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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장석주의 시각] 여름의 초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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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이투데이

여름의 초입입니다. 가뭄으로 저수지 물이 마르고, 땡볕에 농작물이 타들어간다고 걱정들이 많았습니다. 건조한 날씨 탓에 유독 산불이 잦고 오랜 숲들이 화마에 집어삼키는 장면들이 뉴스 화면에 나올 때마다 탄식이 터져왔습니다. 야속하게도 비 소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메마른 땅을 적시고 저수지의 수량을 채웠습니다. 비 그친 저녁엔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가까운 데서 울어댔습니다. 습지가 없는 주택가인데 어딘가에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숨을 죽이고 살아 있었나 봅니다. 고양이 두 마리가 초저녁 잠에 들고 난 뒤, 저 습지에 숨어서 울어대는 개구리와 맹꽁이의 소리에 오래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름은 어느덧 우리 곁에서 번성입니다. 집 건너편의 녹색 숲은 바람이 불면 군무를 추듯 율동을 보여줍니다. 저 꿈틀대는 녹색 짐승들! 그건 참을 수 없는 녹색의 희열이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며칠 전 에어컨 기사가 들러 집 안의 에어컨 작동 상태를 점검하고 냉매가스를 충전했습니다. 올여름엔 계면활성제가 든 생활용품 사용을 줄이고, 호밀빵이나 씹으며 한가롭게 파블루 네루다 시집 ‘100편의 사랑 소네트’를 읽고, 그다음엔 숲속 그늘을 찾아다니며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아’나 읽으며 보낼까 했습니다. 여름의 향기에 취해 숲이 만든 그늘들과 물의 고요를 오래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난망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름의 초입에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되고, 우리나라 아름다운 100대 정원 중 하나로 뽑힌 대관령의 살바토레에서 강연을 하고, 생후 두 달 된 아기고양이를 입양하고, 그리고 뜻밖의 병으로 여러 날 누워 지냈습니다. 고양이가 온다는 것은 우리 생활의 한 부분에 변화를 초래하는 일입니다. 이건 실로 대단한 사건, 멀리서 온 기적! 아기고양이는 생명의 약동 그 자체입니다. 이 작고 놀라운 존재는 한순간도 멈춤 없이 에너지를 방출해 내는데 경이롭기조차 합니다.

저는 며칠 앓아누웠는데, 대단한 병은 아니고 갑자기 찾아든 근육통, 두통, 고열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먹었는데 쉬이 낫지 않고, 밤에는 이불이 축축해질 정도로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평소 건강한 체질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꽤 오래 고열이 지속되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병이란 외부의 나쁜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해 일어난 소동이거나 생명의 동적 평형이 어긋나고 깨진 상태입니다. 아파 보니, 알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서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게, 당연하게 누리던 건강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지금도 얼마나 많은 환우들이 병상에 누워 병과 싸우고 있는 걸까요? 그들이 병을 떨치고 일어나 사는 기쁨을 누리고, 생명의 약동과 희열을 맛보기를 소망합니다. 당신도 알지 모르지만 오래전에 읽은 박희진 시인의 ‘회복기’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조지훈의 ‘병에게’, 윤동주의 ‘병원’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어머니 눈부셔요./마치 금싸라기의 홍수 사태군요./창을 도로 절반은 가리시고/그 싱싱한 담쟁이넝쿨잎 하나만 따주세요.” 금싸라기 홍수 사태라는 햇빛 이미지는 질병의 어두운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며 선명하게 빛납니다. 삶은 본디 순진무구한 녹색의 불길입니다. 시인은 이런 삶의 본래성에 눈길을 돌려 병의 어둠을 고찰하고, 병의 속성을 끄집어냅니다. 뭐, 병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나름의 핵심을 짚는 것입니다. “병이란 삶 안에 쌓이고 쌓인 독이 터지는 것,/다시는 독이 깃들지 못하게/나의 삶은 타는 불길이어야 하고/나의 피는 끊임없이 새로운 희열의 노래가 되어야죠.” 마침내 병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온 어린 환자는 ‘어머니’라는 큰 존재를 불러들여 제 생을 의탁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열일곱 살 소년의 실제 어머니이자 동시에 무한히 부드러운 약손을 가진 근원 존재,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른 대지모신입니다. “어머니, 나도 살고 싶습니다./나는 아직 한 번도 꽃 피어 본 적이 없는 걸요./저 들이붓는 금싸라기를 만발한 알몸으론/받아 본 일이 없는 이 몸은 꽃봉오리,/하마터면 영영 시들 뻔하였던/이 열일곱 어지러운 꽃봉오리/속을 맴도는 아픔과 그리움을/어머니, 당신 말고 누가 알겠어요./마지막 남은 미열이 가시도록/이 좁은 이마 위에/당신의 큰 손을 얹어주세요./죽음을 쫓은 손,/그 무한히 부드러운 약손을.” 이 시는 병의 깊고 어두운 협곡에서 빠져나온 눈부신 생의 세계로 살아 돌아온 어린 환자의 생명 찬가이자 동시에 병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은 노래입니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울컥해지곤 했습니다. 다시 읽어봐도 영양분이 듬뿍 담긴 음식처럼 풍성한 사유를 끌어내는 시입니다.

