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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하늘의 짐꾼’ 대형수송기 도입, 순조롭게 이뤄질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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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C-130 수송기가 활주로에서 엔진을 켠 채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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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수송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날아다니는 기종이다. 서방 국가들이 지원하는 군수물자와 장비를 빠르게 가져다주는 수송기는 러시아군과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군의 전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C-130, CN-235 수송기를 운용중인 한국군도 재해 재난 대응과 국제평화, 전시 공수작전 등의 임무 소요 확대에 대비해 7100억 원을 들여 대형수송기 2차 사업을 국외 상업구매 방식으로 추진중이다. 하지만 사업 진행 구조 등을 놓고 방산업계의 우려가 높다.

◆C-130J·A400M 유력 후보

사업을 주관하는 방위사업청은 지난 19일 대형수송기 2차 사업 입찰공고를 냈다.

공고에 따르면, 참가를 원하는 해외 업체들은 방위사업청이 제공하는 제안요청서를 토대로 8월 24일까지 제안서와 가격입찰서, 비용 분석 자료 등을 제출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대형수송기 2차 사업을 국내업체 참여(컨소시엄 구성) 의무화 시범사업으로 선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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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C-130 수송기가 성능 점검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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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업체 컨소시엄은 대형수송기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구성품과 부품을 제작해 수출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사업 수주를 원하는 해외 업체는 방위사업청과 기본 계약 협상을, 국내 업체 컨소시엄과는 관련 협상을 진행한다.

컨소시엄은 국내 업체 간 과도한 경쟁 방지와 해외 업체에 대한 협상력 강화 차원에서 단일 팀으로 구성됐다. 방산업계에서는 국내 방위산업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을 포함해 20여 개 업체가 참여 의향을 밝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형수송기 2차 사업 참여 기종으로는 미국 록히드마틴 C-130J-30, 유럽 에어버스 A400M, 브라질 엠브라에르 C-390가 거론되고 있다.

군과 방산업계에선 C-130J-30과 A400M이 실질적인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한다.

C-130J-30은 서방 세계 수송기 베스트셀러인 C-130의 최신형인 C-130J 동체를 약 4.6m 연장한 기종이다. 18t의 화물을 실었을 때 4425㎞를 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 공군도 4대를 운용중이다.

C-130H-30보다 연료효율이 15% 높아졌고, 조종석도 기계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어 조종사의 상황인식능력이 개선됐다. 이륙거리, 착륙거리, 승무원 수도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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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군 A400M 수송기가 영국 노턴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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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계속 사용할 예정이라 장기적 관점의 후속군수지원과 정비 등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에어버스가 만든 A400M은 C-130과 C-17의 중간 체급으로 개발된 기종으로 8900㎞를 날아간다.

최대이륙중량이 C-130의 두 배인 A400M은 NH90 또는 CH-47 헬기 1대, 스트라이커 장갑차 2대 등 다양한 대형 화물을 수송할 수 있다.

항속거리가 길어 적재량을 조절하면 멀리 떨어진 분쟁지역에 특수전부대를 파견하거나 자국민을 대피시키는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2015년 서울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 영국 공군 소속 A400M이 페리 비행(탑재물 없는 비행)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이 실시한 아프간 철수 작전 당시 스페인 등이 A400M을 투입, 현지인과 자국민을 본국으로 철수시켰다. 말레이시아 공군은 같은해 A400M 운항국가 중 최초로 1만여 시간 비행 기록에 성공했다. 인도네시아와 카자흐스탄도 A400M 구매를 결정했다.

반면 가격이 C-130J-30보다 최대 80% 정도 높아 록히드마틴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C-130J-30보다 기체가 훨씬 크다는 점을 감안해도 높은 가격은 한국 공군에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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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군 A400M 수송기가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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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업계에선 우려 높아져

방산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을 참여하게 하는 대형수송기 2차 사업 추진 방식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송기 제작에 쓰이는 구성품이나 장비는 ‘주문 후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수송기 제작에 참여한 전례가 없는 국내 기업이 관련 제품을 만들려면 생산라인을 새롭게 설치하는 등 수십억원 규모의 기반 투자가 필수다.

거액의 투자를 하려면 사전에 생산물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국내 기업이 제작한 구성품이 탑재될 수송기 도입 규모는 3대다.

