11일 서울 동대문구 코리빙 하우스 ‘맹그로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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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의아침은 “불편한 숙소”다. 칫솔은 직접 챙겨가야 한다. 일회용품 말고 숙소에 있는 수저와 그릇을 사용하길 권장한다. 바비큐 파티는 금지다. TV도 없다. 운영자는 대신 “새소리, 바람 소리를 즐겨보”자고 제안한다. 고체 비누, 고체 치약, 다회용 먼지 클리너, 삼베수세미와 같은 ‘대안 용품’을 쓰며 쓰레기를 덜 만들고 살 수 있는 삶에 대한 상상력도 준다. 전북 전주에서 “편의를 존중하며 사고의 확장을 돕는 제로웨이스트 숙소” 모악산의아침을 운영하는 기획자 모아씨(활동명)를 지난달 11일 서울 동대문구 코리빙 하우스 ‘맹그로브’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모악산의아침’은 어떻게 제로웨이스트 숙소가 됐나요.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2018년쯤 숙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쓰레기가 어마무시하게 나오고, 청소도 너무 어려웠어요. 쓰레기 문제를 인식하고 나서 기후위기를 알게 되고, 2019년 말쯤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를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하고, 기후위기 운동도 하면서 숙소에 적용해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방안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투숙객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나요.

“벌크 샴푸 통을 볼 수 없어요. 대신 고체 비누를 잘라서 손님 숫자에 맞춰서 제공해요. 손님들은 ‘캔디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혹시 비누가 남는다면 버리지 않고 비누 망에 넣어서 동거인들과 다시 써요. 씹어서 사용하는 고체 치약이 있는데 그걸 드리기도 해요. 손님들이 ‘용기내’(다회용기를 이용해 음식점, 시장 등에서 포장을 해오는 것)를 할 수 있도록 다회용기를 비치해요. 가구들은 중고 거래한 것들이에요. 침구는 자주 상해서 버릴 수밖에 없는데, 버릴 땐 유기 동물 보호센터에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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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숙소 모악산의아침에서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고체 치약(위)과 고체 샴푸, 고체 컨디셔너, 고체 바디워시(아래 모아씨는 “손님들이 이 고체 비누를 보고 ‘캔디 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모악산의아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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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의아침을 ‘편의를 존중하며,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고 실천까지 이끌어 내는 곳’이라고 소개하던데요.

“‘제로웨이스트 숙소’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때 설명하는 게 어려웠어요. 사실 ‘편의를 존중하며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고 실천까지 이끌어내는 곳’이라는 설명은 두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한 거에요. 다양한 분야의 환경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초입이 될 수 있게끔 하는 단어가 ‘제로웨이스트’라고 생각해요. 환경, 여성, 노동, 인권 등 다양한 주제와 관련한 책도 비치해뒀어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이런 부분을 생각해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님들이 변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나요.

“가끔은 기후위기 상황이 바뀌지 않는 현실에 답답하고 무력감도 들고 황당하고 어이없고 화나고 짜증 나고 그래요. 숙소를 찾은 사람들이 갑자기 변해서,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는 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런데 모악산의아침이 제로웨이스트 숙소로 바꾸기 전과 비교해 쓰레기가 80% 정도 줄었어요. 손님들이 제로웨이스트 숙소라고 하니까, ‘쓰레기를 최대한 줄여보자’ 하는 것 같아요. 만든 쓰레기를 가져가는 분들도 있었어요. 분리배출도 잘하세요. 그럴 때마다 변하고 있다고 느껴요.”

-단순한 숙소 역할만 하지는 않던데요.

“숙소를 운영하다보니 평일에 수요가 많지 않고, 방이 4개가 있는 2층을 모두 빌리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서인지 20대 초중반이 많이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아로와’(모악산의 아침으로 와)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모와로와는 각 방마다 한 사람씩 따로 예약을 할 수 있어요. 이번 모아로와에서는 들풀 채집가와 함께 ‘들풀과 함께 산책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다양한 생김새와 감촉을 지닌 들풀을 손질하고 데치고 무치는 ‘밥상 위의 나물’도 해요. 모악산의아침의 넓고 아름다운 공간을 혼자 또는 함께 즐기고 채식, 명상 등을 할 수 있는 거죠. 올해부터는 ‘지속가능한 결혼식’도 시작해요. 지난해부터 제로웨이스트, 비건, 지역 등 키워드를 녹인 결혼식을 고민했어요. 결혼식뿐 아니라 비혼식, 돌잔치, 리마인드 웨딩 등도 환영합니다.”

-모아씨는 당장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는 ‘장’인 ‘불모지장’도 열던데요

“불모지장은 지구의 건강한 순환을 위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삶을 격려하고, 개인의 변화를 이끌고 연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숙소에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고민을 하던 찰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를 만났어요. 장터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들었어요. 농산물, 중고 옷, 책 등을 포장재 없이 판매해요. 이곳에 오신 분들은 포장 쓰레기의 문제를 인식하고 가는 거고, 공감받고 연대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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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숙소 ‘모악산의아침’에서 진행되는 ‘당장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는 장’인 ‘불모지장’. 모아씨는 “불모지장은 지구의 건강한 순환을 위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삶을 격려하고, 개인의 변화를 이끌고 연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모악산의아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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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숙소의 커뮤니티도 운영한다고 들었어요.

“커뮤니티라고 하기엔 느슨하고, 출입이 자유로운 커뮤니티를 지향해요. 제로웨이스트 숙소를 운영하면서 모르겠는 게 많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필요했어요. 그래서 알음알음 제로웨이스트 숙소 사장님들을 모았어요. 채팅방에서는 서로 ‘고체 치약이 너무 습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용하고 있냐’ ‘어떤 제로웨이스트 상품을 사용하냐’ 물으며 정보를 공유해요. 제로웨이스트 숙소라는 개념을 알리고 운영자들이 적용했으면 좋겠어서, 제가 만든 제로웨이스트 숙소 매뉴얼을 비대면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해보려고 해요.”

-앞으로 목표가 있나요

“제로웨이스트 숙소라는 단어가 길면 3년 안에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로웨이스트가 기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호텔에서 칫솔을 없애고, 비치된 샴푸를 고체로 바꾸는 등 변화가 보이고 있어요. 더 많이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제로웨이스트 상품들이 대중화되면 가격이 더 내려가고 일상 속에 공급되기 쉬워질 것 같아요. 물론 이미 있는 물건을 오래 쓰는 게 최고지만요. 생각보다 변화는 빨리 오더라고요. 3년 정도 열심히 하면 바뀌지 않을까요.”

강한들 기자 handle@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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