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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허연의 책과 지성]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던 푸시킨이 분노를 참지 못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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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작가의 운명은 대개 자신이 쓴 대표작을 닮는다고 한다. 흡사 예언을 실천이라도 하듯 자신이 쓴 작품처럼 살다 간 작가들이 많았기에 이 속설은 오랫동안 통용되고 있다.

반대로 살다 간 작가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이다. 푸시킨 하면 떠오르는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한 구절을 보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 찾아오리니 /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 / 모든 것은 순간이고 모든 것은 지나가네 / 지나간 모든 것은 소중하게 되리니."

푸시킨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참고 견디라고 써 놓고 자기 스스로는 참지 못했다. 그는 노여움을 못 견디고 결투에 응했고 그 결투에서 목숨을 잃는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푸시킨은 당대 사교계의 여왕이라는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을 했다. 곤차로바는 푸시킨과 결혼하기 전 10대 나이에 이미 결혼한 경력이 있었고, 결혼 후에도 많은 염문설을 몰고 다녔다. 니콜라이 1세와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프랑스 출신 근위대 장교인 조르주 단테스는 아예 대놓고 곤차로바에게 구애를 했다.

이 때문에 푸시킨과 단테스 사이에는 폭발 직전의 위태로운 전운이 감돌았다. 그러던 중 푸시킨에게 '아내에게 배반당한 남자가 된 걸 축하한다'는 내용이 담긴 익명의 편지가 배달됐다. 분노한 푸시킨은 이것을 단테스 쪽에서 보냈다고 생각했고, 즉시 단테스의 아버지를 모욕하는 내용으로 답장을 써서 보냈다. 편지를 받은 단테스가 발끈해서 푸시킨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푸시킨은 이를 받아들였다.

사실 결투의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군장교와 작가의 대결이었으니 말이다.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상트페테르부르그의 한 공원에서 두 남자가 마주섰다. 잠시 후 겨울 공기를 가르는 총소리가 들렸고 푸시킨은 눈밭에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푸시킨이 발사한 총알은 단테스의 몸을 스쳤을 뿐이었다. 이틀 후 푸시킨은 숨진다. 그의 나이 겨우 38세였다.

최근 출간된 푸시킨의 단편집 '눈보라'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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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제 운명을 거역하기엔 너무 늦었군요. 당신에 관한 추억, 비할 데 없는 당신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지금부터 제 인생의 고통이자 기쁨이 될 겁니다. 하지만 하기 힘든 말을 고백해야 할 막중한 의무가 제겐 아직 남아 있습니다."

푸시킨은 열정의 천재였다. 그는 희곡 시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그가 남긴 예술적 파장은 놀랍다.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이 오네긴', 무소로그스키의 '보리스 구두노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푸시킨의 작품이 원작이다.

그 겨울날. 푸시킨이 한 번만 참았더라면 러시아 문학은 더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도 나름의 산을 쌓았지만 다채로움에 있어서는 푸시킨을 따라가지 못한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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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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