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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fn광장] 탁현민과 윤재순 논란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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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고위 공직자의 왜곡된 성 평등의식이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년 전에도 그랬다. 탁현민 전 청와대 비서관의 글이 문제가 됐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으면 남자 관점에서 테러를 당하는 기분'이라고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여과 없이 마구 쏟아냈다. 그런데 지금 비슷한 상황이 다시 연출됐다. 윤재순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지하철 내 성추행을 사내아이들의 장난으로 묘사했다. 게다가 부서 회식에서 여성 직원을 성추행해 징계까지 받은 전력이 있다. 과거 일을 문제 삼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10년의 세월이 고위 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성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의 논란에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언행과 진영의 논리가 그 어느 관점보다 앞서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여당은 탁 전 비서관을 감쌌고, 지금 여당은 윤 비서관을 감싼다. 그러나 탁 전 비서관의 사례가 더 좋지 않은 것은 과거의 일이었고, 충분히 사과했고, 능력이 있다는 사유로 끝까지 버텼다는 점이다. 버티면 된다는 선례를 만든 셈이다. 관용적 처리는 '아 나도 그래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주입할 수 있기에 문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고위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양성평등 의식과 도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5년간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 등 주요 선출직 공직자의 성폭력 사건은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고 공직자의 주요 덕목이 되었다. 여성인력의 사회 및 경제 참여 확대로 공직사회에 양성평등 및 인권 의식도 높아졌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2019년 개정된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 임용 결격 및 당연퇴직 사유가 되는 성범죄 범위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에서 '모든 유형의 성폭력 범죄'로 확대했다.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도 '고위 공무원 성 평등역량 강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조사 결과 척도 5점 만점에 4.4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고위 공무원을 임용하는 단계에서부터 성 평등역량을 적절하게 검증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검증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니 핀란드는 성 주류화 교육인 젠더안경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실시했으며, 국제평화연구소는 유엔 고위 지도자 훈련과정에 젠더통합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역할을 맡는 고위 공직자의 성 평등의식은 무게감이 크고 중요하다. 국민의 경각심은 높아지고 있는데 사건이 이어지는 원인에 대해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6월 지방선거 후보자의 2%가 성범죄 관련자라는 통계도 충격적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앞장서야 할 지도자들의 왜곡된 성 평등의식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향후 인사검증에서 성폭력 여부나 성차별적 발언과 행동을 했는지 검증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정치인, 고위 공직자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기준에 성 평등 관점이 투영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양성평등 사회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지향해야 할 미래이자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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