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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당신들 조치, 도움 안 돼"…대통령에 항의편지 보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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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조규희 기자] [편집자주]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물리고, 가격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가격에 상한선을 정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한달여 사이 국회와 정부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자유'를 표방한 정권이 출범한 뒤 반(反)시장적 포퓰리즘 정책들이 쏟아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에너지 인플레이션 시대를 헤쳐갈 다른 해법은 없을까.

[MT리포트] 反시장 에너지 포퓰리즘④

머니투데이

[골드스미스=AP/뉴시스] 9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골드스미스 외곽에서 작동 중인 원유시추기, 펌프잭 뒤로 해가 지고 있다.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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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급등에 각국 정부들이 에너지 기업들을 상대로 잇따라 '횡재세'(Windfall Profit Tax) 부과에 나서고 있다. 평상시와 다른 비정상적 '초과이익'에 대한 환수 조치다. 정유·석유화학 기업을 대상으로 '양심 있는' 생산량 증가와 투자 확대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너지 기업들은 정부의 이같은 반시장적 행보가 투자를 위축시킨다며 실제로 투자 계획을 철회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3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에너지 기업에 대해 초과이익 환수 조치를 시행한 나라는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5개국이다.

스페인은 지난해 9월, 불가리아·루마니아는 10월, 이탈리아와 영국이 각각 올해 1월과 5월부터 초과이윤 과세를 시작했다. 슬로베니아는 올해 1월 논의가 시작됐으나 아직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영국은 석유 및 가스 업체에 25%의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고 이로 인한 예상 세수 150억파운드(23조8000억원)를 가계에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 재생 에너지 발전사업자들로부터 17억유로(2조3065억원)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해당 국가들에선 초과이윤세가 중소 에너지 기업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온다. 윤원철 전력산업연구회 연구위원은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 아래 민간기업에 부담 떠넘기기, 정부 주도 재정보조 등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며 "정부 의도와는 달리 투자 축소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 정부의 25% 초과이윤세 부과 조치에 대해 에너지 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2030년까지 180억파운드(28조6551억원)를 투자하겠다던 계획을 철회했다. 공식적으론 초과이윤세와 부과와 무관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론 영국 정부가 세금 부과 방침을 발표하자 계획을 번복했다는 점에서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BP는 이메일 성명에서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일회성 세금이 아니라 수년간 부과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새로운 세금과 세금 감면 혜택이 북해 투자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며 초과이윤세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초과이윤세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리시 수낙 재무장관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수낙 재무장관은 초고이윤세 부과가 반기업적 조치라는 비판을 잠재우려는 듯 에너지 기업의 신규 자본지출에 80% 세금 공제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횡재세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집권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윤율 10%가 넘는 정유사에 연방세 21%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항구에서 진행한 인플레이션·공급망 관련 연설에서 "엑손모빌은 올해 신보다 더 많이 돈을 벌었다"라고 비꼬았다. 이어 "석유 회사들이 시추를 하지 않는다"며 "왜 시추를 하지 않는가. 그들은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엑손모빌·셸·BP·셰브런·필립스66·마라톤페트롤리엄·발레로 등 7개 석유 기업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휘발유 가격이 1갤런(약 3.8리터) 당 1.7달러 이상 오르며 정유사들이 기록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며 "기업들은 휘발유와 경유, 기타 정제 제품 공급을 늘리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석유화학 등 에너지 기업들은 강력 반발했다. 셰브런의 마이크 워스 CEO는 21일 바이든 대통령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당신의 정부는 우리 산업(정유산업)을 대체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워스 CEO는 "지난해 쉐브론은 창사 이래 최고의 생산량을 기록했으며 올 1분기에는 일평균 생산량이 작년보다 10만9000배럴 많은 120만 배럴을 생산했다"고 바이든 대통령에 반박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 나라에서 정유공장이 다시 건설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투자 중단을 시사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각국 정부가 세금 등으로 에너지 가격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전세계 에너지 기업들은 탄소중립, 친환경 경제 전환 기조로 피해를 봐왔다"며 "일방적 과세가 아니라 이번 위기를 계기로 에너지 기업이 신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확대토록 유도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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