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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시인 꿈꾼 '韓고교 자퇴생'은 어떻게 '수학 노벨상'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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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즈상 수상' 허준이 美 프린스턴대 교수

서울 상문고 자퇴 후 검정고시로 서울대 진학

대학 6년 다니고서야 시작한 수학이 이룬 쾌거

6일 오후 영상인터뷰, 8일 귀국 예정

노컷뉴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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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구단은 초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외우고 한국 학교의 수학과정에선 큰 두각을 보인 적 없던 그. 시인이 되겠다며 고등학교를 떠나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간 그.

수학계 최고 영예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허 교수는 국내 방송에 종종 소개되는 '수학 영재' '신동' '천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입시 위주의 한국 학교 수학시험에서 허 교수는 그다지 비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의 자녀인 허 교수는 1983년 부모의 미국 유학시절 태어났다. 두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뒤 서울 방일초, 이수중, 상문고를 다녔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인을 꿈꾸며 학교를 자퇴했다. 학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을 읽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었다는 이유다.



자퇴한 후론 여느 고등학생처럼 친구들과 PC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검정고시와 재수학원을 거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다. 좋아하던 과목인 과학과 글쓰기를 접목해 과학기자를 꿈꿨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는 어려웠다. 허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목표도 점점 잃고 방황하다 결국 3학년 1학기에 모든 과목에서 D와 F를 받았다. 8개월간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정도로 우울증에 걸렸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학부 마지막 학기 들었던 강의가 전환점이 됐다. 서울대 석좌교수로 초빙된 일본의 세계적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91)와 만나게 된 것이다.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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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39·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 호암재단 제공


허준이(39·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 호암재단 제공
처음엔 과학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뷰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들었던 히로나카 교수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점차 히로나카 교수와 점심을 함께하고 수시로 만나는 돈독한 사이가 됐다. 학부를 마친 허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유학길도 쉽지 않았다. 세계적 석학인 히로나카 교수의 추천서를 포함해 12군데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딱 한 곳,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만 허 교수를 불렀다. 학부만 6년을 다닌 데다 성적도 좋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일리노이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수학계의 오랜 난제인 리드 추측을 풀었다. 남보다 늦게 수학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그는 박사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수학자가 돼 있었다.

허 교수는 한국의 '수학시험'에선 특출난 학생이 아니었지만 읽고 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농축해온 것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 교내 언론에서 일하기도 한 그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을 글과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평가한다.

국제수학연맹은 4년마다 세계수학자대회를 열어 만 40세 미만의 수학자 중 필즈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노벨상엔 수학부문이 없어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36년 시상이 시작된 후로 올해까지 수상자는 모두 64명이다. 아시아권 수상자는 허 교수를 포함해 9명뿐이다. 최근 30년 내엔 2014년 이란 테헤란공대 출신의 고(故) 마리암 미르자하니 교수가 유일하고 지금까지 일본은 3명, 중국은 1명을 배출했다.

이번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 수학계의 겹경사다. 지난 2월 국제수학연맹은 한국 수학의 국가등급을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상향한 바 있다.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은 6일 오후 2시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허 교수와 영상 브리핑을 진행할 계획이다. 허 교수는 8일 오전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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