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통신사 5G 부당이득 3兆]④ 공짜폰 된 갤S22 차비 15만원 ‘덤’… 5G 서비스는 뒷전 불법보조금 경쟁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통신사



직장인 이선민(34)씨는 지난 23일 오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스마트폰 성지(聖地) 글을 보고, 서울 시내의 한 통신사 판매점을 찾았다. 이씨는 점원에게 삼성전자의 최신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 갤럭시S22의 가격을 물었다. 직원은 조심스레 숫자 15가 적힌 계산기를 꺼내 들어 보여줬다. 출고가 99만9000원의 갤럭시S22를 15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횡재’였다. 하지만 점원이 말한 15는 ‘차비 15만원’을 뜻하는 말이었다. 갤럭시S22의 단말기 값이 ‘0원’이면서, 오히려 15만원의 현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씨는 놀라 “15만원을 진짜 준다고요”라고 물었고, 점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번만 더 숫자를 말하면 상담을 종료하겠다”고 경고했다. 성지 현장의 비밀스러운 거래 모습이었다.

최근 통신 3사의 불법 보조금 경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통신사들이 ‘5G 효과’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데, 5G 서비스 품질 개선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배불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 3사는 10GB(기가바이트)와 110GB 사이에 중간이 없는 5G 요금제 설계로 고가의 110GB 가입을 유도해 지난해 10여년 만에 합산 영업이익 4조원을 넘어섰다. 통신 3사는 단말기 시장에서도 불법 보조금을 살포해 통신비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0원 된 갤럭시S22, 차비 7만~15만원 추가 지급

2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통신 3사는 지난 주말 서울 일부 지역 판매점에 5G 스마트폰인 갤럭시S22를 0원으로 풀면서, 7만원에서 최대 15만원의 차비를 추가로 지급하는 ‘스팟성 정책’을 내놨다. 차비는 계좌이체 등 현금으로 지급하는 리베이트 금액을 말한다. 물론 각 지역, 매장마다 정책이 다르고 요금제·부가서비스 가입 등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입한 단말기 가격에 비해 훨씬 저렴한 편이다.

성지 현장에서는 암호문이 사용됐다. ‘ㅅㅋ’는 SK텔레콤, ‘ㅋㅌ’는 KT, ‘ㄹㄱ’는 LG유플러스를 의미한다. 여기에 ‘ㅂㅇ’는 번호이동, ‘ㄱㅂ’은 기기변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갤럭시S22 ㅋㅌㄱㅂ/차비7은 KT 가입자가 갤럭시S22로 기기변경을 할 경우, 리베이트(차비) 7만원을 받고 개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 따르면, 공시지원금과 판매점 추가지원금 외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다.

통신사별 갤럭시S22 정책을 보면, LG유플러스가 번호이동, 기기변경 가입자에게 각각 15만원씩 가장 많은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KT는 기기변경 가입자에게 7만원, SK텔레콤은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13만원을 제공했다. 사실상 갤럭시S22 단말기를 무료로 풀고 리베이트로 7만~15만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약 20만원의 공시지원금을 받아, 80만원에 구입하는 가입자와 10배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통신3사는 “일부 판매점에서 자체적으로 지급한 보조금”이라며, 본사 정책에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조선비즈

갤럭시 퀀텀3 /SK텔레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판매점 관계자는 “주말 정책이 월요일까지 이어지고 있고, 갤럭시S22를 구입하기에는 역대급으로 좋은 최적의 시기다”라며 “주말에는 줄을 설 만큼 많은 사람이 구입해갔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10만원짜리 고가요금제를 6개월간 유지해야 하지만, 리베이트 금액을 고려하면 사실상 거의 무료로 갤럭시S22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했다.

