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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가뭄에 웬 싸이 흠뻑쇼냐고? 목소리 큰 소수가 만든 '억지 논란' [박한슬이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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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그래픽=김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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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못 하다 3년 만에 열리는 싸이의 콘서트 '흠뻑쇼'가 SNS에서 논란입니다. 흠뻑쇼는 이름처럼 공연 중 수만 관객을 향해 물을 뿌리는 거로 유명한데요. 전국 농가가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 콘서트 한 번에 식수를 300톤이나 뿌리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특히 '콘서트 물 300톤을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한 배우 이엘의 한마디로 논란은 더 확산했습니다. 이 발언 하나로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논쟁으로까지 번졌으니까요.

실제로 가뭄은 꽤 심각합니다. 아니, 심각했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초까지의 강수량은 166.8mm로, 1973년 기상관측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정도면 농사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산불 등 여러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3월에는 울진과 삼척에서, 4월에는 안동, 5월에는 밀양에서 대형 산불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제대로 된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가뭄 피해에 같이 아파한다고 해서 싸이의 콘서트를 비난하는 게 과연 적절할까요. 공교롭게도 싸이 콘서트 예매가 시작된 게 가뭄 정점 때이긴 했지만 실제 콘서트는 서울(7월 15~17일)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이 장마철 한복판인 7월에 열립니다. 벌써 어제 오늘 서울엔 큰 비가 내렸죠. 아마 그즈음엔 큰 이변이 없는 한 가뭄 해소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홍수 피해를 걱정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더군다나 콘서트마다 수만 명이 모이는 점을 고려하면 관객 1인당 드는 물의 양은 하루 물 소비량과 비교해봐도 미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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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엘이 지난 12일 트위터에 “워터밤 콘서트 물 300t을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흠뻑쇼를 둘러싼 논란이 더 커졌다. [이엘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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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팩트와 무관하게 온라인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언론이 찬반양론을 퍼 나르며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남성 이용층이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흠뻑쇼가 문제없다는 여론이 많았던 반면 여성 이용층이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문제가 많다는 식의 주장이 많다 보니 젠더 갈등 양상으로까지 비화했습니다. 비판적이라면 아무래도 표를 덜 사겠죠. 그런데 티케팅 시작과 동시에 예매 사이트가 다운되며 매진된 흠뻑쇼 구매 패턴을 분석해보니 이런 온라인 여론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서울 콘서트 예매자 91%가 2030이었는데, 이중 여성이 68.7%였습니다. 인터넷 여론과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사실 이런 결과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실제 여론을 반영하는 대표성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거든요.



여론과 유리된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2020년 재밌는 연구가 하나 나왔습니다. 2015~16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시민 9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서울과학기술대가 분석해보니 최근 3개월 이내에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한 번이라도 방문해서 글을 읽은 사람은 15.2%였습니다. 글(댓글 포함)을 작성한 사람으로 범위를 더 좁히면 8.4%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자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아도, 여론을 가늠하는 간접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단, 여기엔 전제가 있습니다. 대학생·직장인·주부 등 다양한 층이 실제 인구 분포에 비례해 고르게 참여한다는 조건 말입니다. 선거날 개표 전 미리 당선 향방을 예측하는 출구 조사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온라인 커뮤니티 속 여론이 실제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겠죠. 그런데 2010년대 중후반부터 이런 전제가 깨지며 커뮤니티가 여론을 대변한다기보다 오히려 여론을 왜곡하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됐습니다.

시작은 맘카페였습니다. 2007년 즈음부터 주요 지역, 그러니까 집값 높은 핵심지역 맘카페 운영진들은 신규 회원을 매우 까다롭게 받는 식의 폐쇄적인 운영을 시작하며 기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던 기혼 여성들을 빠르게 흡수했습니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당연히 기혼 여성이 이탈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폐쇄적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가 직장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을 빼갔고, 2015년부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별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타)이 대학생들을 뽑아갔습니다. 2018년 국제e-비즈니스학회 논문에 따르면 커뮤니티 이용자 83.6%가 하루 1시간 미만만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를 토대로 유추해보면 보통 사람들이 복수의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고 보긴 힘듭니다. 그러니 에타·블라인드처럼 자체 플랫폼이 있는 커뮤니티가 아닌 일베 등 일반 온라인 커뮤니티(자체 웹사이트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은 ‘진입 문턱’ 높은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이고, 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커뮤니티는 왜곡된 공론장이 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일반 여론을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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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싸이의 흠뻑쇼 한 장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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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최근 더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 따르면 한 달 내에 디시인사이드나 뽐뿌·더쿠 같은 이른바 '자체 웹사이트 커뮤니티'를 이용한 사람(복수응답)은 24.3%에 불과했습니다. 맘카페가 속한 '포털 기반 카페 커뮤니티'(49.8%)보다는 훨씬 적고, 에브리타임이나 자체 학내 커뮤니티 이용자(31.3%)보다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블라인드·에타 등 커뮤니티 플랫폼은 폐쇄성이 워낙 두드러지다보니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외부로 공개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반면 뽐뿌 등은 진입 장벽이 낮다보니 엉뚱하게도 여기를 주무대삼는 소수의 극단적인 이용자가 표출하는 공격성이 마치 전체 여론인 양 취급되는 게 현실입니다. 일반 여론과 괴리가 일어나는 이유죠.



흠뻑쇼 아닌 정치가 문제



흠뻑쇼 논란을 그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흔한 해프닝 중 하나로 넘기기에는 뭔가 찜찜합니다.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일이 연일 이어지는 탓입니다. 실제 여론과 심각하게 괴리된 일부 극성 지지층의 의견이 마치 전체 여론처럼 둔갑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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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참패와 관련해 '이재명 책임론'을 꺼내든 친문핵심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에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들이 홍 의원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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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극렬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이 없었다면 아마 민주당이 새 정부 출범 직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입당했던 민주당은 지금의 민주당이 아니다"라며 복당 신청을 철회한 무소속 양향자 의원 말대로 극단적·교조적 인식을 주는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검수완박에 반대하거나 유보적 의견을 가진 의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거죠. 이들의 공격적 행태는 점점 더 도가 넘어, 이들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대신 합리적인 논리로 비판적 접근을 하는 민주당 의원을 향해 겉은 파랗지만(민주당이지만), 속은 빨갛다(국민의힘)는 수박이라는 멸칭을 쓰며 압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를 보면 국민 52%는 검수완박을 잘못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결국 국민, 아니 민주당원 중에서도 극단적인 소수가 여론을 호도해 정작 평범한 국민만 피해를 본 셈입니다.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의 강경한 목소리는 실제 여론과 괴리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바꿔 말하자면,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상당수의 문제 제기가 이런 식의 왜곡된 일부 집단의 극단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물론 정부조차도 별다른 고민 없이 커뮤니티 의견을 일반 여론이라고 이해하는 일이 잦습니다. 언론 역시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왜곡된 여론을 더 부추기기도 하고요.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자는 부디 앞으로 이런 점을 헤아려, 소수의 공격성 높은 이들이 만드는 억지 논란이 아닌 진짜 일반 여론을 토대로 정책을 결정하길 바랍니다.

박한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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