이투데이

이 시의 주인공은 겨우 열일곱 살입니다. 아직 제대로 꽃봉오리를 활짝 펼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로 아픕니다. 하마터면 생과 이별할 뻔했습니다. “병이란 삶 안에 쌓이고 쌓인 독이 터지는 것”! 그 병을 견디고 이제 회복기로 들어서며 사람들이 금싸라기 햇빛을 받으며 신나게 웃고 떠드는 소리, 활보하는 소리에 들뜬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어머니, 나도 살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은 얼마나 간절하고 순정한가요? 여름의 녹색 불길 그 자체인 나무처럼 건강하고 싶다는 소년의 간구, 삶의 환희에 대한 갈망으로 들썩이는 기운이 불현듯 내 소년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바가 있습니다. 소년 시절의 병에 대한 기억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약에 취해 잠들던 그 낮과 밤들을 잊을 수가 없다. 질병은 신체의 함량미달, 상궤에서 벗어남, 취약점들의 우연한 노출이다. 나는 자주 의기소침해지고 비관주의에 빠지곤 했지만 병이 항상 최악의 것만은 아니다. 식구들이 다 나가고 빈집엔 고요가 끓어 넘치는데, 공중에서는 제비가 날고 환한 햇빛이 넘치는 마당엔 모란과 작약이 꽃을 피우고 서 있다. 나는 깨끗한 이불을 덮고 혼자 누워 있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의 정밀이 손에 만져질 듯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차가운 손으로 고적하게 한 나정을 견딘 내 뜨거운 이마를 짚을 때 나는 진정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안도하곤 했다. 가벼운 병들은 어떤 몰아경의 체험이고, 병을 떨치고 일어날 때마다 몸과 마음이 부쩍 자라 있곤 했다.”

따지고 보면 병은 우리 삶의 불가피한 일부입니다. 아플 때 우리는 비로소 오래 잊고 있던 몸을 문득 돌아보게 됩니다. 병이란 대체로 쓸쓸하고 고독하게 찾아와 우리 몸을 통렬하게 깨우는 것! 병은 통렬한 방식으로 몸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지나온 삶의 여정을 찬찬히 돌아보게 합니다. 병은 오랜 영혼으로 가는 고요한 통로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병이 삶의 나쁜 방식이나 도덕적 나태에 내리는 징벌은 아니지만, ‘과연 나는 잘 살아 왔는가?’라는 물음과의 마주침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여름은 바다의 소금을 단단하게 해서 수확의 때를 준비하고, 모든 노래에 멜랑콜리를 충전시키며, 땅에서는 어린 포도알을 무르익게 하고 비의 나무들을 자라나게 합니다. 온갖 과일들이 밝은 빛 아래 단맛을 배게 할 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함께 흐르며 불타는 별들이 붕붕거리는 여름! 단 한 번의 여름! 여름은 저 멀리에서 와서 영원의 중심을 관통하고 지나갑니다. 나는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이 여름이 이룩하는 눈부신 기적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여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여름이 빛날 때 내 여름 또한 빛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름 초입에 맞은 내 병과 여름의 경도(徑道) 사이에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다만 내 생의 의례로서 병을 섭섭지 않게 맞고 떠나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만의 강렬하고 찬연한 여름을 품었다가 전별하겠습니다.

[장석주 시인, 인문학 저술가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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