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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속반 뜨면 30초 도망…"만원도 못 벌지만" 돗자리 펼치는 노점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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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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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3시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근처에서 황영자씨(가명·63)가 길 위에 돗자리를 펴고 잡동사니를 팔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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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3세인 황영자씨(가명)는 새벽 두시쯤이면 잠에서 깬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는다. 마음엔 걱정뿐이다. 아침이면 장사를 나가야 하지만 오늘도 들이닥칠 단속반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 황씨는 서울 마포구의 재래시장인 망원시장에서 길 위에 돗자리를 펴고 잡동사니를 판다. 현행법상 이런 장사는 '노상적치' 불법이다. 황씨는 "매일 구청 단속반과 숨바꼭질을 한다"며 "지친다"고 말했다.

황씨도 이런 장사가 불법인 걸 안다. 8만원씩 하는 과태료를 수도 없이 냈다. 그래도 나올 수밖에 없다. 황씨는 마포구의 한 빌라에서 30대 자녀 세명과 산다. 자녀들은 생활비를 벌며 공부를 하고 있는 탓에 어머니를 돕기엔 어려운 형편이다. 행정 기록상 소득이 있는 자녀들이 있어 황씨는 기초생활수급도 받을 수 없다.

황씨는 지병인 척추 협착증과 목 디스크가 있다. 50여년 노동의 결과였다. 충북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황씨는 열 여섯살 앨범공장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예식장 주방에서 30여년 일했다. 평일엔 8시간, 주말엔 12시간 일했다. 50대 중반쯤 약 없이는 허리를 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지난해 2월에는 승용차에 치여 머리를 다쳤다. 신경약을 먹지 않으면 왼쪽 눈이 시리다. 황씨는 한달 약값으로 약 14만원을 낸다. 처방받는 약은 10여가지로 어떨 땐 약을 가루로 부숴서 섞어 먹는다.

몸이 불편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노점상밖에 없다. 처음에는 집에서 안 쓰는 냄비 등을 팔았다. 그러다 주민들이 '이사가는데 안 쓰는 물건을 가져가라'고 해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했다. 대체로 쓰던 물건을 공짜로 받아와 파는데 하루 1만~2만원 정도 판다고 한다.

망원시장 일대에는 황씨와 같은 노점상이 2~3명쯤 더 있다. 모두 고령의 여성인데 아픈 곳이 있다. 80대 김금자씨(가명)은 관절약, 당뇨약, 혈압약을 먹는다. 나라에 신세를 지는 게 싫어 기초생활수급비는 신청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행 도로법상 이런 노점상에는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구청 직원 2~3명이 하루 한두번 단속을 한다. 황씨와 같은 노점상들은 단속반이 무슨 차를 타고 오는지 안다. 이날도 오후 4시쯤 단속반 차가 멀리 보이자 30초 안에 돗자리를 싸매고 도망쳤다.

현행법상 구청은 불법 노점 상품을 강제 압수할 수 있다. 하루 전인 24일 황씨는 팔던 냄비와 화분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황씨는 "물건을 뺏긴 날이면 약값을 어떻게 버나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황씨는 "하루에 1만~2만원 벌기도 어려운데 과태료 8만원을 어떻게 내나"라고 했다.


"지나다니기 불편해요" 주민들 5년째 민원...공무원도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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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4시쯤 마포구청 공무원 2명이 단속을 왔다. 황영자씨(가명·63)는 멀리서 오는 공무원들을 보고 주변 노점상들에게 '단속 왔다'고 알렸다. 이들은 30여초만에 돗자리를 정리하고 흩어졌다. 황씨는 다른 노점상 한명의 돗자리까지 들고 사진 왼쪽 빌라의 계단으로 향했다. /사진=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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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청은 4~5년 전부터 망원시장 노점상들을 단속 중이다. 주민 민원 때문이다. 노점상들이 골목을 차지하면 차와 보행자 모두 통행이 불편해진다. 일부 젊은 층은 '미관을 해친다'는 민원도 넣는다.

구청도 노점상들의 사정을 알고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으로서 불법 노점 민원이 들어오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상품을 압수해야 하는 게 의무다. 노점상들이 단속을 피해 흩어졌다가 돌아오기 때문에 수시로 단속을 한다.

공무원들의 어려움도 있다.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해 신분증을 요구하면 노점상들은 대개 거절한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구청이 신분증 제시를 강제할 방안은 없다"며 "그럴 때 경찰을 불러도 신분증 제시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불법 노점 민원이 계속 접수되는 이상 단속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노점상들에게 적법한 동사무소 일자리를 소개하는 등 해법을 찾는 중"이라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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