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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재명은 지금 ‘누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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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도전, 차기 대선 득실은

이재명 쪽 “불출마 압박 클수록 당원들 출마 요구도 거세져”

강력한 리더십·당 혁신 내세워 전대룰 확정뒤 출마선언 할듯

김영삼·김대중·박근혜·문재인 각자 방식으로 민심 거머쥐어

이회창·이인제·손학규·홍준표 당내 지지에도 쓴잔 ‘반면교사’


한겨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오전 충남 예산군 덕산리솜리조트에서 열린 ‘새롭게 도약하는 민주당의 진로 모색을 위한 국회의원 워크숍’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예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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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재명의 질주는 보는 사람들이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성남시장이던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21.2%로 3위를 차지했다. 2위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21.5%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기초단체장에서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을 뛰어넘어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도약한 것이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가 됐다. 2021년 11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국무총리, 당 대표, 국회의장을 지낸 이낙연, 정세균 두 거물을 꺾고 후보가 됐다. 2022년 3월9일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6·1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고, 자신은 당선됐지만, 지방선거는 ‘말아먹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이쯤에서 잠시 숨을 돌릴 법도 하다. 그런데 이재명 의원은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는 대표 선출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 여부가 쟁점이다. 민주당 전직 국회의장들을 비롯해 당 원로들은 거의 다 이재명 의원의 출마를 만류한다. 이해찬 전 대표 정도가 예외다. 민주당 의원들도 반대가 훨씬 더 많다. 지난 23~24일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홍영표 의원은 이재명 의원 면전에서 불출마를 압박했다.

이 의원은 지난 23~24일 당 워크숍에서 “108번뇌 중”이라고 했지만, 출마할 것 같다. 왜 그럴까? 이재명 의원 나름의 ‘논리’는 뭘까?

이 의원으로서는 이번에 대표가 되면 2024년 당의 총선 성적에 대한 책임 때문에 5년 뒤 대선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험부담이 있다. 하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당 안팎의 요구가 많은 데다, 이번 기회에 당을 혁신하지 못하면 2년 뒤 총선에서 당세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출마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게 그 주변의 설명이다.

이재명 의원 쪽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에 “5년 후 대선은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이 의원이 마음먹은 것 같다”며 “여의도 의원 몇 명이 모여서 출마를 못 하게 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누르면 튕겨 나갈 거라고 상대 쪽이 보는 것 같은데, 불출마 압박이 커질수록 당원들의 출마 요구도 거세져 오히려 이 의원이 고심할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마 선언은 전당대회 규칙이 확정되는 7월 초 중순께가 될 것 같다. 8월2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시간이 충분한 만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라고 한다.

‘대선 재수생 이재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1987년 대선 이후 역대 대통령과 대선주자들의 전례가 있다. 이재명 의원에게는 정면교사일 수도 있고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

김영삼·김대중·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재수에 성공한 경우다. 재수의 방식은 제각각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3당 합당을 했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절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점진적으로 표를 늘려갔다. 1987년 600만표에서, 1992년 800만표까지 얻었지만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1997년 대선에서 1000만표를 받아 당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석패한 뒤 깨끗하게 승복하고 물러나 있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해 당이 위기에 처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불려 나와 총선과 대선을 잇달아 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국회의원으로 비교적 조용히 지내다가 2015년 2월 대표가 되면서 대선주자의 길을 다시 걸었다.

실패한 재수생들도 많다. 이회창 전 총재는 1997년 대선에서 지고 곧바로 총재로 복귀해 5년 동안 ‘다음 대통령’처럼 지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2007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3위에 그쳤다.

이인제 전 의원은 1997년 대선에서 3위를 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했다. 여당 안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2002년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다. 2007년 대선에 또 출마했지만 겨우 0.7%를 득표했다.

손학규 전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겨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2년 경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했다.

홍준표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원희룡 의원에게 밀려 4위를 했다. 2017년 자유한국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2위를 했다. 2022년 국민의힘 경선에서는 윤석열 후보에게 졌다. 6·1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당선돼 와신상담 중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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