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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군에 포위된 세베로도네츠크, ‘제2의 마리우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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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 3면 포위·집중 공격… '초토화 전략' 구사
돈바스 전체 명운 걸린 요충지… 우크라 결사 항전
평화협상·영토 포기 여론에 젤렌스키 "무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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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주 세베로도네츠크 상공에서 포연이 치솟고 있다. 세베로도네츠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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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요충지인 루한스크주(州) 세베로도네츠크가 러시아군의 맹폭에 잿더미로 변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도시를 포위하고 ‘초토화 작전’에 들어갔다.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함락했던 때와 똑같은 전술이다. 세베로도네츠크가 버티지 못하면 돈바스 전체가 러시아군 수중에 넘어갈 위험이 더 커진다. 우크라이나에는 절체절명 위기다.

2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세베로도네츠크를 비롯해 돈바스 지역 40개 마을을 쉼 없이 포격하고 있다. 지난 24시간 동안 주택과 학교 38곳 등 민간 시설 47곳이 파괴됐고, 사상자가 20명가량 발생했다. 러시아는 화력을 총집결해 주요 도시들로 진격하고 있다. 북부에서 남부까지 길다랗게 펼쳐졌던 전선은 120㎞로 좁혀졌고, 전투는 그만큼 더 잔혹해졌다.

세베로도네츠크는 최대 격전지다. 세베로도네츠크와 강 건너 도시 리시찬스크를 방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은 동ㆍ남ㆍ북 3면에서 러시아 군인 수천 명에 둘러싸여 빗발치는 포탄을 받아내고 있다. 24일 하루에만 민간인 6명이 숨졌다.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은 아조트 화학공장 방공호에 숨어 공포에 떨고 있다. 가스와 전기, 물도 거의 끊겼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러시아군 포격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지구에서 세베로도네츠크를 아예 없애버리려 한다”고 위급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도시를 봉쇄한 뒤 대규모 폭격으로 인명을 살상하고 기반 시설을 무차별 파괴해 결국 항복을 받아내려 할 것이라 본다. 세베로도네츠크도 최근까지 고립된 채 싸우다가 최후 저항지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넘겨주고 82일 만에 함락된 마리우폴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러시아가 세베로도네츠크에 사활을 거는 건 돈바스 전투 향방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세베로도네츠크와 인근 지역을 제외한 루한스크주 90% 이상이 러시아군에 점유된 상태이지만, 그 옆 도네츠크주는 남부 외에는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세베로도네츠크는 도네츠크주 북부와 맞닿아 있는데, 이곳을 빼앗기면 도네츠크주도 버티기 어려워진다. 우크라이나 군당국이 “러시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루한스크주를 완전히 점령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주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세베로도네츠크와 불과 60㎞ 떨어진 도네츠크주 리만은 이미 무지막지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리만은 돈바스 지역의 철도 중심지로, 러시아가 이곳을 거머쥐면 인근 도시 슬로비얀스크도 위태로워진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러시아군은 슬로비얀스크 대신 리만을 우선 공격함으로써 인근 세베로도네츠크 포위 작전을 지원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다음주가 결정적 국면”이라며 “이번 토요일, 일요일까지 러시아군이 성공하지 못하면 화력이 바닥나고 전세는 우리에게 유리해질 것”이라고 투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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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의 파괴된 건물 주변에서 주민들이 널빤지를 옮기고 있다. 바흐무트는 최근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를 포위하기 위해 진격하면서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다. 바흐무트=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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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동부 및 남부 점령지 병합도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주민들이 러시아 여권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전쟁연구소는 “러시아 시민권자를 대거 확보해 향후 정치적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며 “러시아 여권 소지자에 대해선 강제 징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법이 점령지에서 은밀히 병력을 동원하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러시아 의회는 전투병을 확보하기 위해 군대 자원 입대 연령 상한을 40세에서 50세로 높이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이처럼 병력과 무기를 쏟아부어도 전쟁이 결판나지 않는 데다 돈바스 전투가 파괴적 양상으로 치닫자 국제사회에서는 평화협상을 재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당한 영토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 교환 대상이 돼 버린 영토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에겐 무기가 필요하다”며 “예외 없이, 제한 없이, 승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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