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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인맥 캐스팅 논란, 뮤지컬계만의 문제일까[MK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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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투데이

김호영, 옥주현. 사진ㅣ스타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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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뮤지컬계를 발칵 뒤집은 일명 ‘옥장판’ 사태는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에서 촉발된 인맥 캐스팅 논란 때문이었다.

국내 초연 10주년을 기념하는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주연인 ‘엘리자벳’ 역에 옥주현과 이지혜가 더블 캐스팅 되고, 김소현이 캐스팅 라인업에서 빠진 것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같은 소속사인 이지혜와 옥주현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그 즈음 배우 김호영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과 함께 옥장판 사진을 게재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후 ‘옥장판’과 “주둥이 놀린 자’ 간 익명의 저격은 지난 20일 옥주현이 김호영을 형사고소(명예훼손)하면서 공식화됐다.

옥주현과 김호영의 갈등이 고소전으로 치닫자 뮤지컬 1세대인 남경주 최정원 박칼린이 나섰다.

지난 22일 성명문을 발표하고 “배우는 연기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뿐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 “뮤지컬의 정도(正道)를 위해 모든 뮤지컬인들이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표하며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위치와 무대에서 지켜야 할 정도(正道)가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런 사태에 이르기까지 방관해 온 우리 선배들의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고, 뮤지컬을 행하는 모든 과정 안에서 불공정함과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을 직시하고 올바르게 바뀔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겠다”고 했다.

특히 제작사를 향해 “공연 환경이 몇몇 특정인 뿐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 배우에게 공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글에 김소현, 정선아, 차지연, 최재림 등 여러 배우들이 성명문을 릴레이 공유하며 뜻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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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주-최정원-박칼린. 사진ㅣ스타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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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는 인맥 캐스팅 논란이 공론화 되자, “강도높은 단계별 오디션을 거쳐 원작사의 최종 승인을 통해 선발된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오랜 시간 곪아오던 상처가 이제야 드러났을 뿐, 스타파워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제작 환경이 부른 폐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엘리자벳’ 인맥 캐스팅 논란은 ‘팬덤’의 부작용 때문이란 해석도 내놓았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23일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인터뷰에서 “2000년 이후 뮤지컬 시장의 급속한 팽창 속에서 시장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간 요인 중 하나가 팬덤과 결부 되어 있는 배우에 대한 지지였다”면서 “(팬덤 시장은) 빠른 팽창을 가져왔기 때문에 좋은 면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면을 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 내가 미워하는 배우, 이렇게 너무 선을 긋고 극렬하게 반응을 하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경주는 전날 한 비디오머그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컬계에서 “배우가 캐스팅에 관여하고 하는 사례들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털어놓았다. 앞서 뮤지컬 배우 이상현도 “이런 게 싫어 무대를 떠났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인맥 캐스팅 논란은 비단 뮤지컬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에서도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이어져왔고, 때론 미스 캐스팅 문제로 재점화돼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한 드라마에 톱배우가 주인공을 맡으면 같은 소속사 신인배우가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한솥밥을 먹는 연예인들이 한 예능에 출연해 프로그램을 이끈 사례도 있었다. 같은 소속사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신인 가수나 배우가 등장하는 것은 하나의 관행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최근 들어서는 제작을 겸하는 거대 기획사가 드라마, 영화, 예능을 제작하면서 자사 소속 배우를 최우선으로 기용하고 캐스팅을 독식하는 경우도 있다.

몇 해전 시청률 20%를 웃돈 한 드라마 주인공은 종영 후 인터뷰에서 “내가 모배우를 감독님께 추천했다”고 직접 말했다. 추천 받은 배우는 해당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하며 시청률을 견인했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뮤지컬과 함께 티켓파워가 중요한 영화계는 이런 인맥 캐스팅이 더욱 자연스럽고 활발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스타 배우 측에서 감독에게 “이 배우 어떠냐”고 먼저 제안하는 일도 있지만, 감독이 역으로 “배역에 어울릴 만한 배우 없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한 매니지먼트사 대표는 “간판 배우를 내주면서 한솥밥을 먹는 다른 배우의 동반 캐스팅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여겨지는 분위기”라며 “‘끼워팔기’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일이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공정하지 못한 캐스팅 문화를 방관하거나 잘못된 관행 정도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범법 행위가 되기도 한다. 시청자 투표로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던 엠넷 예능 ‘프로듀스X101’는 투표 조작 의혹으로 PD와 CP가 실형을 선고받는 참혹한 사례로까지 이어졌다.

‘옥장판’ 사태를 기점으로 대중문화예술계가 캐스팅 풍토를 재점검 하고, 이번 파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들끓고 소리 높여 외치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공정의 가치’다. 대중문화예술계 역시 이 부분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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