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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자영업 사장님이 왜 노조위원장이 됐나…‘노동자’ 개념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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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의 정책오디세이] 3회



호프집 등 운영 골목시장 상인들

협회 아닌 자영업자 노조 만들어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이 첫손 꼽혀

코로나 손실보상 이익 대변도 절박

생활임금·사회안전망 보장 내걸어

“우리의 교섭 상대는 국가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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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필규씨(56)는 전통시장인 경기도 안양남부시장에서 아내와 함께 서른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한다. 고추장, 된장 등 식자재를 판다. 가게엔 그와 함께 일하는 직원도 셋 있으니 그는 어엿한 ‘싸장님’이다. 이곳 남부시장에서 터를 잡은 것만 해도 어느새 스무해 하고도 여섯해가 지났다. 시장통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안양남부시장연합회 회장, 경기도소상공인협동조합 협업단 단장 등 여러 상인단체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부터 어울릴 듯하지 않은 직함이 하나 더 생겼다. 한국자영업자노동조합(자영업자노조) 위원장이다. 노동조합은 회사에 고용된 월급쟁이들이나 만드는 것이지, 일할 날과 쉬는 날을 스스로 정하고 그것도 나홀로 유사 자영업자가 아닌 직원까지 둔 사장인 그가 노조를 만들고 위원장이라고 칭하니 절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조는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및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다.

사장님이 노조위원장이 된 사연


하여 “사장님이 어떻게 노조위원장이 될 수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익숙한 질문인 듯 봉 위원장이 즉답했다. 그는 “선진국에선 자영노동자란 개념이 있다”며 헌법을 들이밀었다. 그가 말한 헌법은 제33조 1항을 말한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대목이다. 그는 여기서 근로자는 임금노동자(employee)가 아니라 노동자(worker)를 뜻하며, 노동자는 타인에게 고용된 노동자(employed worker)뿐만 아니라 자영업자(self-employed worker)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한국자영업자노조는 엄연히 한국노총 소속 ‘정상노조’를 자처한다. 조합원들은 호프집, 요식업, 피시(PC)방, 미용실, 당구장, 학원 등을 하는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가 상인들이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업력이 길고 50살 이상 고령자가 많다. 지난해 1월 출범 때만 해도 100여명이었으나, 어느새 조합원이 서른배로 불었다고 봉 위원장이 자랑한다. 아직 인가를 받지 못한 법외노조이긴 하나, 지난해 4월 공공서비스노동조합총연맹(공공노총) 품으로 들어갔다. 현행 노동법 체계에서는 고용노동부 등에서 인가 받기 어렵기에 ‘노조 인정 투쟁’을 벌이기보다 실리적으로 노총 산하에 들어가는 ‘우회 전략’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공공노총이 한국노총과 통합하면서 한국노총 소속이 됐다. 한국노총 최초의 직할 전국단위 일반노동조합인 전국연대노조에 편제돼 활동을 벌인다. 전국연대노조는 사업장이 없어 노조 설립이 어려운 특수고용직,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노동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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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이 자신들의 권익과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서 협회나 협동조합이 아닌 노조를 결성한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지난 2020년 2월, 타투이스트들이 노조를 결성했다. 화섬식품노동조합 타투유니온지회가 그것이다. 이들 노조는 인적 구성이나 조직 목표 등에서 제각각이지만, 모두 영세 독립 자영업자들로 꾸려져 있다. 대체로 1인 자영업자들이지만, 일부는 봉 위원장처럼 직원까지 둔 이들도 있다. 두 노조 모두 흔히 노조라면 상대하는 교섭 대상 개별 사업장이 없다. “교섭 상대가 누구냐”는 물음에 두 노조의 노조위원장은 이구동성으로 “국가” 또는 “정부”라고 답했다. 한국자영업자노조는 시장환경 개선을 주로 요구한 협회와 달리, 생활임금과 사회안전망을 보장을 노조 목표로 내걸고 있다. 타투유니온은 타투 노동의 가치 인정 및 직업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모두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의 판단과 결정이 필요한 요구다.

영세 독립 자영업자들은 노동자 정체성이 있고 노조에 우호적인 특수고용직과 달리, 보통 노동자와 노조에 대해 비우호적이다. 특히 소상공인과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들의 전쟁에서 보았듯이 대립적 관계를 보일 때가 적잖다. 그런데 그런 성향을 지닌 영세 독립 자영업자들이 왜 스스로 사장이 아닌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우리의 노동법 체계 상 인가받기 어려운 노조를 선택, 결성했을까?

