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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740살 주목, 대통령 떠난 자리 묵묵히 지키고 있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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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DMZ’ 청와대와 나무

고려시대 이후 1000년 흔적 담긴 터

74년간 정성들여 가꾼 7만여 평 경내

5만여 그루 나무, 역사의 현장 지켜봐

세계일보

수궁터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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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에 국격을 상징해온 청와대는 본관이나 영빈관 등 경내 유명 건축물뿐 아니라 자연유산이 숨쉬는 소중한 숲이기도 하다.

조선 궁궐에 전통적으로 담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의 미(美)가 경복궁 후원인 청와대터 환경에도 고스란히 남아있고, 마치 비무장지대가 그렇듯 도심 한가운데 7만평 규모로 통제되고 보존된 야생의 내음이 나는 도심 속 허파다.

◆작은 DMZ 청와대라는 숲

고려시대 삼경 중 남경 시절부터 내려온 1000년 역사의 흔적이 자연 속에도 남아있고, 남한단독정부 수립 이래 74년간 정성들여 가꾼 정원이 있다. 본관 앞 대정원과 본관 오른편에 있는 소정원, 녹지원 등 스스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품 있는 정원들은 물론이고, 모르고 보면 전혀 안 중요해 보이는 영빈관 가는 길 화단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있는 등 곳곳이 보존 대상이다. 7만평 경내가 통째로 대통령의 정상외교와 내치업무가 이뤄진 업무공간이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자생한 나무와 조경 목적으로 심은 나무가 혼재돼 있다. 수백년 전 바람을 타고 들어와 스스로 씨앗의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들은 도심 속 통제된 구역에서 자연스레 보존이 돼 온 셈이어서, 오늘날 식물학의 보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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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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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청와대 경내 자연은 조사 및 연구 자료 등이 극히 드물어 ‘미지의 세계’다. 2012년 대통령실이 펴낸 ‘청와대의 꽃 나무 풀’, 2018년 대통령비서실이 펴낸 ‘청와대의 나무 180가지’, 2019년 청와대경호처가 펴낸 ‘청와대의 나무와 풀꽃’ 정도다.

‘청와대 나무와 풀꽃’ 발간사에 “청와대에 5만여 그루의 나무가 살고 있다. 연 27만명 관람객이 들어오는데 수목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고, 나무와 풀꽃, 식재된 위치와 사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직무에 활용할 마땅한 교재가 없음이 안타까워 책자를 발간하게 됐다”는 주영훈 당시 경호처장의 언급이 나온다.

현 정부의 청와대 전면개방은 물리적인 개방과 관람객 수용 인원 확대에 초점을 맞췄을 뿐, 관련 자료 등을 공개한 적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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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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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문화재인가요

청와대 관람객들은 무심코 지나가곤 하는 자연환경이 예비 천연기념물이나 잠재적 자연유산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자연물도 문화재’라는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일은 글로벌 시민의식의 필수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하고, 별도의 협약으로 무형유산까지 정의한다.

국내에서는 일본에서 따 온 문화재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범위가, 과거 유물의 재화적 가치에 머물러 한정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했다. 이에 지난 4월부터 우리나라도 문화재란 단어 대신 ‘국가유산’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특히 문화재라는 용어가 자연물(천연기념물(동식물·지질)·명승(경관))도 문화재라는 대중적 인식을 자리 잡게 하기 어렵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제 문화재는 국가유산이라는 포괄적 개념하에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분류체계가 개선됐다.

지난 17일 공식 현장답사를 한 전영우 문화재위원장 겸 천연기념물분과장은 “역사·식물학 측면에서 중요한 청와대의 나무들에 대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검토하겠다”고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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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원 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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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 반영하는 대통령과 나무

우리나라에선 특히 대통령과 나무의 인연도 고유하다. 전쟁의 한복판이었던 땅에서 정부를 일군 우리나라는 벌거벗은 민둥산을 푸르게 만드는 게 국가의 지상과제 중 하나였다. 식목일을 제정하고 대통령들은 나무 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식목일마다 청와대에서 나무심기 행사를 하고, 식목일이 아니어도 정치적 의미를 새기려 나무를 심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심은 나무들이 대표적 사례다.

‘청와대 나무와 풀꽃’의 집필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대통령들은 임기 중 4, 5그루씩 심어 현재 40그루 정도인 ‘대통령의 나무’를 남겼다.

대통령 기념식수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있었을 테지만 남아있는 건 1978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심은 가이즈카향나무가 가장 오래된 나무다. 그 이전 기념식수는 남아있지 않다.

각 나무에서 대통령의 철학을 해석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책에서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식수가 서어나무(2014년 5월16일, 청와대 밖 백악정에 식재)인 것이 특이하다고 지적한다. “꽃이 아름답지도 않고 열매가 맛있지도 않으며 목재로도 쓰임새가 거의 없는 나무여서”다. 이어 “다만 백성들과 가장 가까이 있던, 비록 쓸모는 적어도 말없이 산을 지켜주던 나무”라며 “서민과 눈높이를 맞추려던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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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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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나무도 있다. 영빈관 동쪽에서 자라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식수 가이즈카향나무다. 일본 오사카 남부 가이즈카 지방이 고향인 나무다. 이 수종이 한국에 오게 된 건, 일제강점기에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대구 달성공원에 심으면서다. 서울현충원에도 이 나무들이 심겨 있다가 역사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나왔고, 문화재청도 이 나무를 ‘사적지 부적합 수종’으로 결정하면서 대부분 제거됐다.

각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공간으로서 의미가 담긴 공간도 있다. 한때 유실수 단지라 불린 친환경 시설단지가 있는데, 전국 10개 시·군에서 2009년부터 선정해 가져온 지역의 대표 유실수를 모아놓았다. 전남 구례 산수유나무, 경남 하동의 매화나무, 강원 고성 머루, 충북 보은 대추나무, 경기 안성 포도, 충남 천안 배나무, 전북 익산 석류나무, 경북 영주의 사과나무, 경북 포항의 단감나무, 경북 김천의 자두나무가 있다.

◆최고령 수목부터 특이 수목까지

청와대에서 제일 유명한 나무는 수궁터에 있는 주목이다. 740년 넘게 살아남은 최고령 수목이어서다. 고령 수목들이 특히 소중한 이유는 경복궁 후원을 일제가 파괴한 탓에 역사의 흔적을 말해줄 고목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붉은 나무’라는 뜻의 주목은 원래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며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극한 환경에서 오래 버티다 보니 주목 고목은 흔히 몸체가 비틀어지고 꺾어지고 때로는 속이 모두 썩어버려 텅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 수궁터 주목도 부실해 이런 모습으로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나무여서, 실제로 강원도 정선에는 1400살 된 주목(천연기념물 제433호)도 있다. 박 교수는 주목의 세포가 단 2종으로만 이뤄져 있는 단순함을 험난한 자연 속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을 비결 중 하나로 소개한다. 또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하면 공부하던 집 마당에 심었다는 회화나무가 녹지원 숲 용충교 옆에 있는데, 이 나무는 수령이 230년에 달한다. 이 나무의 별칭은 ‘실세나무’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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