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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나이만으로 임금 깎을 수 없다"… 기업, 임피제 수술 예고 [대법, 임금피크제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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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타당성·불이익 고려해야"
임피제 유효성 판단 기준 제시
일부 기업들 줄소송 당할 위기
노사간 재논의·협상 등 불가피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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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현행 임금피크제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면서 기업들도 현행 임금피크제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세부 운영방안을 꼼꼼히 훑어가며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기업과 민간기업 간 이번 판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판결이 모든 임금피크제를 무효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임금피크제 도입의 목적과 필요성, 근로자의 불이익과 그에 상응한 보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무량 그대로인데 급여만 깎아"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26일 A씨가 전자부품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판결 취지는 업무강도에 변화를 주지 않은 채 '만 55세'라는 나이가 찼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삭감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이를 따지는 기준은 '고령자고용법 4조의 4'다. 이 법은 회사가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A씨의 경우 '55세'라는 나이 기준에 따라 임금피크제 대상이 됐으나 연구원이었던 A씨의 업무 내용이나 업무량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그럼에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된 A씨의 월급여 액수는 성과평가 결과가 최고 등급일 경우에는 약 93만원, 최저 등급일 경우에는 약 283만원이 삭감됐다. 특히 A씨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51세 이상 55세 미만 직원들의 목표 대비 실적달성률이 55세 이상 직원에 비해 떨어짐에도 55세 이상 직원 임금만 감액됐다.

즉 55세 이상 직원에게만 임금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이유가 없고, 그간 하던 업무에서 크게 변동이 없으면서 일정 나이가 지났다고 무조건 임금을 감액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다.

연령에 따른 차별과 고용보장이라는 목적의 충돌은 사실 제도 도입 초부터 지적된 문제였다. 급속화되는 고령화 대책으로 등장한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특정 연령에 도달하면 고용보장이나 정년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다. 2000년 도입이 시작된 이 제도는 법적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빠르게 안착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체 사업장 9034개소 중 9.4%(849개소)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300인 이상 사업장의 도입 비율은 13.4%, 300인 미만 사업장은 7.9%다. 2015년 기준 공공기관의 경우 전체 316곳 중 공기업 12곳, 준정부기관 22곳 등 56곳이 도입했다.

■"사안별로 달리 판단"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기업들이 현재 운영 중인 임금피크제 형태를 전면 손질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 취지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이 개별 사안마다 달리 판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약화, 감액된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에 따라 법원 판단은 달라질 것이라는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특히 임금피크제를 통해 급여를 삭감할 경우 삭감폭이 커질수록 업무강도 역시 낮아져야 한다는 게 이번 판결의 특징이다. 일부 기업은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유연근무제, 재택근무제를 활용하는 식으로 업무강도를 조절하기도 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했음에도 해당 업무를 그대로 이행한 직원들의 경우 보직변경을 하거나 근무형태를 바꾸는 방안이 대대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전자부품연구원과 유사한 형태로 임금피크제를 운영한 기업들은 줄소송에 처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변호사·공인노무사는 "이 사건은 좀 특이한 케이스로 일반기업에 바로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정년은 그대로 두고 임금만 삭감된 것이 문제가 됐는데, 이는 연구원 정년이 법적 정년이 연장되기 전부터 61세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정년을 60세로 늘리거나 보장해주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만큼 이번 판결에서 문제가 됐던 '연령 차별'을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유 노무사는 "정년이 이미 60, 61세였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는 파급효과가 있겠지만 일반 시장에서는 (판결)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피크제 자체가 무효인 것처럼 프레임이 씌워졌다. 법원이 시장 질서나 현실을 가볍게 본 것이라는 의문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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