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푸틴 혼내려다 기후 파괴 불붙였다…서방의 우크라전 딜레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지난 2020년 미국 서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캘리포니아 금문교 일대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록적인 폭염과 강한 바람 탓에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 등 3개 주를 비롯한 서부 전역에서 약 80건의 산불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공공기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이 쓰는 가스의 40%를 공급하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일시적으로 천연가스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기후 변화 문제를 우려하는 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화석연료인 LNG 사업 투자가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인류 공동의 목표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도 G7 성명 발표 후 트위터를 통해 "화석 연료는 답이 아니다, 답은 재생 에너지"라며 "화석 연료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은 망상적(delusional)"이라고 비판했다.

'기후'냐 '응징'이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서방이 빠진 딜레마다. 러시아 에너지와 단절을 준비하는 서방은 겨울이 다가오자 기존의 탈(脫)석탄 기조에서 속속 돌아서고 있다. 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가 가동을 중단했던 석탄 발전소를 다시 열거나 증산하기로 한 데 이어 원자력에너지 비중이 70%에 달하는 프랑스마저 가동을 중단한 생아볼드의 석탄발전소를 석 달 안에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이와 관련해 "겨울철을 대비한 일시적 조처"라고 말했다.



"석탄 연료 투자 실현되면 돌이킬 수 없는 온난화"



중앙일보

지난 3월 독일 브룬스부에텔 항구의 모습. 이 지역 인근에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건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AP통신은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빠르게 가열되는 지구'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동시에 과학자들은 '파괴적인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남은 몇 년의 시간을 (허비하며) 카운트다운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의 희생자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싸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G7 지도자들은 당장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보다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추세대로 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온난화'에 갇힐 것을 경고하는 보고서도 나왔다. 이달 초 BBC 보도에 따르면 국제환경단체인 기후행동추적(CAT·Climate Action Tracker)은 미국·유럽·캐나다의 LNG 투자 및 공급 확대, 서아프리카의 가스 프로젝트 부활 등 "모든 계획이 실현되면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온난화에 빠지게 된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각국이 발표한 넷제로 목표를 실천해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1.5도 이내 상승'이라는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 달성이 어려운 상황인데 주요국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기존의 목표에서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가스 파이프라인과 LNG 개발비로 120억 유로(약 16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군사작전 탄소배출량도 문제…우크라전이 촉진



중앙일보

지난달 30일 모로코 남서부 탄탄지역에서 열린 제2차 연례 '아프리카 라이온' 군사훈련 중 모로코 공군 CH-47 치누크 군용 헬리콥터가 이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사작전 중에 배출되는 탄소량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23일 독일 도이체벨레(DW)는 '군사 작전이 배출하는 탄소는 배출량에 집계되지 않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탄소 배출량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달 초 독일 본에서 열린 기후회의에서 발표된 '관점 있는 기후 그룹'(PCG)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전투기 운용 등 군사작전으로 한 해 배출한 직접적인 탄소량은 평균 7000만t으로 미국 전체 배출량의 1% 이상을 차지한다. 2020년 기준 영국군의 한 해 배출량 추정치는 1100만t으로 국가 배출량의 3%를 차지했다. 노르웨이도 2017년 기준 군 배출량이 전체의 1.1%를 차지했다.

전쟁으로 인한 탄소 배출 규모도 만만치 않다. 미군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전쟁에 4억4000만t의 탄소를 배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의 1년 배출량인 7억3000만t(2019년 기준, 환경부)의 60%에 달한다. 사실상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프간 등 전쟁보다 규모가 훨씬 큰 것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러시아발 안보 우려에 서방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9일 영국에 F-35 스텔스기 2개 대대를 추가 배치하고 루마니아에 5000명 이상의 병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 상당한 규모의 병력 추가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4만명인 나토군을 30만명가량으로 7배가량 늘린다는 계획도 예고돼 있다.

PCG 보고서는 "군사작전으로 인한 직접적인 탄소배출 외에도 군 기지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탄소배출량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악셀 미첼로바 PCG 수석 파트너는 "에너지 문제로 G7이 파리 협정에 따른 기후 목표에 도달하기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응징 택한 서방



중앙일보

바이든 행정부에서 에너지 문제를 총괄하는 아모스 호치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 안보 특사.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단 서방은 러시아와의 싸움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아모스 호치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 안보 특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기후 파괴를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불행히도 우리는 단기 또는 중기적으로 천연가스를 대체할 깨끗한 인프라가 없다"고 말했다. 지니 샤힌 민주당 상원 의원(뉴햄프셔)은 "기후변화는 중요한 도전"이라면서도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푸틴을 물리치고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AP에 말했다.

영국 규제 당국은 지난주 영국 아버딘시의 동북쪽 해역에서 영국 가스 생산량의 6.5%를 생산할 수 있는 가스전 개발을 승인했다. 규제 당국은 지난해 10월만 해도 환경 문제를 이유로 이를 승인하지 않았었다. 콰시 콰르텡 영국 비즈니스·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은 이와 관련 "우리는 재생 가능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고 현재 (글로벌) 에너지 수요 규모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에너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 해역에서 필요한 가스를 더 많이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