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한국산 싱글몰트 위스키 만든 김창수 대표 “십년대계 완성이 ‘김창수 위스키’, 앞으로 10년은 해외 개척에 올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위스키가 다시금 핫한 술로 떠올랐다. 인기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위스키 수입액은 1억7534만달러, 전년 대비 32.4% 증가했다. 2007년 2억6457만달러로 정점을 찍은 국내 위스키 시장은 지난해 V자 반등을 시작했다. 올 1분기 수입액도 5219만달러로 전년 대비 61.7%나 늘었다. 수입량도 4737만t으로 같은 기간 45.9%나 증가했다. 도대체 위스키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위스키 수입사의 한 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고 온 경기침체로 위스키 수입량이 급감했고, 2016년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카운터펀치를 날렸다”며 “아이러니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홈술이 떴고, SNS로 소통하는 MZ세대들이 좀 더 ‘힙’한 술로 시선을 돌리면서 위스키, 그중에서도 싱글몰트 위스키가 확 떴다”고 설명했다. 싱글몰트는 100% 보리만 사용한다. 블렌디드 위스키가 다른 증류소의 원액을 섞어 완성한다면 싱글몰트는 전혀 섞지 않은 위스키다. 블렌디드보다 맛과 향이 다채롭고 색이 고급스럽다.

싱글몰트에 대한 MZ세대의 관심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오픈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잘나가는 브랜드의 싱글몰트를 구입하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은 위스키 시장에 새로운 히트 공식이 됐다. 그리고 올 4월 28일, 바로 그 MZ세대들이 30대 한국인 위스키 장인이 만든 싱글몰트를 사기 위해 새벽 오픈런에 나섰다. 그들이 오매불망 기다린 위스키는 ‘김창수 위스키’.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의 김창수 대표(36)가 만든 한국산 싱글몰트다.

국내 시장에 336병만 출시된 이 한정판 싱글몰트의 가격은 22만원대. 결코 싸지 않은 가격대임에도 출시 열흘 만에 완판됐다. 그것만?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리셀가는 판매가의 열 배를 넘어 현재 200만원대에 이르고 있다. 라벨에 ‘우리나라도 위스키 만든다’라고 손 글씨로 쓰인 이 촌스러운(?) 디자인의 위스키에 MZ세대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도 김포 끝자락에 자리한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에서 만난 김 대표는 꽃향기를 머금은 200여 개의 오크통 사이에서 작업이 한창이었다. 검은 티셔츠에 머리를 위로 질끈 묶은 품이 영락없는 MZ세대였다.

매일경제

스코틀랜드 증류소 102곳을 누빈 청년

그는 “위스키가 그냥 좋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 동기가 당시 20대 중반의 청년을 스코틀랜드로 이끌었고, 132일 동안 102곳의 위스키 증류소를 누볐다. 경비를 아끼려고 중고나라에서 산 자전거는 고장 나기 일쑤였지만 여행을 멈출 순 없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다 퇴짜를 맞았어요. 이미 대기업화돼 있어서 제가 들어갈 구멍이 없더군요. 결국 그곳의 한 위스키 바(Bar)에서 만난 인연이 절 또 다른 기회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글래스고의 한 바에서 만난 일본의 치치부 증류소 직원의 주선으로 연수를 받게 됐다. 그때의 기억과 경험은 김창수 증류소의 토대이자 자양분이 됐다. 2020년 6월 문을 연 이 증류소 한쪽엔 김 대표가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한 증류기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모든 설비를 그의 친구이자 유일한 직원과 함께 설치하고 운영했다.

“나가서 밥 먹을 시간도 돈도 변변치 않아서 그동안 컵라면 먹어가며 일해 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위스키를 만들 땐 정말 힘들어서 이렇게 힘든 과정이 혹 자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 이젠 가끔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곤 합니다.”

아래는 김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동안 여의도에서 바를 운영하다 접었는데, 다시 문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5월에 영등포시장 옆에 문을 열었어요. 제 위스키가 출시되고서 여러 바에 납품하긴 했는데 소량이라 한 곳에 한두 병 나가는 게 전부거든요. 대부분 하루 이틀 만에 소진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맛도 보여드리려고 열게 됐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그곳에 있습니다.

▶김창수 위스키의 리셀가도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최근에 확인했더니 어떤 곳은 250만원이나 되던데요. 제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커서 놀랐습니다.

▶그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최근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좋아하는 연령대가 넓어진 것도 그렇고, 또 위스키를 출시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맛에 대한 검증을 수없이 거쳤습니다. 맛만큼은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거란 확신이 있었는데, 대중의 평가도 같아서 가치가 좀 더 올라가지 않았나 싶어요.

▶일각에선 저숙성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하던데.

▷2020년에 양조장 문을 열었으니 저숙성인 건 당연하죠. 고숙성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부족할 수밖에요. 하지만 숙성을 떠나 기본적으로 맛이 괜찮은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코틀랜드처럼 3년 이상 숙성된 위스키도 순차적으로 나올 겁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의 기후가 위스키 만들기에 오히려 적합하다던데요.

