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복구 위한 ‘루가노 선언’ 발표...우크라 “재건비용 980조원 추산”
이 선언문은 스위스와 우크라이나 정부 공동 주최로 4~5일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의 결과물이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은 폐막 회견에서 “이틀간 회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큰 틀의 원칙을 정했다”며 “이례적으로 많은 국가가 참여해 우크라이나 지원과 재건 사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성원 덕분에 우크라이나 재건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우크라이나를 가능한 한 빠르고 지속 가능하게 현대화하고 디지털 국가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루가노 선언에는 재건 회의 전신(前身)인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에서 논의한 정치·경제·사회 개혁안이 대거 반영됐다. 참가국들은 선언문에서 “재건 사업은 우크라이나 사회 전체가 참여해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제사회와 민간 기업이 파트너십을 맺어 함께 참여하고, 사업 전반에서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재건 사업의 진행 과정을 디지털화(化)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과거 우크라이나 정치를 이른바 ‘올리가르히(신흥 재벌)’가 좌지우지하면서 심각한 정·경 유착이 발생하고 각종 부패 문제가 잇따랐던 전력을 감안한 것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서방 빅테크 기업의 지원을 받아 이른바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정부’를 이룩하고, 그 영역을 디지털 화폐와 교육, 보건 서비스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논의됐다. 또 사법 체계에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도입해 재판 과정에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우크라이나가 재건 사업을 주도하되 국제 파트너의 참여가 보장돼야 하고, 탄소 중립 등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도 포함됐다.
이번 회의에선 특히 한국의 경험이 재건 사업 모델 중 하나로 언급됐다. 1950년부터 3년간 북한과 중공의 침공으로 초토화됐던 한국이 50여 년 만에 세계 주요 국가로 발돋움한 과정과 전략을 참고할 만하다는 것이다. 앞서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 6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독재 국가와) 참혹한 전쟁 후 맨주먹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로 부상한 한국의 재건 스토리는 우리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5일 전체 회의 연설에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나와 1억달러(약 1300억원) 규모의 정부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들어갈 재원은 대부분 해외 투자로 충당할 전망이다. 슈미갈 총리는 “EU와 영국이 이미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고, 세계은행과 유럽투자은행에서 받을 차관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서방 제재로 동결된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 올리가르히의 해외 자산을 압류해 우크라이나 재건 자금으로 써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재건 비용을 약 7500억달러(약 978조원)로 추산하고, 이 중 3000억~5000억달러를 러시아 해외 자산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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