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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르포]파르르 떨리는 손에 '뼛조각'…6·25 용사 찾은 장병, 눈빛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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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포천(경기)=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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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 일대 야산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신건우 일병이 발견된 유해를 한지로 약첩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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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나뭇가지인 줄 알았습니다"

16일 오전 10시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소속 신건우 일병(21)이 경기 포천시 소흘읍 무명 350고지 북측 비탈면에서 발굴팀장을 다급히 불렀다. 입대 4개월 차인 신 일병은 흙더미 속에서 나뭇가지처럼 생긴 호미길이 물체를 발견했다. 현장에서 1차 감식한 결과 전사자 유해로 추정되는 허벅지 뼈였다. 신 일병은 떨리는 손으로 한지를 펼쳐 유해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신 일병의 손은 파르르 떨렸다.


미군과 중국군의 치열했던 전투…뼈 한 조각이라도 놓칠라 구슬땀 흘리는 장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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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시 소흘읍 무명 350고지에서 육군 8기동사단 진호대대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단 발굴팀이 유해를 발굴 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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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단은 지난달 30일부터 '무명 350고지' 북측비탈에서 6.25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군에서는 이름없는 산을 무명고지라고 부르고 구분을 위해 고지의 정상 높이를 붙인다. 무명350 고지는 해발 350m 고도의 이름없는 산이라는 의미다.

말 그대로 이름도 없는 산에서 육군 8기동사단 예하 진호대대 소속 140여 장병들과 국유단 발굴팀 10여명은 매일 같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미 25사단에 배속된 한국군 카투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다. 지난 20여일간 장병들은 350고지 북쪽 비탈 아래서 시작해 일렬로 서서 흙을 한 삽씩 떠내며 고지 정상을 향해 올라왔다.

유해발굴 장소는 전사기록과 참전용사의 증언, 주민제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정한다. 이곳은 71년전 미군이 중국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지연전을 벌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이다. 군 기록에 더해 주변 마을에 오래 산 주민들이 '어릴 적 산채를 채취하다 이곳에서 사람 뼈를 발견해 다시 묻었다'고 제보한 것이 발굴 위치선정에 도움이 됐다.

1951년 4월 22일 저녁 7시, 중국군 제60군은 연천군 대광리 일대의 미 육군 25사단 방어선 정면을 공격했다. 이틀간 이어진 '김화-포천 지연전'의 시작이었다. 미군은 40여㎞ 이상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3차례에 걸쳐 방어선을 구축해가며 중국군의 남하 속도를 늦췄다. 국유단은 김화-포천 지연전에서 미군이 마지막 방어선을 이곳 무명 350고지 정상에서 북측비탈을 향해 구축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MZ세대 장병들이 유해 4구 수습..."탄피 하나만 나와도 현장 분위기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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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구축했던 '교통호'. 6.25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2012년까지 호발굴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이날 발굴은 유해발굴 지역에 대규모 인원을 투입해 일렬로 서서 흙을 한 삽씩 떠내는 방식의 '전면발굴' 형태로 진행됐다. 진호대대 장병들이 일렬로 한삽식 떠내면 뒤편에서 국유단 발굴감식병들이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엎드린 채 흙덩이를 곱게 부쉈다. 흙 속에 섞여 있을지 모르는 유해와 유품을 찾기 위해서다.

6.25전사자유해발굴을 시작한 2000년부터 2012년까지는 격전지였던 호를 집중 발굴하는 '호발굴'을 진행했다. 호속에서는 어렵지 않게 온전한 시신형태의 유해가 발굴됐다.

반면 넓은 지역을 손으로 훑는 방식의 전면발굴에서는 '점유해'라고 부르는 뼛조각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서 호발굴이 끝나면서 이제는 뼈 한조각을 찾는데 도 100여명 이상을 투입해 4~6주간 '발굴작전'을 진행해야 한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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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시 소흘읍 무명 350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단 발굴팀이 유해를 발굴 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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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 정상을 향해 한 삽씩 흙을 떠 가며 전진한 장병들 덕분에 무명 350고지에서 발굴작전이 시작된 후 유해 4구를 수습할 수 있었다. 이날처럼 유해를 발견한 날에는 현장 분위기도 달라진다.

이창수 진호대대 대대장(중령)은 "요즘은 MZ세대 장병들이 정신정력과 관련한 대비태세를 갖추기 어려운 시절이지만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를 직접 보면 장병들의 표정도 달라진다"며 "어떤 정신전력교육 보다 효과가 있다. 장병들의 눈빛이 빛난다"고 했다.


"6.25전사자에 대하여 경례"…유해·유품은 현충원으로

지난 16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 무명 350고지에서 육군 8기동사단 진호대대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단 발굴팀이 이날 수습한 유해를 향해 도열해 경례하고 있다./영상=정세진 기자현장에서 유해를 발견하면 주변 가로·세로 2m 공간에 접근금지 테이프를 둘러 접근을 차단한다. 이후 일주일간 접근금지 공간 내부를 붓으로 훑는 '정밀노출' 과정을 거친다. 이날 수습한 유해 곁에선 MG50 기관총 탄클립으로 추정되는 유품도 발견됐다.

발굴현장에서 정밀노출 과정을 끝낸 유해와 유품은 예를 갖춰 오동나무관에 수습한 뒤 약식으로 제례를 지낸다. 이날은 오전에 비가 조금씩 내리면서 오후에야 약식제례를 치를 수 있었다.

약식제례를 마친 유해는 도열한 장병들의 경례를 받으며 인근 임시 보관소로 옮겨졌다. 군사경찰 순찰차와 대대장 전용차량이 앞뒤로 전사자 유해 운송차량을 호위하면서 전사자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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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 무명 350고지에서 육군 8기동사단 진호대대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단 발굴팀이 이날 수습한 유해의 약식제례를 치르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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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수습한 유해와 유품은 국립서울현충원 국유단 신원확인센터로 옮긴다. 세척과 보존 작업과 함께 DNA(유전자) 대조를 통해 신원확인 작업을 진행한다.

국유단은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찾지 못한 친·외가 8촌 이내 유가족을 대상으로 DNA 시료를 채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유단 데이터베이스에는 5만5000여명의 전사자 유가족 DNA 정보가 저장돼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1만2930구의 유해가 발굴됐지만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92명으로 1.4%에 불과하다.


현충원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1만2738명…아직도 미수습 전사자는 13만3192명

전사자 상당수의 사망 당시 나이가 20대 초반이라 직계 자손이 없는 경우도 많다. 어려움 속에서도 국유단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신원이 확인된 유해를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족에게 전달되지 못한 1만2738구의 유해는 현충원에서 신원이 확인되길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6.25전쟁 전사·실종자 중 미수습자는 13만3192명이다. 남한지역 발굴은 뼛조각 하나 찾기도 어렵지만 DMZ(비무장지대)의 상황은 다르다. 155마일(240㎞)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사실상 DMZ 모든 지역이 치열한 격전지였다. '파면 유해가 나오는 곳'인 셈이다.

다만 DMZ는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관리한다. 현재 DMZ 내 전사자 유해발굴 지역은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 일대가 유일하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 추가발굴을 하기 어렵다. 국유단은 DMZ 내에 상당수의 미수습 전사자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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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시 소흘읍 무명 350고지에 걸린 안내문 /사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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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경기)=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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