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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부석사 가는 길… 낙동강 하늘길…영양 자작나무숲… 영덕 메타세콰이어숲… 울진 금강송숲길… 지친 심신을 다독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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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목(春陽木)이라고 알려진 금강소나무는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로 꼽았다.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송 집단 분포지 내 500년 넘은 천연수림의 소나무 터널을 통과하면 식물성 호르몬인 피톤치드를 직접 느껴볼 수 있다. / 경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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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의 부석사(浮石寺)는 국내에서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불린다. 하지만 절이 예쁘다는 말만 듣고 구두를 신고 온다면 낭패를 면하기 어렵다. 부석사는 가파른 산등성이에 기다랗게 놓여 지형 자체가 오르막인데다 천왕문에서 무량수전까지 이어진 108계단은 체력이 좋은 남성들조차 쉬지 않고 걸으면 숨이 찰 정도다.

부석사를 다녀와 본 사람들은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 권한다. 108계단을 걷다 힘들어도 섣불리 뒤를 돌아보진 말라고. 계단 하나에 번뇌 하나씩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끝까지 걸어오른 무량수전에서 몸을 돌려야한다고. 그때 비로소 하늘 아래 융단처럼 펼쳐진 푸른 숲의 절경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古刹)인 부석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서 지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위·아랫 부분이 좁지만 중간이 볼록해 항아리처럼 보이는 배흘림기둥은 무량수전이 지닌 미(美)의 극치로 평가된다. 진흙으로 빚은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등을 비롯한 문화재도 곳곳에 배치돼 있다.

부석사의 매력은 사찰 내부에 그치지 않는다. 일주문에서부터 이어진 숲길은 사계절마다 옷을 바꿔입으며 마치 무릉도원 같은 편안함을 자아낸다. 봄과 여름엔 마음까지 물들여버릴듯한 초록빛 숲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겨울에는 설국(雪國)처럼 하얗게 쌓인 눈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찾아오는 중생을 사시사철 보듬는 듯한 이 자비로움이야말로, 천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부석사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낙동강에서 하늘길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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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낙동강 세평하늘길은 오지의 빼어난 절경과 구비구비 흐르는 물줄기, 영동선 철길을 따라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이어지는 12km 트레킹 코스다. / 경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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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서 동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낙동강세평하늘길(하늘길)이 나온다. 하늘길은 낙동강 상류의 산길 등 여러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봉화군 소천면의 간이역인 승부역부터 분천역까지 총 3개 코스 12.3km 길이로 구성돼 있다. ‘세평’이라는 명칭은 하늘길 구간에 위치한 승부역에서 근무하던 역무원이 지었다는 시에서 유래했다. 산줄기 사이에 자리한 기차역에서 바라본 하늘이 3평 정도로 좁게 보였다는 뜻이다.

하늘길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기나긴 코스 속에서 다양한 풍광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길을 걸으며 좁아지다 넓어지는 낙동강 물길을 보다보면 거세다가도 고요해지는 인생을 반추할 수 있다. 오솔길을 보며 마음이 살짝 풀리다가도 이내 숨이 차도록 가파른 경사 지형을 만나 긴장된다. 철길을 간간이 지나가는 화물열차 소리는 하늘길의 배경 음악이 된다.

낭만의 무대인 간이역의 감성을 한껏 즐기면서 길을 걸을 수 있는 점도 하늘길의 묘미다. 지금도 운영하는 간이역인 분천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승부역까지 가보자. 열차 창문 너머로 낙동강 인근의 풍경을 내다보면 어린시절 시골 조부모 댁을 다녀오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1코스의 시작점인 승부역에서 내린 뒤엔 3코스 종점인 분천역까지 두 발을 이용해 되돌아올 수 있다.