▷제가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우리와 스코틀랜드는 기후 자체가 너무 달라서 만들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한 10년 사이에 전 세계에 수십 개의 증류소가 생겼어요. 특히 대만, 인도, 일본은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완전히 다른데도 맛있는 위스키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도 위스키가 생소한 분들도 있을 텐데, 유명세를 탄 지 10년이 좀 넘었어요. ‘암룻’이라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인도, 일본, 대만이 3강이랄 수 있죠. 스코틀랜드와 전혀 다른 기후에서도 충분히 다른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에요.

▶오래 숙성된 위스키가 비싸고 맛있다는 공식은 이제 깨질 때가 된 거군요.

▷위스키나 와인은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가치를 매기는 방법 중 가장 직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게 숙성 연수죠. 판매자 입장에서도 편한 방법이고요.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관념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위스키도 저숙성이지만 평가가 좋은 제품이 늘고 있어요.

매일경제

영세한 증류소 하지만 미래는…

▶김창수 위스키는 사실 출시 전엔 거의 알려진 게 없었어요. 홍보도 없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셈인데.

▷판매처 정도만 알리고 홍보는 일부러 안 했어요. 위스키를 아는 분들 사이에선 이미 알려지기도 했었고, 워낙 규모나 생산량이 적어서 오히려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위스키 도수도 높고 맛도 독특해서 대중적인 홍보는 아예 안 했습니다.

▶오픈런에 나선 이들 중엔 MZ세대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점이에요. 젊은 층들이 소비하다보니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도 원하는 건 어떻게든 찾아서 적극적으로 소비합니다. 정보력이 훨씬 빨라요.

▶첫 번째 김창수 위스키를 평가한다면.

▷숙성 연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작업이었다고나 할까. 누가 마셔도 맛있는 스타일의 싱글몰트 위스키.

▶아직은 영세하다고 소개했는데, 첫 위스키를 판매하고 나서 수입은 어느 정도였나요.

▷수입은 거의 없습니다. 솔직히 이것저것 따져보면 오히려 적자죠. 어떤 분들은 비싸다고 하고 또 업계 분들은 왜 그리 싸게 내놨냐고 하세요. 유통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22만5000원부터 24만5000원까지 가격이 책정됐던데, 제가 출고한 가격은 부가세 빼고 18만원입니다. 한 병을 팔면 제게 18만원이 들어오는 거죠. 여기서 주세, 교육세 등등을 제하면 병당 약 8만원이 수중에 떨어지는데 병 값, 라벨 값, 디자인, 유통비, 물류비, 생산비, 재료비, 인건비 등등을 빼면… 아직은 적자죠.

▶아니 그럼 남는 게 없는 장사를 왜 하는 겁니까.

▷앞으로를 보고 합니다.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빚만 십 수억이에요. 증류소를 운영하는 데 한 달 비용이 수천만원씩 들어갑니다. 1년이면 몇 억이 되죠. 원액을 담는 캐스크들도 대부분 수입하거든요. 지금 거의 2년간 운영했는데, 그동안 수입이 2000만원대예요. 10배 이상의 돈을 쓴 셈이죠. 그래도 앞을 보고 갈 겁니다.

▶제품이 출시된 후 투자자가 꽤 나섰을 법한데.

▷네, 많은 연락이 왔어요. 벤처캐피털이나 지자체 등지에서 수많은 제의가 왔고, 대기업들도 관심이 높아져서 제게 자문을 해달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지금도 꾸준히 자문을 하고 있어요.

▶고려하는 투자 제안도 있는 겁니까.

▷증류소를 차릴 때부터 전 이곳이 쇼케이스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독립영화를 만들어 성공하면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질 거라고 확신했어요. 여기선 실력을 입증하자고….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는데, 아마 올해 당장 이전해 규모를 키운다 해도 제품 생산까지 3~4년은 걸릴 겁니다. 간섭이 없다면.(웃음)

▶두 번째 김창수 위스키가 곧 출시된다던데.

▷이르면 8월, 늦으면 9월에 나올 예정이에요. 첫 제품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입니다. 숙성 연도는 크게 차이가 없고요. 맛과 재료는 전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 알려달라는 분들이 많은데, 벌써부터 첫 작품의 아류들이 나오더군요. 따라서 하는 곳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한 가지만 알려드리면, 피트향은 전혀 없습니다.

▶해외 혹은 면세점에서 김창수 위스키를 만날 수도 있는 겁니까.

▷앞으로 시간이 필요할 뿐 충분히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로 인정받으려면 3년 이상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곳에서 3년짜리가 나오면 해외진출에 나설 생각입니다. 위스키 사업 안착에는 10년 정도 보고 있어요. 현재까지 10년 대계로 첫 작품이 나왔다면 지금부터 10년 대계로 해외시장을 개척할 생각입니다. 아, 제가 여러 위스키 평가 사이트에 저희 위스키를 보냈는데 최근에 위스키 펀이란 곳에서 87점을 받았어요. 웬만한 18년, 21년산 위스키에 버금가는 점수라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위스키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디 내놔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위스키지만 향후 소주나 막걸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주에도 체계화된 시스템을 만들어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이미 매진됐다는 김창수 위스키를 살짝 맛볼 수 있었다. 병입이 잘못돼 반품된 제품이라는데, 어쨌거나 살짝 오른 과일향이 입맛을 돋웠다. 한 모금 머금으니 입안에 후욱 하고 상큼한 과일향이 퍼지더니 피트한 향이 치고 들어왔다. 도수는 54.1도로 높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알코올의 과한 향이나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2호 (2022년 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