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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혼란 휩싸인 노동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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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우려 진화 나선 고용부 "제도 자체 무효 아냐..개별 규칙에 대한 판단"

작년 6월말 기준 정년제 운용 34.7만개 민간사업장 중 7.6만개(22.0%) 도입·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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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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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대법원의 '연령 기준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로 노동현장이 시끄럽다.

임금피크제도 자체에 대한 효력 무효화 판결은 아니라는데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판결의 취지를 적극 해명하고 있지만, 경영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고용부 "제도 자체 무효화 판단 아냐…노사합의 있어도 상위법 근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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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는 대법원 판결 다음 날인 지난 27일 설명 자료를 내 "고령자고용법에 따른 모집·채용, 임금 등에서의 연령 차별 금지는 강행규정으로, 단체협약·취업규칙·근로계약에서 이에 반하는 내용은 무효라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는 노사 합의에 따라 세부 규정을 만들어 적용·운영하는데,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대전제인 '고령자고용법 등' 상위법에서 금지된 조항을 포함한 규칙은 효력이 없다는 얘기다.

고령자고용법에서는 고령자에 대한 모집·채용, 임금, 연령차별을 금지한다고 돼있다.

이번 판결은 과거 한 연구원에서 재직했던 A씨가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과 역량등급이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지급받았다며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뤄졌다.

A씨는 지난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한 뒤 2014년 명예퇴직 했다. 명예퇴직 전 소속 연구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거쳐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A씨는 2011년 적용 대상이 됐다. 이후 그는 '직급과 역량등급이 강등돼 수당과 상여금, 퇴직금, 명예퇴직금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지난 2014년 약 1억8339만원 상당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법원 1부(주심 노택악 대법관)는 A씨가 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먼저 고령자고용법 규정이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봤다. Δ연령차별을 당한 사람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고 Δ구제조치와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으며 Δ시정명령 불이행시 과태료가 부과되는 점을 고려하면 강행규정이라고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도 최초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먼저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임금피크제 뭐길래…도입 현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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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는 기존 정년 이후 임금의 일정 부분을 감액해 임금을 조정하는 대신 정년 이후 소정의 기간 동안 고용을 연장하는 제도다.

사업체는 연공급 임금체계 하에서 가중되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숙련 근로자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근로자 입장에서는 고용불안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데 2015년부터 모든 공공기관에 적용한 이후 일반 기업에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29일 고용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체 수는 2021년 6월말 기준 정년제를 운용 중인 34만7422개 사업체 중 7만6507개사(22.0%) 제도를 도입·운영 중이다. 전체 국내 전체 사업장 164만3095개를 기준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체수의 비중은 4.7% 정도다.

규모별 임금피크제 시행 사업체 수 비중은 '100인 미만' 전체 33만5027개 사업장의 21.3%(7만1526개), '100인 이상' 전체 1만2395개 사업장의 40.2%(4982개), '300인 미만' 전체 34만4690개 사업장의 21.8%(7만5087개), '300인 이상' 전체 2732개 사업장의 52.0%(1420개), '1000인 이상' 전체 533개 사업장의 61.8%(330개) 등이다.

임금피크제는 정년보장(유지)형·정년연장형·재고용형·근로시간 단축형으로 나뉜다.

정년보장형은 현재의 정년을 보장하되 정년 이전 일정 시점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번 대법 판결 계기가 된 사례다. 다만 대다수 사업체에서는 '정년연장형'을 택하고 있어 이번 법원의 판단이 현장에 일률적인 기준으로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고용부 입장이다.

정년연장형은 현재의 정년을 연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정년 이전부터 임금을 조정, 재고용형은 정년 퇴직자를 계약직 등으로 재고용할 것을 보장하고 정년퇴직 이전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근로시간 단축형은 정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연장된 기간의 일정부분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현행법상 정년 연령은 60세다. 이를 기준으로 각 노사는 합의를 거쳐 임금피크제 세부규정을 만들어 운영한다.

◇임금피크제 제도 자체 무효화 아닌데…기업들은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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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학생들이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앞에서 임금피크제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관계 없음. (뉴스1DB)©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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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 취지에 대한 고용부의 해명에도 일선 기업들의 혼란은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번 법원 판결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돼 노사 간 줄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실제 판결 직후 전경련은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해 노사 간 합의 하에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면서 "향후 재판에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신중한 해석을 내려달라"라고 요청했다.

대한상의도 "임금피크제는 연공급제(호봉제)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이번 판결로 청년 일자리·중장년 고용불안 등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 대법 판결로 가장 촉각이 곤두 선 곳은 현장기술직 근로자가 많은 조선·철강·자동차 등의 산업군이다. 현장근로자들은 정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현대중공업은 2012년 만 58세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생산직의 경우 59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 그 전해보다 임금이 10% 삭감되는 구조다. 현대·기아차도 2015년 만 60세로 정년을 늘리고 59세에는 동결, 60세에는 10% 삭감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도 2011년 정년을 56세에서 58세로 연장하고, 59세부터 60세까지 재채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도입했다. 만 57세 기준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만 59세에는 10%를 삭감한다.

현대차의 경우 현장직 근로자 약 4만6000명 중 2000여명이, 기아는 2만8000여명 중 약 10%에 해당하는 2800여명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철강업계도 약 10%의 현장직 근로자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따른 혼란은 제한적일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임금피크제 적용 후 직무·업무 내용이 변경돼 일이 줄어들면, 급여에 차등을 둘 수 있는 '합리적 이유'에 해당해 또 다른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일과사람의 손익찬 변호사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으면서 직무내용이 변경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임금피크제 적용시 한직으로 가게 돼 직무내용에 변경이 있으면 (임금에 차등을 둘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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