하늘길의 1코스인 낙동강비경길은 승부역에서 출발해 양원역까지 5.6km 구간으로 구성돼있다. 과거 양원마을 주민들은 양원역이 세워지기 전, 마을 밖에서 일을 하다 승부역에서 내려 이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루종일 일한 뒤 무거운 몸을 끌고 집으로 가는데, 돌아가는 길 조차도 멀었던 것이다. 지난 1988년 양원역이 임시승강장으로 결정되자마자, 마을주민들은 벽돌을 들고 나와 지금의 양원역 대합실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의 기쁨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지난 2021년 개봉한 영화 ‘기적’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제작됐다.

◇백색의 고요, 영양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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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약 12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는 인공 숲이다. 산책로 길이는 2km. 청량한 공기를 맘껏 마시며 오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경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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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세평하늘길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경북 영양군 수비면이 나온다. 경북에서도 산골 중의 산골인 이곳에는 ‘영양자작나무숲’이 위치해있다. 수비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남쪽으로 오기리에 도착하면 자작나무숲 안내판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과연 이곳에 사람이 찾아올까 싶을만큼 경사가 급하고 폭이 좁은 도로를 지나다보면 오기리 동쪽 죽파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개울 옆 농로를 따라 올라가면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위치에 조성된 주차장을 볼 수 있다.

이곳 주차장과 자작나무숲은 약 3.3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도보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숲으로 들어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숲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백색의 나무줄기가 인상적인 자작나무숲이 나온다. 자작나무의 잎 색깔은 일반적인 나무와 같은 초록색이라, 날씨가 맑으면 맑을수록 초록잎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백색 나무줄기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꿈결을 거닐 듯 자작나무숲을 걷다보면 동화 ‘피터팬’의 ‘팅커벨’같은 요정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자작나무 숲은 지난 1993년에 이 일대 30ha(9만여평) 규모로 조성됐다. 숲 둘레엔 2km 정도의 산책로가 있어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가족과 연인끼리 거닐다보면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한편 영양군 수비면은 예로부터 대기가 맑아 천체관측 동호회원들이 해마다 찾는 별자리 관측 명소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국제밤하늘협회(IDA)는 영양군 수비면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구 일부 등을 아시아 지역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오전이나 오후엔 자작나무숲을 거닐며 산림욕을 한 뒤, 저녁에는 은하수처럼 쏟아져내리는 별빛을 눈에 한가득 담을 수 있다.

◇영덕엔 메타세콰이어, 울진엔 금강송숲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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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국립산림치유원은 웰니스 관광지 이용자 만족도가 높게 평가되는 곳이다. 사진은 숲 속 산림을 활용한 신체활동을 통해 편안한 휴식을 도모하는 프로그램. / 경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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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에서 동해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대게의 고장’ 경북 영덕군이 나온다. 대게와 바다만 있을 것 같은 영덕에도 조용히 마음을 내려둘 수 있는 숲길이 있다.영해면에 위치한 벌영리메타세콰이어숲은 지난 200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지금은 66ha(약 20만평) 규모를 자랑한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계단이 설치돼 있고 경사가 높지 않아 쉽게 전망대에 도달할 수 있다. 전망대에선 영덕을 감싸는 동해 앞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영덕 위쪽의 울진군에선 국내 최대 규모의 금강송 군락지를 볼 수 있다. ‘금강산소나무’란 뜻의 금강송은 경북 울진 등지에서 자라는 곧은 소나무를 지칭한다. 궁궐을 짓는데 사용되던 전통적인 고급 목재다. 2274ha(687만여평) 면적인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엔 수령 200년이 넘는 나무만 8만여 그루가 있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옛 보부상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울진에서 봉화로 갈 때 넘던 십이령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이 숲길은 금강송 보호를 위해 예약을 통한 해설사 동행 탐방만 가능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5.3km 길이 코스인 ‘가족 탐방로’로 약 3시간이 걸린다. 조선 숙종 대부터 관리된 금강송 군락지를 걷는 길로서, 500년 수령의 소나무와 길게 뻗은 모습이 잘생긴 ‘미인송’ 등이 볼거리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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