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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월드리포트] 중국 부실 은행 예금주들의 '적색 건강코드'…조작 의혹 사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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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의 한 도로. 공안(경찰)들이 한 여성이 운전하는 차를 막아 섰습니다. 여성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단둥시는 코로나19 때문에 곳곳이 봉쇄 중이어서 여성은 미리 주민위원회에서 병원을 다녀와도 된다는 허가서를 발급받았고 PCR 검사 음성 증명서도 받았습니다. 여성은 길을 막은 공안에 허가서와 증명서가 있다며 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공안은 요청을 계속 거부했습니다. 여성과 아버지의 코로나19 방역 건강코드가 '황색'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와 공안 사이에 몸싸움까지 벌어졌습니다. 결국 여성은 공무방해 혐의로 10일의 행정 처분을 받았고, 아버지는 폭행 혐의로 추가 처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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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코드 때문에 공안에 단속된 부녀 (사진=중국 웨이보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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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에서 사용하는 코로나19 방역 건강코드는 본인의 감염 여부와 감염자와 접촉 여부, 거주지 위치, 이동 경로 등을 바탕으로 합니다. 각 성(省)이나 대도시마다 각자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으로 녹색(안전), 황색(주의), 적색(통제) 코드 3가지로 분류합니다. 녹색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황색은 이동 최소화와 공공장소 출입 금지 등이 적용되고 적색은 격리 대상입니다. 공공장소와 상업 시설에 들어갈 때 반드시 건강코드로 QR코드를 스캔한 뒤 보여줘야 해서 건강코드가 황색이나 적색으로 바뀐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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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강코드 (사진=중국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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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적색으로 변한 건강코드…모두 부실은행 예금주



한 건의 지역사회 감염 사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건강코드는 방역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앞선 단둥시 사건처럼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13일을 전후해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갑자기 건강코드가 녹색에서 적색으로 바뀌었다는 주장들이 중국 SNS인 웨이보에 잇달아 올라왔습니다. 후베이성 우한에 사는 우 모 씨의 경우, 정저우시 도착 후 건강코드를 스캔했더니 갑자기 색깔이 녹색에서 적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주거지가 코로나 위험지역이 아니고 PCR 검사도 음성이어서 적색이 나올 이유가 없었지만, 결국 우 씨는 방역 요원들에 의해 격리 조치를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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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으로 변한 예금주들의 건강코드 (사진=중국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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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당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부실 지방은행들의 예금주라는 점이었습니다. 지난 4월 경영진의 부실과 불법 경영으로 정저우에 있는 지방은행 4곳에서 온라인 예금 동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후 돈이 떼일 것을 걱정하는 예금주들의 항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건강코드 문제가 발생한 지난 13일은 다른 지역에 사는 예금주들까지 정저우에 모여 예금 반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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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반환 시위를 벌이는 예금주들 (사진=중국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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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코드가 적색으로 변한 것은 정저우시를 방문하지 않은, 베이징과 광둥성 등 다른 지역에 사는 예금주들에게도 발생했습니다. 시 당국이 고의로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온라인에서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중국 관영매체들까지 "의혹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위법"이라고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여론이 악화하자 '데이터베이스 오류 같다'고 하던 정저우시는 지난 17일 정식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작 의혹이 사실로…"1,317명 예금주 건강코드 지방 간부들이 변경"



닷새가 지난 어제(22일) 저녁 정저우시가 내놓은 조사 결과에서 건강코드 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정저우 기율위원회·감찰위원회는 "정저우 방역 담당 간부 5명이 주민들의 건강코드를 빨간색으로 바꾼 것이 확인됐다"며 "건강코드 관리 이용 규정의 엄숙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심각한 사회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정저우시 당위원회 정치법률위원회 부서기 겸 방역 지휘부 사회통제지도부 부장과 사회통제지도부 부부장 등 두 사람이 무단으로 건강코드 변경을 결정했고, 건강코드 관리팀장과 데이터개발공사 부사장 등이 지시를 받아 이행했습니다. 이들은 정저우 거주자 446명과 외지인 871명 등 예금주 1,317명의 건강코드를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국은 사회통제지도부 부장에 대해서는 당직 해임과 직위 해제, 부부장은 엄중 경고와 직위 강등, 나머지 3명은 인사고과에 벌점을 부과하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온라인에선 비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방역용으로만 쓰여야 할 건강코드가 공무원들에 의해 악용됐다" "모든 권력은 인민이 아니라 관료에게 있는가?"라는 비판과 함께 "불법과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 "인민은 이동 경로를 숨기기만 해도 감옥에 가는데 간부들은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건강코드 변경을 '무단으로' 결정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배후를 밝혀라"고 요구했습니다.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도 "대다수 네티즌들이 징계가 가볍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고 중시할 만하다"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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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저우시 기차역에 설치된 건강코드 표시판 (사진=중국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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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중국에서 건강코드가 도입될 당시 중국 당국이 이를 통제와 감시에 악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습니다. 반체제인사 통제에 건강코드가 이용됐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홍콩 명보는 지난해 10월 헤이룽장성 무단장시로 출장을 떠났던 베이징의 인권변호사 왕위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건강코드 색깔 변화로 발이 묶였고, 이런 상황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또다른 인권변호사 셰양은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로 투옥된 시민기자 장잔의 어머니를 만나고자 창사에서 상하이로 여행할 계획이었으나 당일 공항에서 건강코드가 적색으로 바뀌어 가지 못했습니다.

중국에는 이미 5억 대의 감시카메라가 사회 곳곳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공안의 감시 장비 입찰 과정에서 오간 서류를 1년 이상 분석한 결과, 중국 정부가 일반 주민의 신원뿐 아니라, 개인의 활동과 사회적 관계까지 파악하는 감시시스템을 극대화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광둥성 중산시 공안은 약 91미터 반경 내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감시카메라 장비를 구입하겠다는 입찰 공고를 냈고, 중국 31개 성 중 최소 25개 성에 Y염색체 데이터센터가 들어섰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방역을 명분으로 한 통제와 감시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두 달간의 상하이 봉쇄 사태를 겪고 보면서, 가혹한 방역 정책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생한 이번 건강코드 악용 사건은 감시와 통제에 대한 불안과 당국에 대한 정책 불신을 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송욱 기자(songx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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