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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게 공정인가" 편법 스펙·표절 논란… 한동훈 장관의 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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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장관 처조카·자녀 논문 표절 의혹
한 장관 "입시 사용 계획 없는 연습용" 반박
학계 "행위 자체가 문제인데... 몰인식" 지적
"'미수'라고 부정한 과정 눈감아지는 것 아냐"
고위공직자 자녀 '편법 스펙' 행태 비판 쏟아져
한국일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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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처조카 2명이 고교 시절 쓴 논문들이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한 장관의 과거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 9일과 10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저와 관계없는 조카가 대학 간 것을 물으시면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한 장관의 자녀도 조카들의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들과 함께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이 논문들은 단어와 문장 구조만 바꾼 '교활한 표절(Sneaky Plagiarism)'이란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장관의 자녀가 아직 대학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처조카들의 경우와 다를 뿐이다. 한 장관은 "입시에 쓰이지도 않았고 입시에 쓰일 계획도 없는 습작 수준의 글을 올린 것"이라고 밝혔지만, 학계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습작용 글이라고 해도 ①약탈적 학술지에 게재한 행위 ②교활한 표절을 한 행위 자체가 문제이며,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한 장관의 인식은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학술지 철회된 처조카 논문...피해 교수 "표절 넘어 연구 조작 의심"

한국일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처조카가 고등학생 시절 작성한 논문. 2019년에 발표된 다른 논문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표절 검사 사이트 카피리크스에 따르면 이 논문의 표절률은 78.2%에 달한다. MissyUSA 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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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 장관의 처조카 2명이 작성한 논문 7편 중 4편이 학술지에서 철회됐다. 이 중 이달 11일 철회된 자폐 스펙트럼 관련 논문의 경우 학술지 측이 "일부는 문장을 통으로 베껴 문서화된 사기(fraud)에 가깝고,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철회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논문, 인터넷 저널에 올린 글들 역시 표절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미국 내 연구소에서 근무 중인 한 박사는 "얼마나 무성의하게 베꼈는지, 조카가 쓴 캘리포니아 구강위생 관련 논문에는 표절한 원본 논문에 나오는 국가 이름을 바꾸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나온다"고 꼬집었다. 브라질에 관한 연구 실험을 캘리포니아주로 바꿨는데, 결론 부분에는 다시 브라질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 장관 처조카들의 표절로 피해를 입은 이상원 뉴멕시코주립대 교수는 본보 통화에서 "단순히 표현과 문장을 베낀 표절 수준을 넘어, 실제 데이터를 모으고 연구를 수행했는지조차 의심된다"며 "조작 정황이 큰데, 이는 매우 부도덕하며 표절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처조카들은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유명 사립대학)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대 통합치대에 재학 중이거나 올해 하반기에 입학 예정이다.

한 장관 자녀 논문도 유사

한국일보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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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 장관 자녀가 처조카 2명과 '스펙 공동체'나 다름없었고, 비슷한 문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장관 자녀와 둘째 조카가 약탈적 학술지에 공동으로 게재한 'Industry 4.0 and Future of Korean Steel Sector'(4차 산업과 한국 철강 산업의 미래) 논문은 학술지 사이트에서 삭제됐다. 표절 검사 사이트인 카피리크스(Copyleaks)를 통해 검사해본 결과, 해당 논문은 게재 1년 전 발표된 해외 학술지 논문과 매우 유사했고 표절률(61.9%)도 높았다.

한 장관 자녀가 작성한 다른 글 역시 단어와 문장 구조만 바꾼 '교활한 표절'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자녀가 쓴 글 8편 중 절반이 삭제되거나 비공개 처리됐다. 한 장관 측은 이에 대해 "('4차 산업과 한국 철강 산업의 미래'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에 철회를 요청한 적 없고, 다른 글의 경우 미성년 자녀 이메일로 욕설과 모욕 등 사생활 침해가 계속돼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자녀와 조카가 작성해 '약탈적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표절 검사 사이트 카피리크스에 따르면 이 논문의 표절률은 61.9%에 달한다. 이 논문은 현재 학술지 사이트에서 삭제된 상태다. MissyUSA 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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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용이라 문제 되지 않는다? 연구윤리 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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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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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자녀 관련 의혹에 대해 "고교생이 연습용으로 하는 리포트 정도 수준의 짧은 글들을 모은 것" "고등학생이 저 정도 수준의 습작을 올린 것을 갖고 학계의 구조적 문제로 보이는 (약탈적) 학술지에 올린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과하다"라고 반박했다.

학계에선 그러나 한 장관의 발언이 연구윤리에 대한 몰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한 장관의 자녀가 작성한 글이 '습작용'이라고 하지만, ①약탈적 학술지에 출판하고 ②'교활한 표절'을 한 행위는 불법에 가깝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사립대의 A 교수는 "학술지에 게재(publish)됐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의미"라며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올리는 과정에 부모가 관여했는지, 알고도 묵인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습 과정에서 부모가 바로잡고 가르쳐야 할 문제이지, '연습용이라 문제 되지 않는다'는 태도는 매우 부적절하다"며 "이것이 한동훈식 공정인지 되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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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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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에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할 계획이 없다"는 한 장관 발언 또한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사립대의 B 교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미수'이기 때문에 부정(不正)한 과정이 눈감아지는 건 아니다"라며 "정의를 다루는 법무부 장관이 비윤리적 방법을 토대로 성취한 결과물을 두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한 장관 자녀가 쌓은 스펙이 다른 스펙을 쌓기 위해 활용됐다면 ‘간접 사용’에 가깝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무부 장관 자녀도 '편법 스펙 쌓기'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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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 모습. 뉴시스·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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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을 계기로 고위 공직자 자녀들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격에 맞지 않는' 대입용 스펙을 쌓고 있는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선 교육청의 한 정책자문관은 "조국 전 장관과 한동훈 장관 자녀 모두 부적절한 '스펙 쌓기'라는 측면에선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며 "위법한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자녀의 대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부모 모습이 공통적으로 보여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왜 가진 자들은 그런 스펙을 쌓을 수 있고, 갖지 못한 다수의 사람은 꿈조차 꿀 수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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