수송기는 개발 국가를 제외하면 소량 구매가 많고, 주문 시기도 일정하지 않다. 한국 도입 이후에 국산 부품이 쓰일만한 수송기 신규 주문 규모나 시기도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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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마리에타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C-130J 수송기가 조립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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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제기 도입 규모가 작으면 구성품이나 부품 공급량도 적다. 반면 수송기 운용기간은 최소 30년 이상이다. 기업이 이윤을 얻기 힘든 장기 저율 생산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 입장에선 물량도 별로 없는데 투자를 하면 손해 볼 게 뻔히 보이지 않겠나. (수송기 도입) 물량이 너무 적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부품 산업 종사 경험이 있는 관계자도 “코로나19 등으로 유럽, 중국 항공기 부품업체들도 나가떨어지고 원자재 가격도 급등해 업황이 안좋다”며 “사업을 접은 유럽 업체에서 싼값에 기계를 들여와 부품 만들면 될 것 같지만, 국내 수요가 작으니 이윤 얻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해외 업체 입장에서도 현재의 사업 구조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최첨단 수송기를 구성하는 부품이나 장비를 확보하려면 그물망처럼 정교한 서플라이 체인이 필수다. 약간의 틈만 있어도 비행안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록히드마틴과 에어버스를 비롯한 글로벌 항공우주산업체가 새로운 협력업체를 서플라이 체인에 추가할 때 엄격한 심사를 진행한다.

기업 정보와 기술 보유 수준, 계약 조건, 품질 자격, 수출허가 여부 등을 담은 서류를 제출받아 심사를 한다. 이후 현장 실사를 진행해 업체의 실제 상황을 파악한 뒤 단가나 품질 등을 분석하고 업체를 선정해 계약한다. 이 모든 과정에는 일반적으로 2~3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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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마리에타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C-130J를 조립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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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해외 업체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심사를 적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방위사업청이 설정한 대형수송기 2차 사업 일정에 맞지 않는다.

가계약이나 의향서(LOI)로 사업 일정을 맞출 수 있지만, 법적·기술적 리스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국내 업체가 제작한 구성품이나 부품을 수송기 제작업체가 사용하는 과정에서 안전과 성능에 문제가 없는지 시험하고 인증하는 절차까지 감안하면, 비용과 시간의 추가 지출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국내 업체가 만든 구성품이나 부품에 이상이 발생, 수송기에 결함이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도 문제다.

수송기를 납품한 해외 업체에 최종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있으나, 해외 업체가 “국내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새로운 납품업체와 협력하도록 한 방위사업청의 정책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면 해외·국내 업체와 방위사업청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방위사업청과 해외업체, 국내 기업 간 계약에 리스크 분담을 비롯한 잠재적 문제들을 모두 반영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계약 구조를 매우 복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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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공개한 국산 수송기 상상도. KA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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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구조가 복잡해지고 고려사항과 절차가 늘어나면, 사업 진척이 늦어진다. 이는 비용 상승을 초래한다. 비용이 늘어나면 기존 예산 규모를 초과할 위험이 높아진다. 결국 사업 일정 지연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일정을 중시하면 품질 리스크가 있고, 품질 보장에 초점을 맞추면 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대형수송기를 사용할 공군은 속이 타는 상황이다. 전·평시 수송과 해외 파견 등 운용 소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수송기 관련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특수작전용 C-130H 수송기 성능개량은 지향성적외선방해장비(DIRCM) 문제로 사업 기간이 2021년에서 2024년으로 연장됐다. CN-235 수송기에 최신 피아식별장치를 장착하는 사업도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완료 시기가 늦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형수송기 2차 사업도 차질을 빚는다면, 육군이나 해군 사업에 밀려 추진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위험이 있다.

일각에서는 사업 구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국산 수송기 개발 구상을 발표한 것과 연계, 우리나라 수송기 개발을 지원할 청사진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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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실시된 아프간 교민 철수작전에서 현지 교민들이 한국 공군 C-130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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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해군과 공군, 해경 등에서 초계기나 정찰기, 전자전기를 포함한 특수목적기 수요가 적지 않다. 백두체계 능력보강 2차 사업 등을 통해 탑재 시스템 국산화는 이뤄졌으나, 플랫폼은 여전히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국산 수송기 플랫폼을 자체 개발해 확보한다면, 일본처럼 국산 수송기와 특수목적기를 함께 운용할 수 있다. 전투기·수송기·특수목적기를 생산하는 국가로 거듭나는 샘이다.

다만 독자 개발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리스크도 있는 만큼, 수리온 헬기처럼 선진국 업체의 지원을 받으면 보다 쉽게 수송기를 개발할 수 있다.

방위사업청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소요군이 필요로 하는 장비를 제때 공급하는 것이다.

국내 산업 육성이나 수출도 중요하지만, 군의 무기 소요를 철저히 충족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형수송기의 조속한 도입을 간절히 원하는 공군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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