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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천경자 '미인도' 기묘한 논란…"검사가 '진품하면 어때요' 회유" [法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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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어미가 어디 있느냐.” “눈에 힘이 없어 얼굴이 허깨비 같다. 코가 벙벙하게 그려졌고, 머리의 꽃이 조잡하다. 이건 내 그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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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위작 논쟁이 벌어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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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세상이 그녀의 작품이 맞다고 하는 기묘한 상황이 30년 넘게 계속됩니다.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고 불리는 고(故) 천경자 화백(1924~2015) 본인이 생전인 1991년부터 제기한 ‘미인도’ 위작(僞作) 논란 이야기입니다.

역사도 깁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국가가 압류한 미술품 가운데 천 화백의 미인도가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를 소장하게 됐는데요.

1990년 현대미술관 측은 전국 순회 전시를 하면서 미인도를 아트포스터 형태로 제작해 판매했습니다. 천 화백은 전시가 끝난 이듬해 지인이 우연히 대중목욕탕에 걸린 미인도 포스터를 보고 알려줘 이 ‘미인도’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이후 천 화백은 “재료와 채색기법 등이 내 작품과 다르다”고 위작이라고 정식으로 문제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술관 측은 자신들의 감정 결과 진품이라며 천 화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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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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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2월에는 천 화백 유족 측의 의뢰를 받은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가 다중스펙트럼, 초고해상도 단층 촬영 등 첨단 기법을 통해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감정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12월 검찰은 다시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13점을 감정하고, 대검찰청·국립과학수사연구소·KAIST를 통해 미인도에 대한 X선·적외선·투과광사진·3D촬영, 디지털·컴퓨터 영상분석, DNA분석 등을 통해 ‘진품’이라고 매듭 지은 것입니다. 당시 검찰은 뤼미에르 팀이 사용한 계산방식을 천 화백 다른 작품에 사용했더니 진품일 확률이 4.01% 수준으로 나왔던 점 등을 들어 ‘믿을 수 없는 결과’로 판단했다고 했죠. 유족 측이 현대미술관 측 인사들을 사자명예훼손·저작권법위반·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도 모두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이 사이에 위조 화가인 권춘식씨가 ‘미인도’를 자신이 위작했다고 주장했다가 “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2016년 검찰 수사로 위작 논란은 끝난 게 아닙니다. 5년이 지난 지난해 7월 천 화백의 딸인 김정희(68) 미국 몽고메리대 미술과 교수가 “검찰이 불법적인 수사를 통해 미인도가 어머니의 작품이 맞다는 결론을 내려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30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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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검찰은 25년간 위작 논란이 일었던 천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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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저작권을 권력이 뒤바꿔서는 안된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208단독(부장 이정권)에서는 위작 사건 당시 검찰 선정 감정위원 중 한명이었던 한 최광진 미술평론가를 상대로 한 증인 신문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6년 검찰 수사 당시에도 ‘위작’이라는 의견서를 냈던 최 평론가는 이날 법정에서 “검사가 ‘그냥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 당시에도 유족들은 최 평론가의 발언 등에 기대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허위 증언을 유도했다며 진정서를 낸 바 있죠. 유족은 이번 소장에도 당시 수사팀이 최 평론가를 비롯한 감정위원들에 대해 허위 고지 및 회유 시도가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당시 유족은 검찰 결론에 불복해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기각됐고, 검찰의 불기소가 정당한지 가려달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서 대법원까지 갔지만 “기록에 비춰 살펴봐도 원심 결정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 위반의 위법이 없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해당 검사 역시 ”그런 사실이 전혀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천경자 평전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을 펴낸 최 평론가는 이날 법정에서 “저는 유족과 아무관계 없다”면서 “이렇게까지 나온 것도 역사 앞에서 미술계가 잘못하는 게 있어서 나온 것이고, 진위 문제라기보다 여성작가 인권침해”라고 말했습니다. “작가의 저작권을 권력이 뒤바꿔서는 안된다”고도 했죠.

다음 재판은 7월 22일 계속됩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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