이 물음에 자영업자노조의 박용우 정책교섭부위원장은 “이 코로나 시대에 많은 자영업자가 고통을 받고 사각지대에 있는데, 우리가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뭐냐,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큰 게 뭐냐,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든 거죠”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조직의 필요성 때문에 힘센 이해대변조직으로서 노조란 틀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기실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 대변을 위한 기존 조직이 있었고, 현재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상인들은 다양한 상인연합회가 있고, 타투이스트들도 한국타투협회가 있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위원장은 “우리는 힘 있는 조직이 필요하고, 연대도 필요하고 노하우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무살 아이들이 징역 받고 벌금 받고 전과자 되고 그 과정에서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는 친구들이 1년에 몇 명씩 나오는 실정”이라면서 “입법부, 행정부, 사업부와 ‘맞짱’ 뜰 수 있는 조직은 대한민국에서 총연맹밖에 없다. 가장 크고 힘 있는 연대는 결국 노동조합일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1992년 대법원이 타투를 의료행위로 판단하면서, 타투 행위는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됐다. 그래서 타투협회 추정에 따르면 연간 수백 명의 타투이스트들이 불법시술로 적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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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한국자영업자 정기총회에서 봉필규 위원장을 비롯해 집행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자영업자 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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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자영업자들이 노조를 만든 배경


자영업자 노조 실태를 연구한 차유미 전북대 강사(사회학)는 영세 독립자영업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배경으로 자영업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을 꼽는다. 아울러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한 매출 감소와 정부 정책으로 인한 손실 보상 문제 등 정부를 상대로 한 강력한 이해 대변 조직의 필요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팬데믹이 자영업자를 노동의 무대로 올라오도록 한 셈이다.

실제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20년 기준 자영업자의 평균 부채는 1억1800만원이다. 자영업자 가구의 저축액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12.2%로 상용노동자(77.4%) 및 임시 일용직(82.9%)보다 훨씬 높고, 전년 대비 증가폭도 컸다. 2019년의 경우, 자영업자의 평균 부채는 1억1063만원, 저축액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02.3%였다. 상용노동자는 69.4%, 임시 일용직은 77.9%였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1년 가까이 감내하던 자영업자들은 마침내 2021년 1월부터 집단행동을 벌이며 행동에 나섰는데, 이 한가운데서 자영업자노조가 출범했다. 자영업자노조 출현은 자영노동시장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는 ‘적색 신호등’이자, 수렁에 빠진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구조 신호”인 것이다.

노동 및 노동조합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인식이 바뀐 점도 또 하나의 노조 결성 배경이다. 이런 인식 전환에는 기술혁신과 이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에 따라 임금노동자나 다를 바 없는 1인 유사 자영업자가 증가하고, 여기에 화물기사, 택배기사 등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조를 점차 인정하는 추세가 커진 흐름이 큰 영향을 끼쳤다.

영세 자영업자는 평균적으로 노동자보다 더 오래 일하지만 대부분 고용보호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전통 상인 35만9049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보면, 고용보험 6.1%, 산재보험 5.9%, 국민연금 36.7%,의 가입률을 보였다. 한국자영업자노조가 자영업자에게도 사회보험이 실효성있게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이유다.

잇따른 독립적인 자영업자 노동조합 결성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뒤엎는다. 노동 및 노조에 대한 통념에 강력한 균열을 내는 움직임이며, 개념의 전복이다. 앞서 특수고용직 노동조합과 여성노조 등 비임금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들 모두 임금노동자의 특성인 종속성과 전속성을 공유했다. 하지만 최근에 출현한 자영업자노조는 그야말로 독립 자영업자들 구성됐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노동자’란 개념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되묻게 함은 물론 한국 노동운동과 정부에도 새로운 숙제를 던진다. 독립 자영업자도 단결권을 지닐 수 있는가, 나아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3권’을 가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가보지 않는 노조의 새 길?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속하는 디지털화 속에서 일의 형태도 일자리도 변화무쌍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화물기사나 택배기사 등 이른바 종속적 자영업자를 넘어 이제는 스스로 일할 날과 일하는 방식을 정하는 순수 독립 자영업자까지 임금노동자의 전유물이었던 노동3권과 노동조합의 ‘가보지 않은 길’을 열게끔 하고 있다.

차유미 강사(사회학)는 최근 출간한 <자영업자 노동조합 연구(한국노동연구원)>에서 이런 흐름에 대해 “자영업자는 고용관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자영노동이 임금노동과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자영노동자인 자영업자도 노동조합을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기존 고용노동 중심 사고의 대전환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함께 연구한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헌법과 국제노동기구(ILO) 단결의 자유 협약의 취지에 따라 그 주체로서 노동자를 일하는 사람(worker)로 해석한다면, 자영업자, 특히 1인 자영업자의 노동3권도 임금노동자에 준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임노동자를 고용해 사용자 지위를 겸하는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노동3권 행사과정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사용자로서의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해 적절한 입법 조처가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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