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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재건축 해봤자 손해만"…방배5 이문3 분양 내년으로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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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재發 주택공급 대란 ◆

매일경제

서울 서초구 한복판에 위치한 방배5구역 재건축단지 공사 현장. 일반분양 1686가구가 포함된 이 단지는 분양가 논란이 제기되면서 분양 시기가 내년 6월 이후로 연기됐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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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알짜 재건축단지로 꼽히는 문정동 136 일대 재건축조합은 지난해 10월 착공신고를 마쳤지만 분양가 산정에 난항을 겪으며 일반 286가구 분양 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된 이후 원자재가격 인상으로 자재 조달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분양가격을 자의적으로 인상할 수 없다 보니 기존 조합원들이 분양 일정 자체를 미루자고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7월 초 송파구청으로부터 분양가를 통지받을 전망이다. 예상 분양가는 3.3㎡당 3400만원 수준이지만 조합 측은 최소 3800만원 이상은 돼야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분양 일정이 다시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당 분담금만 4억3000만원 수준인 데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로 1인당 8000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며 "권리가액을 고려하면 분양가가 3400만원 수준으로 결정될 경우 일반분양을 받는 분들보다 조합원들의 부담이 더 클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재건축의 경우 일반분양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통해 조합원과 시공사가 사업성을 확보하는 구조다. 조합원들 입장에선 "손해 보며 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조합원분양가를 일반분양가보다 높여야 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우성1차 재건축의 경우 올해 초 자체적인 분양가 추산을 바탕으로 조합원 대상 설명회를 열었는데 조합원분양가가 일반분양가보다 높게 책정된 계획이 공개되자 조합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제기됐다.

대형건설사 주택사업부 관계자는 "서울 지역에서 조합원분양가가 일반분양가보다 높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꼼수를 쓰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송파구의 또 다른 재건축단지 조합원은 "조합원들의 요구에도 집행부에서 분양가를 안 알려주다 보니 걱정이 커지고 있다"며 "'일반분양분은 자재나 옵션을 안 좋게 써서 주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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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이유로 치솟는 건설 원자재가격도 이중고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분양 물량만 1686가구에 달하는 방배5구역 재건축 사업도 공사비 상승으로 분양가 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건설 물가가 오르기 이전엔 일반분양가를 3.3㎡당 5000만원 중반대로 추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비 상승으로 6000만원 이상은 나와야 사업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하도급 업체들의 공사 중단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창호·커튼월업체연합은 원자재가격 인상분을 반영해주지 않을 경우 다음달 2일부터 공사를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3일 국토교통부 산하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신규 분양한 서울 아파트 물량은 1727가구에 그쳤다. 새 땅이 부족한 서울은 공급의 대부분을 재건축·재개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곳곳서 차질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걸림돌로는 분양가상한제가 꼽힌다. 건설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비는 오르지만 상한제라는 '천장'에 막혀 사업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정비사업 조합들은 대부분 새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완화 정책을 기다려 본 뒤 본격적인 분양일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방배5구역 조합 관계자는 "윤석열정부의 분양가상한제 완화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이문3구역 재개발조합 역시 지난해 말 분양을 목표로 했으나 일정을 미룬 상황이다. 이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분양만 오는 10월에 진행하고 일반분양은 분양가상한제 완화를 기다릴 계획"이라고 했다.

공사비 상승으로 사업성이 악화되다 보니 건설사들은 오히려 수주를 꺼리는 분위기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1구역 재개발사업 주민대표자회의는 지난 4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열었지만 유찰됐다. 설명회엔 단 한 곳의 건설사도 참여하지 않았다. 4000가구 이상 대규모 사업이지만 공공재개발로 진행돼 공사비가 3.3㎡당 495만원 이하라는 조건이 붙었다. 지금의 원자재가격 상황으론 감당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918가구 규모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도 역시 최근 조합이 두 차례 시공사 입찰에 나섰지만 모두 참여하는 건설사가 없어 유찰됐다.

이미 수주를 마친 건설사들도 착공을 미루고 있다. 지난 3월 새 정부의 규제 완화 기대감에 재건축 수주가 급격히 증가했으나, 실제 착공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박철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계약 후 6개월 내에 착공에 들어가는데 요즘 워낙 자재가격이 올라서 건설사들이 착공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며 "건설사들이 오래간만에 재건축 시장에서 수주풍년을 맞이했으나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상한제가 가격 억제 기능은 상실하고 공급을 막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며 폐지 혹은 대폭 축소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당초 분양가상한제의 목표는 주변 시세를 분양가만큼으로 떨어뜨려 가격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시세차익만 남기는 로또 분양만 낳는다"며 "제 기능을 상실했다"고 했다.

[이석희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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