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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이길 묘수는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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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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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110]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 명분이 없고 미래 세계 질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선 우크라이나가 이겨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미래의 규칙이 결정되는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의 전쟁터"라고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공법으로 대결하면 모든 면에서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창의적인 전략과 전술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제사회에 지지와 지원을 호소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제압하려면 이것만으론 부족합니다. 러시아군을 몰아낼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합니다.

전국시대 말기 연나라 공격으로 멸망 직전까지 갔던 제나라의 장군 전단은 교묘한 전술과 전략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일로 바꿔놓았습니다. 전단이 적을 무찌르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분열책을 통해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한 것입니다. 제나라 72개 성 중에 70개를 빼앗은 사람은 연나라 명장 악의였습니다. 그는 연소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제나라 정벌에 나섰습니다. 그가 즉묵과 거주 2개성을 함락하지 않은 것은 병사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나라 저항이 거셌기 때문으로 힘으로 밀어붙이다가는 손실이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의를 시기했던 연나라 장군 기겁은 그를 모함했습니다. 악의가 제나라 왕이 되겠다는 흑심을 품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연나라 세자 악자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연소왕이 죽고 악자가 연나라 왕이 됐을 때 전단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연나라로 사람을 보내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했습니다. "악의가 즉묵과 연락하며 제나라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 제나라 사람들은 다른 장수가 와서 즉묵성을 함락시킬까 두려워하고 있다." 왕좌에 오른 악자는 이 말을 듣고 즉시 악의를 소환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겁을 파견했습니다. 이게 바로 전단의 노림수였습니다. 악의와 비교하면 기겁은 능력이 한참 떨어졌습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상대였습니다.

전단의 다음 단계는 심리전이었습니다. 전단은 적군을 두렵게 만들고 아군을 결집시킬 묘안을 짜냈습니다. 우선 무명 졸병을 신인(神人)으로 세우고 그를 숭배하며 하늘이 제나라를 돕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 결과 연나라 병사 중엔 제나라와 싸우는 것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싸울 마음이 사라지고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전단은 또 이런 말이 기겁의 귀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악의는 제나라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가 만약 포로로 잡힌 제나라 병사의 코를 베었다면 즉묵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이 말에 솔깃한 기겁은 제나라 포로의 코를 베었습니다. 그러자 제나라 사람들은 연나라 군사에 잡히지 않으려고 더 경계했고 성을 단단히 지켰습니다. 이번엔 아군의 결기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해 이런 소문을 냈습니다. "성안 사람들 조상의 분묘가 모두 성 밖에 있다. 연나라 군사들이 그 무덤을 파헤치면 제나라 사람들은 싸울 의지를 잃을 것이다." 기겁은 이 책략에도 걸려들었습니다. 그는 제나라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묘를 파헤쳤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제나라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연나라에 대한 항전을 불태웠습니다.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의지가 더 커졌습니다.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한 전단은 마지막 일격을 위한 최종 작전에 나섰습니다. 병사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던 제나라가 확실하게 승리하려면 묘수가 필요했습니다. 전단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준비했던 기상천외한 작전을 펼칩니다. 먼저 연나라에 거짓으로 항복합니다. 그는 연나라 장수들에게 뇌물을 주며 성이 함락되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연나라 장수들은 제나라가 곧 항복할 것이라는 전단의 말만 믿고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단은 성안에 있는 1000여 마리의 소를 모아 붉은 비단으로 만든 용 무늬 옷을 입혔습니다. 날카로운 칼을 소뿔에 단단히 묶고 기름을 먹인 삼과 갈대 다발을 소꼬리에 달았습니다. 그는 5000명의 병사를 불러 얼굴에 오색 물감을 칠해 귀신처럼 보이게 한 뒤 소떼를 뒤따르게 했습니다.

연나라에 항복하기로 한 전날 밤 전단은 성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소떼를 몰았습니다. 소꼬리에 달린 기름 먹인 삼과 갈대에 불을 붙이자 소들은 미친 듯이 날뛰며 연나라 진영으로 돌진했습니다. 귀신 분장을 한 병사 5000명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다음 날 편안하게 즉묵성으로 들어갈 것이라 믿고 잠들었던 연나라 장병들은 마구 달려오는 소떼와 타오르는 불길, 그 뒤에 귀신 모습을 한 군사들이 몰려오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수많은 병사가 소뿔에 달린 칼에 찔려 죽고 제나라 병사들의 칼과 도끼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도망치다 깔려 죽은 병사들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전단은 연나라 군대를 제나라에서 모두 몰아내고 잃었던 70개 성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거주성에 있던 세자를 맞아 제나라 왕으로 세웠습니다. 기발하고 치밀하게 짠 전략과 작전으로 풍전등화에 놓였던 제나라를 구한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군사력과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러시아를 물리치려면 전단처럼 천재적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 버티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전폭적 지원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승리로 끝내려면 러시아의 푸틴이 생각하지 못한 책략이 있어야 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그것을 절실하게 찾고 있을 것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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