통신사들의 불법 보조금 덕분에, 지난 2월 말 출시한 갤럭시S22는 빠르게 마이너스폰이 돼버렸다. 출시 초기 약 20만원의 공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80만원 수준에서 구입해야 했지만, 한달도 안돼서 50만원, 25만원으로 내려갔고, 이달 초에는 단말깃값이 0원이 됐다. 급기야 최근에 리베이트까지 지급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통신사들은 갤럭시S22 시리즈뿐만 아니라 각 사가 선정한 핵심 경쟁 제품에 보조금 지급을 집중해 가입자 유치 경쟁을 펼쳤다. SK텔레콤이 선택한 제품은 지난달 26일 출시한 5G 스마트폰 ‘갤럭시 퀀텀3′였다. 이 제품은 사실상 출시와 동시에 사실상 마이너스폰이 됐다. 출고가는 61만8200원인데, 시중에서 판매되는 단말기 가격은 ‘0원’이었다.

조선비즈

갤럭시 폴드2 gif



SK텔레콤은 퀀텀3 가입자가 번호이동을 할 경우, 15만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기기변경은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SK텔레콤의 공식 온라인샵인 T월드 다이렉트에서 구입할 경우, 36만8000원의 공시지원금을 받아 25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성지 매장과 공식샵의 구매 격차가 최대 35만원이나 나는 셈이다.

LG유플러스는 삼성전자 갤럭시S20FE2022 모델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 제품의 출고가는 69만9600원인데, LG유플러스는 갤럭시S20FE를 구입하는 가입자에게 무려 30만원의 차비를 지급했다. 통신 3사 가운데, 가장 많은 리베이트 금액이었다.

그간 상대적으로 불법 보조금 지급이 적었던 KT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갤럭시 폴드2′를 무기로 내세웠다. 2020년 출시 당시만 해도 239만8000원의 높은 출고가를 자랑한 제품이다. 하지만 KT는 지난 주말 단돈 5만원에 폴드2를 판매했다. 고가 요금제를 6개월 간 유지하는 옵션이 있지만, 할부원금이 5만원이라는 얘기다. 이미 갤럭시 폴드3가 출시됐고, 갤럭시 폴드4가 오는 8월 출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비록 구형이지만, 같은 폼팩터(기기형태)를 가진 폴드2로 가입자 유치 경쟁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분석된다.

◇ 5G 요금제 이어, 단말깃값도 양극화… 손 놓은 방통위

통신 3사는 1분기 투자설명회(IR) 등을 통해 ‘무의미한 마케팅 경쟁’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 형태로 불법 보조금이 뿌려지고 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마케팅 비용을 절약하면서도,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통신사들이 불법 보조금 지급에도 지난 1분기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SK텔레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5% 증가한 4324억원이다. 같은 기간 KT의 영업이익은 41.1% 급증한 6266억원으로, 증권가 전망치 평균(컨센서스)을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LG유플러스는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2% 감소했지만, 261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러한 불법 보조금이 ‘통신비’ 양극화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한 20~30대 젊은 세대는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반면, 컴퓨터나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는 50대 이상의 경우, 제 값을 주고 살 수밖에 없다. 시쳇말로 ‘호갱(호구+고객)’이 돼버리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단말기 유통 시장을 감시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불법 보조금 적발에 따른 과징금 규모가 2017년 매출액 대비 2.7% 수준에서 2020년 1.4%까지 감소했다. 사실상 통신사들이 법을 위반해 얻은 이득이 과징금에 비해 훨씬 크다는 의미다.

조선비즈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통위 관계자는 “일부 유통점들이 불법보조금을 스팟성으로 살포하고 눈에 띄는 번호이동을 대신해, 기기변경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법 위반 행위가 더 교묘해지면서 단속이 쉽지 않다”며 “민원, 제보 등을 중심으로 단속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적은 인력도 문제다. 현재 방통위 단말기 유통단속팀의 인원은 6명뿐이다. 입법과 행정 업무를 비롯해, 단속 업무까지 물리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통신사들이 ‘보조금 경쟁’을 탈피해, 요금·서비스 경쟁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5G 마케팅 비용이 감소하는 추세로 영업이익이 극대화되고 있는 만큼, 중간요금제 등 소비자 후생을 위해 자금력을 투입할 추가 여력이 있다”고 했다.

박성우 기자(foxpsw@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