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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에 민주당·국민의힘부터 적힌 건 당연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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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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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정당의 국회 의석 수에 따라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호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일까.

국회입법조사처가 26일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큰 정당에 매우 유리해 독점적 양당 구조를 강화하며,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방식도 아니라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 허석재·송진미 입법조사관이 작성한 ‘NARS 입법·정책’ <투표용지 양식의 불평등성 논란과 쟁점 : 정당 특권과 기호순번제 문제>를 보면, 국회 의석수에 따라 큰 정당들에 부여되는 전국 통일 기호 배정 방식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30여개 주와 호주·브라질 등은 추첨으로 기호를 배정한다. 영국 등은 알파벳 순으로 배열해 역시 정당 의석 수에 따른 혜택은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5명 이상이거나 직전 대선 및 비례대표선거에서 3% 이상 득표한 경우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호를 부여받을 수 있다.

국내외에서 이뤄진 실증 연구들은 대부분 기호 배정과 후보자 배치 순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와 같이 유권자 관심이 큰 선거보다는 기초자치단체의원 선거처럼 투표 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하위단위 선거일수록 그 영향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지방선거의 지역구 선거에서도 기호와 정당명이 후보자 이름보다 먼저 표기돼 강한 ‘정당 신호 효과’가 작용한다. 한국처럼 정당별 의석수 순으로 후보자를 배치하는 독일은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을 가장 윗줄에 적고 아래칸에 정당명을 작게 표기한다. 보고서는 “투표용지에 소속 정당이 먼저 나오고 기호가 확정되니 정당 소속 후보자는 미리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선거에서 정당, 특히 큰 정당이 누리는 프리미엄은 아주 크고, 이는 독점적 양당 구조의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현행 후보자 기호 배정 제도가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었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 때는 선거구별 추첨으로 기호가 배정됐다. 1963년부터 전국 통일 추첨제도를 거쳐 1969년 공화·신민 양당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현재와 유사한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1981년 선거구별 추점제도로 회귀했다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이듬해 13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의 정치회담을 통해 현행 선거구별 의석수 순 제도가 도입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고서는 “후보자 기호 배정 제도는 정치 상황 및 권력 관계에 따라 수 차례 바뀌어 왔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이래 여덟 차례 현재의 투표용지 게재 순위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후순위 후보자에게 발생하는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정당을 일반결사에 비해 두텁게 보호하는 정당제도의 헌법적 존재 의의에 비춰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에게 우선순위 기호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 기준에 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현직자나 다수의석 정당 우선 배정 방식을 위헌 결정한 사례가 여럿 있다.

보고서는 “투표용지의 순서효과가 실재하고 선거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면 이는 헌법상 평등선거 원칙과 선거운동 기회균등 보장에 위배된다”며 “유권자의 선호가 최대한 의석에 반영되는 대표성 제고를 위해 국회·지방의회의 군소정당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으며, 투표용지 구성과 후보자 게재 순위 개편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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