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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주식부자 산업은행] HMM·아시아나 무분별한 CB 주식 전환···재매각 힘들게 하는 '달콤한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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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해양진흥공사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잇달아 HMM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영구 전환사채(CB)에 주식 전환권을 행사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정책금융기관이 보유한 HMM과 아시아나항공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도 주식 전환권이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CB·BW에 주식 전환권이 활용된다면 현재 발행된 주식보다 더 많은 물량이 정책금융기관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이 경우 정책금융기관은 주식 차익을 얻을 뿐 아니라 HMM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분을 50% 이상 확보할 수 있다.

◆CB·BW 바꾸면 현재 발행 물량보다 많아

28일 해운·항공업계에 따르면 HMM과 아시아나항공 등 정책금융기관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는 기업의 주식 전환권 물량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HMM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2017~2022년 기간 동안 대규모 CB·BW를 산은과 수은, 해진공을 상대로 발행했다. 이는 HMM과 아시아나항공 등이 경영 악화로 자본 잠식이 발생하거나 신용등급이 하락해 시장에서 단독으로 자금 조달이 불가능했던 탓이다. 이에 정책금융기관들은 HMM과 아시아나항공에 부족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자본 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해당 CB·BW를 인수했다.

해당 CB의 조건은 모두 비슷하게 설정돼 있다. 만기는 30년 정도로 길지만 발행 후 일정 시점(2, 6년 등)에서 금리가 상승하는 스텝업 조항이 있다. 해당 시점 이후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금융비용(이자)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이자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HMM과 아시아나항공은 CB에 대한 조기상환(콜옵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정책금융기관은 이같이 조기상환 요청이 행사됐을 경우 해당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주식 전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식 전환권이 행사되지 않는다면 HMM과 아시아나항공은 CB로 조달한 자금을 상환해야 하나, 주식 전환권이 행사된다면 이를 상환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정책금융기관도 해당 자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주가 차이에 따른 평가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주식 전환권 행사를 기업과 정책금융기관의 '윈윈'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문제는 정책금융기관의 주식 전환권이 무분별하게 활용된다면 발행돼야 할 주식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HMM은 지난 3월 말 기준 6건의 CB·BW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된다면 5억3600만주(발행시점에서 세부변동 가능)가 발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HMM의 주식 총수 4억8903만9496주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이 경우 HMM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주식 물량은 현재 1억9879만156주(지분율 40.65%)에서 산술적으로 7억3479만0156주(71.68%)로 급격히 늘어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6건의 CB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된다면 8216만8511주가 신규 발행될 수 있다. 이는 현재 아시아나항공 주식 총수 7441만1764주보다 많은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산은 등은 주식을 보유한 이후 나중에 매각하는 것이 더 많은 차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소액주주 등 기존 투자자의 주식 가치를 보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수익 극대화가 긍정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HMM 주가 급락 속 몸값만 커져···M&A 업계 "향후 재매각 걸림돌 될수도"

최근 산업은행과 수은, 해진공의 HMM과 아시아나항공 등에 대한 영구 전환사채(CB) 주식 전환 행보를 놓고 국책금융기관 사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적자금 회수와 기업 구조조정 중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한지 의견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수·합병(M&A) 업계에서는 CB의 주식 전환이 향후 재매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의 가치가 크게 변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책금융기관이 보유한 지분만 늘어난다면 몸값이 부풀어 원매자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현재 HMM과 아시아나항공의 CB 주식전환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향후 HMM과 아시아나항공의 CB에 동일한 주식 전환권 행사 기회가 발생할 수 있는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탓이다.

이는 정책금융기관 사이에서도 의견차가 뚜렷이 발생하고 있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HMM의 CB 전환을 통해 얻은 주식 평가차액과 그에 따른 배당금 등을 '성과'라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해 이 전 회장이 HMM의 CB 전환 시기 "이익 기회가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면 배임"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시각이다.

반면 방문규 전 수출입은행장(현 국무조정실장)은 지난해 하반기 국정감사에서 대한항공 CB의 주식 전환에 대한 국회의원의 질의에 "국책은행은 수익률을 목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전 회장은 HMM 등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를 중시했으나 방 전 행장은 기업 구조조정에 좀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M&A업계에서는 양측이 모두 일리가 있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된 의견을 내놓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향후 재매각을 감안하면 CB의 무분별한 주식 전환이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는 CB의 주식 전환으로 기업 가치가 급격히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책금융기관의 보유 지분이 급증하는 탓이다.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해당 기업이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 부담도 줄어들기는 하나 수익성과 영업 경쟁력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이 없기에 기업 가치를 극적으로 제고하기는 어렵다.

반면 국책금융기관이 보유한 지분은 크게 늘어난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산은과 해진공이 각각 CB의 주식 전환을 결정하면서 기존 16.88%에 불과했던 국책금융기관의 지분율 합계는 40.65%로 23.77%포인트 늘었다.

HMM 주식이 4만원 안팎에서 거래돼 시가총액이 16조2157억원에 달한 지난해 하반기 HMM의 새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서 4조원 수준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이달 HMM의 주가가 2만6000원에 불과해 시가총액이 12조6661억원으로 줄었으나 HMM의 몸값은 더욱 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0.65%까지 늘어난 국책금융기관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야 하는 탓이다.

이에 HMM이 재매각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원매자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국책금융기관이 보유한 지분율이 많지 않을 때도 투자해야 할 자금 규모가 너무 크다는 시각이 많았는데, 이제는 더욱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책금융기관이 영원히 HMM이나 아시아나항공을 보유할 수 없고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시장에 재매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감안하면 무분별한 CB의 주식 전환은 재매각의 허들을 높이는 함정에 가깝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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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dong01@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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