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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소주성’ 홍장표 사의…친문 기관장 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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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겨냥해 “KDI와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나팔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법을 바꾸라”고 주장했다. 정작 그는 문재인 정부 때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을 주도했고, 지난해 KDI 원장 임명 때부터 문 정부 ‘코드 인사’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홍 원장의 사의 표명이 문 정부에서 임명된 다른 공공기관장의 줄사퇴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6일 홍 원장은 ‘총리 말씀에 대한 저의 생각’이란 제목의 입장문에서 “총리가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사이에 다름은 인정될 수 없다며 저의 거취에 대해 말한 것에 크게 실망했다”며 “생각이 다른 저의 의견에 총리가 귀를 닫겠다면 KDI 원장으로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28일 한 총리가 취임 1개월 기념 기자단 만찬 자리에서 한 발언에 대한 답 성격의 글이다. 당시 한 총리는 홍 원장 거취에 대한 질문에 “바뀌어야지”라며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으로 앉아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이날 사의를 표명하면서 KDI를 겨냥한 감사원의 자료 제출 압박이 있었다는 점도 시사했다. “총리가 저의 거취에 관해 언급할 무렵 감사원이 KDI에 통보한 이례적 조치도 우려된다”고 밝히면서다. 그는 KDI 같은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도 강조했다.

하지만 홍 원장 스스로가 문 정부 색채가 뚜렷한 인물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임명 당시 연구 활동의 독립성·객관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거셌다.

그는 2017년 문 정부 출범 이후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문 정부 핵심 경제정책의 기조인 소주성 설계와 실행을 주도했다. 이런 그가 지난해 5월 경제정책 분야의 대표 싱크탱크인 KDI 원장에 임명되면서 ‘낙하산’ ‘알박기’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선거가 10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 정부 색깔이 뚜렷한 인사를 임기 3년짜리 원장 자리에 앉힌다는 비판이었다.

홍 원장은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물러나지 않고 업무를 계속해 왔다. 하지만 결국 윤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자율성을 얘기했지만 홍 원장은 사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며 “지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인 소주성을 설계한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홍장표 “총리가 거취 거론해 실망” 권성동 “민생 망친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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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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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연구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정부 정책 개발을 뒷받침해야 하는 국책연구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한 기관장 인사제도 개편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홍 원장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알박기 인사들은 모두 명심해야 한다”며 “고위 공직자는 명예와 봉사를 위한 자리다. 잘못된 정책과 이념으로 민생을 망쳤다면 책임지고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앞서 2일엔 “문재인 정부 임기 말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는 기관장급 13명을 포함해 이사와 감사 등 총 59명에 이른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정권 교체가 됐음에도 버티기를 하고 있다”고 경고를 날렸다.

홍 원장의 사의 표명에 따라 문 정부에서 임명된 다른 공공기관장의 사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정부 임기 후반기에 이뤄진 ‘코드 인사’ 후폭풍이다.

황덕순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현재 한국노동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이태수 꽃동네대(현 가톨릭꽃동네대)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실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조세팀장이었던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국정기획자문위원을 지낸 강현구 국토연구원장, 대표적 친노·친문 학자로 꼽히는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청와대 중소벤처비서관 출신 주현 산업연구원장 등을 선임할 때도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이들의 사퇴를 강제하긴 어렵다. 하지만 학계에선 문 정부 경제정책 실패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관료나 학자를 보은인사하듯 핵심 국책연구기관장에 임명하는 것이 타당했냐는 비판이 나온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2년 이상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알박기’란 시각도 있다.

지난 5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와 정책 보조를 맞춰야 할 공공기관·공기업 경영진이 전 정권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국정 운영의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똥배짱으로 버티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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