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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한국 정치의 사각이 열릴 때까지…이주민 수베디의 ‘도의원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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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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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네팔 출신 귀화인 1호
민주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당선권 밖 순위로 밀려 ‘포기’

“경기도 인구 5.3%가 이주민
당사자가 만드는 정책 필요”

네팔 출신 수베디 여거라즈(50·사진)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의원 비례대표에 도전장을 냈지만 당내 순위 경선에서 당선권 밖 후순위로 밀렸다.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수베디 사례는 한국 정치의 사각지대를 드러냈다. ‘이주노동자’ ‘네팔 1호 귀화자’ 이력은 기존 정치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정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전했지만 한국 정치는 열려 있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 24~25일 수베디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수베디가 출마를 결심한 건 ‘당사자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이주민 숫자는 늘어나는데, 정치권에선 이주민 당사자를 찾기 어려웠다. “경기도 인구 5.3%가 이주민인데 이주민 의원이 없는 건 5.3%의 국민 대표가 없다는 뜻이지요.” ‘당사자가 아니어도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 수베디에겐 현실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였다. “당사자가 생각하는 정책과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떠올리는 정책에는 차이가 있어요.”

그는 목사, 이주민단체 활동가다. 1996년 첫 입국 때는 산업연수생이었다. 경기도 한 비닐공장에 취직했다가 2년 계약이 만료되면서 1998년 네팔로 돌아갔다. 1년 뒤 한국에 돌아와 김해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2009년 네팔 출신 귀화자 1호가 됐고, 2013년 ‘김해이주민의집’을 만들어 이주민 인권운동을 본격화했다. 이후 민주당 다문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해왔고 지난해 3월 경기도로 왔다.

수베디가 준비한 공약엔 이주노동자 경험이 담겼다. “다문화가정 지원 예산 규모가 큰데 다수인 남성 이주노동자 정착 예산은 별로 없어요.”

농촌지역 주거 안전 문제도 관심 분야이다. “노후 건물을 공공기관이 리모델링하고, 고용주나 노동자에게 사용료를 받으면 열악한 환경에서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장벽은 높았다. 수베디는 당내 경기도의회 비례대표 후보 순번 12번을 받았다. 추천순위 8번까지 당선권으로 봤다. 그는 “희망 없는 선거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출마 포기 과정에서 이주민 출마를 막는 한국 정치의 질곡과 맞닥뜨렸다. ‘정치적 계산’이다. “기성 정치인들은 ‘이 사람이 도움이 될까’를 계산해요. 자기 지역 후보를 밀어야 득이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당내 순번 할당제도가 있지만 소수집단 중에서도 규모가 크거나 조직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우위를 점한다. “노동계 인사는 경선에서 많은 표를 받는데 특별보호까지 받아요. 보육계나 장애계도 단체가 많고 연합이 잘돼서 정치인들이 눈치를 봐요.”

수베디는 ‘다른 후보자의 공약 중 눈에 띈 것이 있냐’고 묻자 “못 봤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은 ‘다문화가족 자녀, 맞춤형 지원체계 강화’가 전부이다. 민주당 공약집엔 ‘결혼이주여성 체류권 보장 등 인권보호 강화’ 내용만 담겼다. 정의당은 ‘미등록 이주아동 권리 보장’ ‘장애, 이주, 북한이탈 여성 모두의 권리 보장’을 공약했다. 이런 현실은 “이주민 인구가 늘어나는 반대급부로 이주민 혐오가 자라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수베디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외국인 건강보험에 대해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 “이주민을 싫어하는 이들의 스피커는 크니까 그런 말이 먹히는 거죠.”

그는 정치의 힘을 기대한다. “이주민 정치인이 늘어나면 이주민도 ‘같은 국민’이라는 인식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도전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았다. “지방선거 후 전당대회가 시작되면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찾아봐야죠. 사회운동도 계속하면서요.”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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