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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언젠가 박효신 위한 뮤지컬 만들고 싶다” [웃는 남자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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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사진=임형택 기자

한국인이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에겐 언제나 이런 애칭이 따라 붙는다. 과장한 표현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만 ‘웃는 남자’ ‘마타하리’ ‘데스노트’ ‘지킬 앤 하이드’ 등 와일드혼이 작곡한 뮤지컬 네 편이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 매일 7000~8000명의 한국 관객이 그가 쓴 뮤지컬을 본다고 한다. “한국 관객들과 제 음악 사이에 낭만적인 관계가 만들어졌어요.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와일드혼을 최근 서울 도곡동 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만났다.

“국보 박효신, 킹콩 박강현, ‘한국 동생’ 김준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를 뚫고 한국에 도착한 와일드혼의 시계는 바쁘게 돌아간다. ‘웃는 남자’ ‘데스노트’ 등 자신이 작곡한 뮤지컬을 부지런히 보고 있다. 관람 소감을 묻자 대뜸 “(박)효신은 국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효신의 그윈플렌(‘웃는 남자’)을 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와일드혼은 “박효신은 아름다움, 힘, 열정, 가사를 해석하는 능력과 독특함을 모두 지녔다. 박효신처럼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다”며 “언젠가는 그를 위한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2018년 초연부터 ‘웃는 남자’에 개근한 박강현에겐 “킹콩”이란 애칭을 붙였다. “왜 킹콩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하. 박강현은 그윈플렌을 연기하며 점점 더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기 인생 경험을 연기에 담기 시작했어요.” 같은 배역에 캐스팅된 박은태의 공연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가 출연하는 다른 작품을 봤더니, 그윈플렌을 훌륭히 소화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칭찬했다. ‘데스노트’ ‘엑스칼리버’ ‘드라큘라’ 등 여러 작품으로 호흡을 맞춘 김준수와는 “코리안 브라더(한국 동생)”라고 부를 만큼 절친한 사이다. 와일드혼은 “아직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김준수와 새 작품을 함께할 것 같다. 보면 감탄이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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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처음 공연된 뮤지컬 ‘웃는 남자’ 속 배우 박강현. EMK뮤지컬컴퍼니

와일드혼이 만드는 선율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중독성이 강해 한국 관객들의 감성과 합이 잘 맞는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내 음악이 동북아에서 특히 인기인 이유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와일드혼은 “나는 영혼을 담은 음악을 좋아한다. 그리고 한국엔 영혼을 담아 노래하는 훌륭한 배우들이 많다.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은 없다고 본다”고 짚었다. 또, “팝 작곡가로 일할 때 선배들이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곡을 써야 한다’고 가르쳐줬다. 미국 바깥에 있는 관객을 생각하며 곡을 쓰도록 일찍부터 훈련받은 셈”이라고도 말했다.

“엉망 된 내 나라”…그가 ‘모두의 세상’을 연주하는 이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인 ‘웃는 남자’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쓴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와일드혼은 “‘웃는 남자’에는 극적인 인물이 많고, 그들이 아주 위험하거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 처하는 일도 잦다.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곡을 쓰기는 쉬웠다”고 했다.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대표곡 ‘모두의 세상’과 ‘그 눈을 떠’, ‘웃는 남자’는 박효신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넓은 음역을 써야 하는데다 세 곡이 연달아 나오다시피 해 “오페라를 부르는 것만큼” 난이도가 높지만, 와일드혼은 “박효신은 말할 것도 없이 잘 소화해낸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신분 사회에서 인간 존엄과 평등을 역설하던 원작 소설의 메시지는 자본으로 계급이 매겨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래서일까. 와일드혼은 고국인 미국에서 공연할 때마다 ‘모두의 세상’을 연주한다고 했다. “불쌍한 내 나라가 정치적으로 엉망이 됐어요. ‘모두의 세상’이 미국에 좋은 메시지를 주길 바라면서 항상 그 곡을 연주합니다.” ‘모두의 세상’의 영어 제목은 ‘아이 쿠드 체인지 더 월드’(I Could Change the World).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귀족이 된 그윈플렌이 가난한 자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부르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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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와일드혼. 사진=임형택 기자

“브로드웨이가 한국인을 배척한다? 몇 년 만 더 두고 보자고요”

와일드혼은 도전을 좋아하는 음악가다. 유년 시절 혼자 피아노를 익혀 팝 작곡가가 됐다. 여러 히트곡을 남긴 뒤에는 돌연 뮤지컬에 입문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세상과의 통로가 차단됐을 때도 그는 도전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강에 관한 교향곡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아 ‘다뉴브 심포니’를 썼다. 그가 만든 첫 교향곡이다. 와일드혼은 “오는 11월3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다뉴브 심포니’를 초연한다”며 “나는 극장 음악에 뿌리를 두지 않았기에 이번 공연이 더욱 설렌다”고 했다.

그는 한국 배우들과도 새 도전을 시작하길 바랐다. “제가 아끼는 한국 배우들을 브로드웨이로 데려 가자고 한국 프로듀서들에게 제안했어요. 그런데 다들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더군요. 물론 브로드웨이에선 경쟁이 엄청날 거예요. 연기와 노래도 모두 영어로 해야 하고요. 하지만 재능으로만 본다면 브로드웨이에 거뜬히 진출할 한국 배우가 많습니다.” 취재진 사이에서 ‘브로드웨이가 비영어권 배우들에게 박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자, 와일드혼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데스노트’ 같은 작품이 브로드웨이로 수출되면 아시아 배우들이 주연을 맡겠죠. 앞으로 몇 년 만 더 두고 보자고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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