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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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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母 극단적 선택, 성전환 후 못 뵈러 갔다"..오은영 "가엾어" 위로('금쪽')[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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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POP=김지혜 기자]
헤럴드경제

방송 캡처



풍자가 삶의 굴곡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1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는 트렌스젠더 유튜버 풍자가 출연해 오은영의 상담을 받았다.

풍자는 고통이 따르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직후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커피를 무려 2L씩 마실 만큼 워커홀릭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 여기에 풍자는 이 같은 인공관절 수술과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서도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다면서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헤롱헤롱 한다는 게 싫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일에 대한 답장을 다 보냈다"고 심각한 일 중독을 밝혀 충격을 안겼다.

트랜스젠더로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을까. 풍자는 "술 취한 여성분과 화장실과 만난 적이 있다. 나를 변기로 끌고가더니 같은 여자니까 서로 보여달라고 하더라. 너무 궁금하다고. 갑자기 가슴을 만졌다"며 "더 깊게 들어가면 모양이나 기능을 정말 서슴지 않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다. 나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비밀이 없어야 하는 사람이다. 생식기나 몸의 중요한 부분을 우리는 궁금하니 말해줄 의무가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지켜야 할 부분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풍자는 또 자신을 향한 악플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너는 여자로 살겠다는 애가 왜 목소리가 그래, 뚱뚱해 한다. 저는 이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바비인형으로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여자로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 키가 작은 여성도 있고 큰 여성도 있고 덩치가 있으신 분들도 있고 마른 분들도 있잖냐"는 생각을 전했다.

커밍아웃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풍자는 "저는 커밍아웃을 세 번을 했다. 첫 번째는 아웃팅을 당했는데, 저희 아버지도 그때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 얘가 왜이래, 반항적이야 웃으며 넘어가셨다. 두 번째 커밍아웃에서는 너무 많이 우셨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의 부재로 네가 집에서 엄마 역할을 하다보니 병이 생겼나보다 하셨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그 병을 고쳐줄게, 반응이셨고 세 번째에서는 심각성을 이제 아시더라. 칼을 들고 대치를 했다"고 밝혔다. 결국 풍자는 아버지와 6~8시간의 대화 끝에 도망을 치고 말았다고.

현재 가족과 관계는 어떨까. 풍자는 "정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우시더라. 아빠가 된장찌개에 밥해줄 테니까 집으로 오라는 딱 한마디였다. 그러고 온가족이 모였는데 서로 못알아봤다"며 지금은 잘 지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느날 펑펑 울면서 우리 큰아들이 죽은 것 같아서 안되겠다고. 네가 내 자식인 건 변치 않지만 내 아들이 죽은 것 같다고, 이걸 못받아들이겠다고 하셨다"고 털어놨다.

오은영은 이에 "아버지는 딸로서 받아들이긴 참 어려우실 것 같다"면서 "부모의 사랑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딸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연락 오면 전화하고 식사 같이하는 것 자체가 너를 내 자식으로서 사랑한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고 위로했다.

이어 오은영은 풍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엄마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막냇동생이 3살이던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풍자가 모든 것을 케어하던 상황이었다는 것. 아버지는 먼 곳에서 일을 했지만 여전히 형편은 어려웠고, 몇몇 어른들은 풍자를 돕는 척 상한 음식을 주기도 했을 정도였다.

풍자는 "동생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부모 없는 애들이라 놀려서 밥을 못먹겠다고. 저는 그런 얘기 다 괜찮은데 왜 우리 애들한테 그러지, 그런 게 컸다. 제발 저만 가난하게 해주세요 했다"고 회상했다. 오은영은 "부모의 심정이다"라며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이 경험으로 인해 풍자가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오은영은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냐"며 조심스레 물었다. 풍자는 "저희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사기를 당해서. 일찍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어 "(이송 후) 병원에서 더이상 해드릴 게 없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 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일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동생들을 동네 교회 목사님에게 맡기고 제가 혼자서 간호를 했다"고 아픈 경험을 털어놨다. 임종까지 모든 과정을 풍자 홀로 감당했다는 것.

오은영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생존해계셨을 것 같은데 그걸 다 케어를 하셨구나"라고 하자 풍자는 "그렇다. 저도 그때 기억이 생생한데 혹시나 어떻게 될까봐 자본 적이 없다"고 답했고, 오은영은 "지금 각성을 하고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것에 영향을 많이 줬다고 보인다"고 진단했다.

풍자는 "어디가서 한 번도 얘기해본 적 없는 이야기다. "제가 잠을 자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빈소에 앉아있는데 바보처럼 잠이 뭐라고 자다가 이런 일을 만들었을까. 잠을 안잤더라면 뛰쳐나가 뺏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이 정도의 거리였는데 나는 왜 퍼질러 자고 있었지, 생각이 너무 나더라"고 남모를 죄책감을 털어놓았다.

오은영은 "그게 풍자 씨 탓이 아닌데 '내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드시나보다"고 위로하면서 "편하게 누워 자는 것도 죄책감이 느껴지고 휴식을 취해도 죄책감이 느껴지고, 쉬었다가 일이 끊기고 가난했던 시절을 다시 겪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불안감이 있는 걸로 보인다. 가엾어라"라며 그의 워커홀릭과 죄책감을 안타까워했고, 이에 박나래를 비롯한 패널들도 눈물바다가 됐다.

오은영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뵈러 간 적이 있느냐"고 하자 풍자는 "한 번도 안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 제 모습을 보시지 못했잖냐. 그러니까 더 못가겠더라"고 답했다. 오은영은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뵈러 가시라. 어떤 모습이어도 어머니는 자식으로서 굉장히 반가워하실 것이다. 보고싶어하실 것"이라고 따뜻하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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