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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제2의 필즈상' 나오려면…허준이 "젊은 수학자들, 여유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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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한국계 최초' 필즈상, 허 교수 온라인 기자회견…"수포자는 아니었다, 롤모델은 여럿"

"시를 쓰고 싶었지만…수학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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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수상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영상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7.06./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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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수학자들이 부담을 느껴 단기 목표를 추구하는 대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안정적인 환경이 제공되기를 바란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영예를 안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는 '제2의 허준이'가 나오기 위한 조건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젊은 수학자들이 너무 잘해주고 있고, 나도 그 중의 하나"라며 겸양을 잊지 않았지만, 모든 기초과학 성장의 토양인 자유로운 연구환경의 필요성에 공감한 발언이다.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리고 있는 핀란드 헬싱키에 머물고 있는 허 교수는 6일 오후 고등과학원과 대한수학회가 주최한 온라인 화상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다. 부담감도 있지만 지금처럼 찬찬히 꾸준하게 공부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끊을 수 없는 수학 중독…'수포자'는 아니었다"

필즈상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내의 무덤덤한 반응을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허 교수는 "올해 초 묘한 시간대 국제수학연맹(IMU)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를 깨워서 말해야 하나 10분 정도 고민하다 얘기했더니 '응,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다시 자더라"고 덧붙였다.

연구 과정에서의 롤모델에 대해선 "수학문제를 풀고 살아가면서, 딱 필요한 점을 가르쳐주는 선생님과 동료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영웅으로 생각하는 그 분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작은 수첩이 있다"며 "그들이 모두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친구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을 관찰하면, 마치 배우처럼 따라하고 비슷한 생각으로 말해보면서 살아 왔다"고 전했다.

십수년 간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수학의 매력에 대해선 "현대 수학에선 공동 연구가 활발하다. 동료들과 함께 생각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멀리, 깊이 갈 수 있다"며 "그 경험이 큰 즐거움을 주고,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을 더해 수학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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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최재경 고등과학원장이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허준이 교수 2022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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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교부터 대학원 석사까지 국내 교육을 받은 그는 한국 교육에 대해 "굉장히 다른 종류의 40~50명 학생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은 좋을 때도 있고 다툴 때도 있지만, 그때만 가능했던 경험들이 지금의 나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좋은 경험"이라며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유년시절이었다"고 추억했다.

일각에 알려진 것처럼 '수포자'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중학생 때는 아니었지만, 고등학생 시절부터는 수학을 굉장히 재밌어했고, 열심히 했고, 충분히 잘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교를 중퇴하고 잠시 방황했던 시절도 소개했다. 그는 "어렸을 때 가장 열정이 많았던 분야는 글쓰기였고, 그중에서도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면서도 "타고난 글쓰기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무엇을 하면 현실적으로 적당히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재경 고등과학원장 "제2의 필즈상, 첫 노벨상 나올 것…국운이 상승"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재경 고등과학원장은 "허 교수는 시를 쓰기 위해 고교를 자퇴했다고 하는데, 시는 언어를 꿰어 만든 아름다움이고 수학은 논리를 엮어 만든 아름다움(이란 점이 유사하다)"라면서 "허 교수가 대한민국에 필즈상을 안겨줘 감사하다"고 소개했다.

최 원장은 또 "고등과학원은 호기심의 최전선"이라며 "인류에게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유용성보다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다 뜻밖에 얻게 되는 만큼, 수학과 기초과학의 연구결과에 성급하게 기대를 하기보단 꾸준히 기다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과학기술은 모방에서 창조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제2의 필즈상, 첫 노벨상 수상자도 곧 나올 것이다. 한국의 국운이 상승하고 있다"고 벅찬 소회를 덧붙였다.

전날 허 교수는 전날 세계수학자대회 126년 역사에서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필즈상은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수학계 난제를 푼 40세 미만 젊은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노벨상'이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초중고 대학 교육을 모두 한국에서 받았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고교를 중퇴했지만, 다시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고, 과거 필즈상 수상자 헤이스케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가 수학에 빠진 계기였다. 남들보다 속도는 더뎠지만, 자신만의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 온 끝에 필즈상을 거머쥐었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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