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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살아 있는 모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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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다시 봤다. 동명의 뮤지컬을 곧 보러가게 된 차에 기억을 환기시킬 겸 찾아 본 것인데 <백 투 더 퓨처>가 그린 미래보다 미래 세계에 사는 나로서는 영화가 상상한 미래와 지금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경향신문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내친김에 감독의 최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도 봤다. 미래 영화의 거장답게 영화의 배경은 2045년, 인류가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세상에 완전히 익숙해진 후로 설정되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두 개의 세상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진짜 발을 붙이고 사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 속 세상이다. 난민촌에 사는 주인공 웨이드도 게임의 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파시벌이라 이름 붙인다. 게임회사 IOI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는 황금 열쇠를 찾기 위한 게임이 매일 벌어지는데, 주인공이 사는 도시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게임 고글을 쓰고, 아이템을 얻기 위해 기꺼이 전 재산을 쓰는 광경이 펼쳐진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개념에서 동굴 속에 사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이 현실이라고 믿는 이데아의 그림자이다. 영화에서 플라톤의 동굴 속 그림자는 가상 세계의 아바타로 몸바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플라톤은 인간이 상상 속 이데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현대의 인간은 플라톤이 살았던 기원전 400년대의 인간보다 지능적으로 체력적으로 훨씬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형태로 진화했는가. 그때보다 지혜롭고 현명한가. 혹은 원했거나 원치 않았거나 점점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중인가.

독일어에서 ‘경험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로 ‘erfahren’과 ‘erleben’을 쓴다. ‘er’가 단어 앞에 붙이는 접두사이고, 주로 운송 수단과 함께 쓰이는 ‘fahren’은 ‘가다’, ‘leben’은 ‘살다’를 의미하는 단어다. 흥미롭게도 ‘fahren’은 듣고 읽어 전달되는 간접의 경험들을, ‘leben’은 인간이 살며 몸소 체득하는 낱낱의 경험을 일컫는 것처럼 보인다. 접두사 ‘er’가 변화나 성장의 의미를 포함하니,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인간이 한발 나아가는 것, 그래서 정말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을 ‘경험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주는 미래 세계에 사는 인간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애를 쓸 뿐 아니라 현실보다 게임 속 세상에 열중이다. 주인공 웨이드도 회사를 창시한 사람을 신봉하다가 그의 인생 전체를 외워버린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종일 작은 방에 갇혀 검은 고글을 쓴 채 뛰고 구르고 있다. 가상 세계의 아바타가 느끼는 고통을 인간이 실제 감각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해 있지만, 좁은 공간에서 제자리걸음을 열심히 하는 것이 미래에 인간이 겪을 경험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글을 벗지 않는 한 인간들은 바깥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고글을 벗지 못한 채로 게임회사의 모략에 의해 현실 세계에서 죽기도 한다. 과연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인가.

우리는 앞선 몇년 동안 하루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을 살았다. 메타버스로 하는 졸업식과 입학식을, 각종 행사들을 겪었다. 가상 인간이 광고와 토크쇼에 등장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가상과 현실의 세계가 뒤섞여가는 혼란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까.

뮤지컬로 그려질 <백 투 더 퓨처>를 보러 갈 날을 기다린다. 몇년 동안이나 제대로 공연을 볼 수 없었던 나는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실시간 라이브나 녹화 동영상으로 달래곤 했는데, 집에서 전 세계 곳곳의 공연을 볼 수 있었음에도 그사이 잊어버린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무대에 선 출연자들이 같은 시공간에 있다는 걸 아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무대에 오른 출연자에게 깊은 애정을 표하며 마음껏 박수를 치는 순간, 공연에 완전히 매혹되어 온몸에 소름이 샘솟는 순간, 매 순간을 마음껏 즐겨야 할 당위성이 확보될 때의 느낌을 나는 잊고 있었다. 출연자와 관객이 피곤을 모르고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때의 경험을 몇년이나 저만치 밀어두었다.

그 순간이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직 조심해야 할 것이 많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를, 마음껏 대화를 나누고 살아 숨 쉬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기를. 자신의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모든 순간을 직접 마주하기를, 나는 바란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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