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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횡재세 논란] 정부·국회 연일 금리인하 압박... 은행의 사회적 역할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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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첫 타깃될까 노심초사

은행, 공공·상업 특성 모두 갖춰

"민간이 주주인 사기업, 개입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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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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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국회가 연이어 시중은행에 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하면서 은행의 공적 기능과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은행이 진입 규제로 인해 높은 이익을 거둔 만큼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중은행과 일부 전문가들은 은행이 사기업인 만큼 과도한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여야 “국민 이자 부담 낮춰야” 한목소리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업권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금리 인하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포문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 상승기에 국민의 이자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이 원장은 같은 날 은행장들을 만나 “금리 인상기에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취약 차주에 대해 금리 조정 폭과 속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은행들은 윤 대통령과 이 원장이 같은 날 같은 취지로 발언한 것을 사실상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고, 이후 일부 은행은 대출금리를 낮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새 정부의 첫 번째 타깃이 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전날 물가·민생 안정 특별위원회를 열어 은행권에 “예대마진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없도록 자율적으로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금융당국에 예대금리차 공시 강화, 가산금리 산정 합리화 등 조치를 해줄 것을 당부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가계부채 진단 및 현안 대책 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열어 여당과 같은 의견을 냈다.

업계 일각에선 시중은행들이 당분간 금융당국과 정치권 눈치를 보면서 금리를 더 인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대 금융지주가 호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돼 금리 인하 압박은 더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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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 발언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일 오전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2.6.20 hama@yna.co.kr/2022-06-20 11:20:58/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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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기능 있지만 엄연한 사기업... 과도한 규제는 곤란”

은행이 이 같은 요구를 받는 이유는 업종 특성상 공공적 성격과 상업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은행이 진입장벽이 높은 규제산업인 만큼 쉽게 이익을 거둔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예금을 받아 가계나 기업에 대출해주고 이익을 올리는 게 비교적 손쉬운 사업모델로 치부된다.

또한 은행은 부실이 발생했을 때 정부나 중앙은행이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켜주기 때문에 공기업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은행 부실을 막기 위해 86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금융시장에서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도 은행이 공공적 성격을 띤다는 근거로 언급된다.

그러나 시중은행을 산하에 두고 있는 금융지주는 민간 주주들이 지분을 보유한 주식회사다.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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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물가 및 민생안정 특별위원회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국민의힘 류성걸 민생안전 특별위원장이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물가 및 민생안정 특별위원회 4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 배준영 의원. 2022.6.28 srbaek@yna.co.kr/2022-06-28 10:34:45/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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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도 은행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장에서 자율적인 금리 결정, 기업의 자체적인 원가 산정, 이익 등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답했다.

이어 “은행은 상법에 따른 주주이익뿐 아니라 공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주주들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고, 주주이익을 대표하는 임원진도 그 뜻을 같이하고 있다”며 “지난 간담회를 비롯한 여러 자리에서 금리 상승기에 금리 인상폭과 속도에 대해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실에선 은행이 회사 이익과 배치되는 의사 결정을 할 때가 많다. 2020년 4월부터 시작된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까지 이 조치를 받은 대출 원리금은 291조원이다. 올해 같은 금리 인상기에 금융업권이 이 자금을 운용했다면 더 큰 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종진 연세대 교수는 “정부나 국회가 인위적으로 은행의 가격 변수에 개입하는 건 곤란하다”며 “억지로 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할수록 고신용자만 대출을 받게 되고, 나머지는 제2금융권, 대부업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은행 예대마진은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서 ‘최근 은행 예대마진 상승 요인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예금·대출금리에 따른 예대마진 등 가격변수들은 시장원리에 의해 시장경쟁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며 “물론 이 과정에서 담합이나 여태 경쟁제한 행위 등이 있어서는 안 되며 금융·경쟁당국은 이러한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조치와 모니터링을 하고, 만일 이러한 행위가 있으면 엄격하게 제재하는 등 시장경쟁 확보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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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기자 jms9@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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