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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학과 확대? 현장 얘기는 다르다[최연진의 IT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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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경기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기판인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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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국정 과제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대학의 반도체학과를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정책은 여러모로 되짚어봐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와 거리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가 뒤처진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기술 격차를 줄이려면 당장 필요한 것이 양보다 질이다. 반도체학과 증원은 군대로 치면 훈련소를 지어 훈련병을 늘리는 셈이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대책이지만 훈련병을 바로 전선에 투입할 수는 없다. 당장 위기에 몰린 전선을 보강하려면 훈련병이 아닌 정예병이 필요하다. 즉 신규 인력보다 외국의 우수한 인재 영입이 필요하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경쟁이 치열한 비메모리반도체는 신입생이 졸업하는 4년 뒤가 아니라 2, 3년 내 패권 싸움의 승부가 갈린다.

여기서 이기는 방법은 하나뿐, 외부의 우수 인재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일본 반도체 기술자들을 데려와 메모리반도체 산업을 일으켰고, 중국이 지금 우리 반도체 인력들을 빼가는 것처럼 인재 영입이 확실한 기술력 확보로 이어진다.

지금 미국은 경기침체를 우려한 기술기업들의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는 것이 꼭 시장 확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TSMC는 반도체 설계업체 주문을 받아 찍어주는 위탁생산, 즉 파운드리 업체다. TSMC는 남의 반도체만 위탁 생산하면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자체 설계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대만의 국책 과제이기도 하다. 대만이나 TSMC는 그들에게 필요한 인재들이 있는 현장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에도 많은 반도체 설계업체들이 있다. 반도체 설계는 생산 장비가 없어도 가능해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이 속속 진출했다. 다만 이들은 돈이 넉넉하지 않아 외국 인재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정부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책을 찾아보는 것도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국내에서 반도체 수요처를 늘려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AI, 신경망, 그래픽반도체 등 요즘 각광받는 비메모리반도체들의 최대 수요처는 기업의 데이터센터들이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엔비디아 등 외산 업체들의 비메모리반도체를 선호한다.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비메모리반도체 일부를 국산 제품으로 구입하면 국내 관련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과거 우리 영화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극장에서 우리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한 스크린 쿼터제처럼 국산 비메모리반도체 쿼터제를 검토하는 방안이다. 수요는 시장을 키우고 업체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더불어 반도체 또한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자동차를 잘 만들어도 운전사가 없으면 굴러갈 수 없듯 반도체 역시 구동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반도체학과 증원으로 하드웨어만 늘리면 주차장에 자동차를 한가득 세워 두는 꼴이 될 수 있다. 운전사에 해당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컴퓨터공학과에 관련 과목과 교수도 늘려야 한다.

사실 이런 얘기들은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이전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반도체 업계에서 여러 경로로 정부에 건의를 해도 변하지 않자 입을 닫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혀를 찼다. 윤석열 정부에 교수 출신 장관들이 많다 보니 학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현장 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귀를 열어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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