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차의 테루아르와 과학] 미묘하고 복잡한 다향의 세계…AI센서가 감별하는 시대 올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흔히들 주변에서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을 가리켜 '개코'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뛰어난 후각을 지닌 개는 공항에서 마약이나 음식물을 찾아내는 탐지견뿐 아니라, 훈련을 통해 암에 걸린 환자를 찾아내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찾아내는 등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에 비해 사람은 진화 과정에서 시각 정보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후각은 많이 퇴화했다는 것이 기존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의 후각을 담당하는 신경계를 결정하는 유전자의 수도 다른 동물만큼이나 많다고 한다.

후각은 맛과 향을 감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혀에서 맛을 느끼는 것은 액체 상태의 분자를 감지하는 것이지만, 후각은 기체 분자가 코로 들어와서 여러 후각 세포와 결합해 발생한 전기적 신호를 후각 신경을 통해 뇌로 전해져 만들어지는 감각이다. 이런 다양한 시그널의 조합이 뇌에서 어우러지며 특정한 향이 감지된다. 녹차를 마실 때 우리가 느끼는 향은 녹차에서 휘발되어 나온 기체 분자가 우리 코의 수용체에 붙어서 신호를 만든 후 신경계를 통해 전달된 전기적 자극이 뇌에서 특정한 향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후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면 차나 와인을 마실 때 코를 막고 맛을 보면 된다. 아주 비싼 와인과 식초의 구분도 어려워지고, 녹차에서도 그냥 떫은맛만 느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차 전문가들은 오랜 경험과 수련을 통해서 미묘한 향의 조합을 감지하고 분석하며 기억한다. 그러다 보면, 녹차의 향이라는 것이 좀 주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향을 객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인공코'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했다. 이 분야의 고전적인 시도로 1982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 하나를 들 수 있는데, 당시 과학자들은 향수 성분의 특정 물질에 접촉하면 전기적 신호를 일으키는 인공 센서들을 설치하고 각 센서들의 신호 강도 조합들로부터 하나의 '향'이라고 하는 것을 정의해서 이를 수치화했다. 지금 보면 간단한 기술이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시도였다. 이런 '인공코' 기술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화학 물질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만드는 것과 여기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조합의 전기 신호를 어떻게 처리하고 정리해서 향으로 정의하는지 하는 문제다. 센서 개발은 이미 알려져 있는 화학 기술로 개선할 수 있는 분야지만, 신호 처리의 경우는 좀 복잡한 문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혹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활용한 신호 처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해당 기술은 우리가 개별 작용 원리를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많은 데이터가 있다면 이들을 여러 층위의 전자 신경망에서 계속해서 학습시키면서 컴퓨터가 어떤 패턴을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엄청나게 빠른 계산 능력을 확보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을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법의 개발로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복잡한 자료들을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바둑과 같이 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해야 하는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알파고(AlphaGo)'이고, 최근에는 과학 분야의 난제 중 하나인 복잡한 단백질 3차 구조를 예측하는 프로그램까지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기술을 접목시켜 차를 구분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든 사례도 있다.

기존에 과학적인 맛과 향의 평가란, 차를 구성하고 있는 화합물의 성분과 농도를 화학적으로 분석한 후 전문가가 맛보고 평가한 것을 서로 비교해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러데 최근 영국과 인도의 과학자들은 차에서 나오는 방향족 화합물을 감지하는 금속 산화물 센서를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패턴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인공코'는 제조 방식이 조금씩 다른, 그렇지만 모두 '아삼(Assam) 차'라고 불리는 비슷한 차들을 모두 정확히 구분해냈다. 아직도 콧대 높은 전문가나 소믈리에들이 '인공코'의 능력을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차의 맛과 향을 정확하게 감별해내는 '알파 인공코'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강호정 연세대 공과대학 아모레퍼시픽 녹차유산균 연구센터 자문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