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통신비·전기료…재택근무 비용을 왜 직원이 내야하죠?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재택근무] 3회

한겨레

픽사베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네이버는 매달 15만원씩 지급하던 개인업무지원비를 지난달부터 30만원으로 늘렸다. 코로나19 이후 재택(원격)근무가 새로운 근무환경으로 자리잡으면서, 직원들이 업무에 적합한 재택근무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업무지원비 사용처도 확대돼 가구, 조명, 식자재 등을 살 수 있고, 인터넷 요금, 배달음식 결제 대금도 낼 수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24일 <한겨레>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다양한 시설을 쓸 수 있지만, 재택근무를 할 경우 이용이 어렵다.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한다”며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없는 직원들을 위해 식자재 구입비 등도 지원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심 비용 지원하지만 ‘의무’ 아닌 ‘복지’ 인식


재택근무에 필요한 비용 지원은 회사의 의무일까, 직원 복지일까? 재택근무 중 다쳤다면 산업재해일까, 개인 사고일까? 코로나19 이후 2년 동안 노동자의 근무지가 사무실 밖으로 확대되면서, 재택근무를 둘러싼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리·의무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재택근무에 소요되는 비용 지원을 ‘직원 복지’로 인식하고 있지만, 외국에선 ‘기업의 의무’로 자리잡아 가는 분위기다. 코로나 초기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한 김성환(가명·40)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회사로부터 수도·가스·전기요금 등 비용을 지원받았다. ‘집에서도 사무실과 동일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 본사의 방침에 따른 것인데, 회사는 복지포인트로 책상·책장을 살 수 있도록 했다. 김씨는 “한국은 재택근무를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는 일종의 ‘편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데, 외국인 직원들은 비용을 먼저 요구하더라”며 “처음엔 낯설었는데 돌이켜보면 당연한 요구고 방침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PC 외 간접비 주는 곳 10%대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택근무 지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지원 범위는 컴퓨터 등 기본 장비 제공으로 한정적인 편이다. 23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재택근무 시행 업체 62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77.6%의 회사가 직원들에게 피시(PC) 등을 지급했지만, 인터넷 사용료를 지급하는 곳은 16.3%, 전기료 등 간접비용을 지원하는 곳은 15.8%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노동자의 주거환경이 달라 지원 수준을 일괄적으로 결정하기 힘들다고 난색을 보이기도 한다. 한 정보기술(IT)기업 인사담당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면 재택근무를 할 때 집에 에어컨이 없는 직원이 여름철에 출근하고 싶다고 해 난감했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박아무개씨는 “재택근무자가 많을수록 사무실 유지 비용이 줄 텐데, 그 비용의 일부라도 재택근무자에게 지급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택근무 비용은 사쪽 비용 부담이 원칙”


비용에 관한 규정을 명확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갈등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회사가 재택근무를 명령하든, 노동자의 신청을 회사가 승인하든 재택근무 관련 비용을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비용 부담에 대해 회사의 재택근무 관련 규정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적었다.

실제 미국에선 회사를 상대로 한 재택근무 비용 청구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지난해 8월 웰스파고 은행 직원이 인터넷, 전화, 프린터 등 재택근무 환경 구축을 위해 지출한 비용을 보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해당 직원은 재택근무를 위해 지출한 비용이 매달 100~200달러(약 12만~25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으며, 이 신문은 비자카드, 뱅크오브아메리카 등도 같은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재택 중 다치면 산재 여부도 쟁점


집에서 일하다 다칠 경우 산업재해 인정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우리 대법원은 사업장 밖에서 회식을 한 경우에도 업무의 연장이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주가 관리하지 않는 집에서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독일의 경우 집에서 업무상 소통에 필요한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이동하다 넘어져 다친 사례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지만, 개인 우편물을 받으러 가다 넘어진 사례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재택근무라고 해서 안전보건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가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며 “재택근무자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 기준을 정해 준수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9월 고용노동부는 비용과 안전 관련 규정 등을 담은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을 발간했다. 매뉴얼에서는 ‘전화 통신비 등 직무 수행 중 합리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기업체가 지원할 것’을 권고했고, 회사는 ‘재택근무자에게 안전점검 목록을 정기적으로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했다. 정영훈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2년 동안 매뉴얼이 잘 준수됐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재택근무가 감염병 차단을 위해 임시방편 성격으로 시작된 경향이 강한데,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뉴얼을 먼저 준수할 수 있도록 독려한 뒤 입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항상 시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 신청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