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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과학 놀이터] 파도소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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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이투데이

늦은 오후 바닷가를 걷는다. ‘쏴아~’ 소리를 내는 파도가 연신 밀려온다. 파도 소리에 더위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이 시원한 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해답은 물거품을 이루고 있는 공기 방울에 있다. 공기 방울은 파도가 요동칠 때도 형성되지만, 바다에 빗방울이 부딪히거나 낡은 샤워기 헤드에서 물이 똑똑 떨어질 때도 만들어진다. 공기 방울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파도 소리나 물 떨어지는 소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바다에 빗물이 떨어지는 걸 예로 들어 공기 방울의 형성 과정부터 살펴보자. 우선 빗방울이 바닷물의 표면에 부딪힌다. 그런데 충돌이 일어나자마자 물방울이 수면 아래로 떨어지는 건 아닌데, 이유는 표면장력(surfacetension)이라 불리는 강한 인력 때문이다. 이는 액체 표면을 최대한 작게 하려는 힘의 성질을 나타낸다. 표면장력은 일상에서 쉽게 관찰된다. 일례로 물이 찰랑찰랑하게 들어 있는 컵에 클립을 하나둘 넣어도 표면이 아주 납작한 계란 노른자 모양으로 부풀어 오를 뿐 생각처럼 쉽게 넘치지는 않는데, 원인은 표면장력이다.

이 장력이 작용하는 바다 표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건 신축성이 있는 팽팽한 천 위에서 하는 도약운동과 유사하다. 발바닥이 천을 누르면 그곳이 아래로 조금 패이듯이 빗물이 닿은 수표면은 잠시 아래로 처진다. 물방울이 물속으로 뚫고 내려가는 건 바닷물의 표면이 원상태로 회복되고 나서다. 물방울이 통과하며 생긴 구멍은 바깥 공기로 채워지는데, 이 공기가 다 빠져나가지 전에 구멍 입구가 재빨리 닫히면서 공기 방울이 생긴다.

물속 수포는 숨을 쉬는 것처럼 ‘커졌다 작아졌다’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소리를 만든다. 진동수(f, frequency)는 이런 되풀이 운동이 주어진 시간 내 몇 번이나 발생하는지를 의미하는 값으로 f가 작으면 낮은 소리가, 크면 높은 소리가 들린다. 한 개의 공기 방울은 하나의 특정 진동수를 만드는데, 그 값은 공기 방울의 크기와 역비례 관계에 있다. 즉 방울 직경이 클수록 진동수는 작아져 알토나 베이스처럼 낮은 소리를 내고, 반대로 작을수록 f는 커져 소프라노나 바리톤 같은 높은 소리를 낸다.

소리가 사람 귀에 들릴 정도가 되려면 수포 반경이 최소 머리카락 하나의 굵기 정도는 되어야 하고, 또 물방울이 적당한 높이에서 떨어져야 한다고 한다. 낡은 샤워기 머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귀에 거슬려 샤워기를 욕조 바닥에 내려놓은 경험이 있다면 쉽게 이해되는 이야기다.

공기 방울이 한 개일 때와는 달리 공기 방울이 여러 개일 경우 각각의 진동들이 서로 영향을 줘서 진동수를 낮춘다. 가령 공기 방울이 하나일 때 진동수를 100이라 하면 두 개의 공기 방울이 서로 근접해 만들어질 경우 결합 진동수는 70에 불과하다. 결국 공기 방울이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질수록 그들 간의 결합 진동수는 한층 더 낮아진다. 수포가 대규모 집단으로 발생하는 큰 파도가 낮고 무거운 소리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분이 처지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파도 소리를 들으면 편안해진다고 한다. 이유는 파도가 내는 주파수 f의 특성이 대규모의 치료 호르몬을 발생시키는 뇌파인 델타파와 유사하기 때문이라 한다. 파도 소리는 생성 과정이나 효과 그 어느 쪽으로 봐도 놀랍고 신기하다.

[이난영 과학 칼럼니스트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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