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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얼음이 녹자 싸움이 벌어졌다…푸틴 vs 나토 '북극해 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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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고 있는 북극권에서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북극해는 러시아·미국·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스웨덴·핀란드 등 8개국이 접하고 있는데, 최근 스웨덴·핀란드가 새롭게 나토에 가입하면서 자원·항로 개발 등을 놓고 7개 나토 회원국이 러시아와 대결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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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방부가 지난 1월 해군 순양함이 북극 훈련을 위해 출항하고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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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러시아는 노르웨이와 접하는 바렌츠해부터 미국 알래스카와 가까운 베링해협까지, 북극해 해안선의 53%(2만4140㎞)를 차지하며 이 지역 패주를 자처해왔다. 서방은 북극 환경·기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극이사회(북극권 8개국 협의체)를 통해 러시아와 협력해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립을 유지했던 스웨덴·핀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나토 가입에 나섰으며, 지난 5일(현지시간) 나토 30개 회원국 대사들은 두 나라의 가입의정서에 서명을 마쳤다. 최종 가입에 필요한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 절차가 6~8개월 남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북극에서 러시아 활동에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극해를 활용하는 동북항로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었다. 원유·원자재의 유럽 수출이 막히자 러시아 북부 해안을 거치는 아시아 수출에 눈을 돌렸다.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가 러시아엔 복이 됐다. 두꺼운 얼음이 녹는 여름철을 포함해 연 5개월만 이용 가능했던 동북항로를 2020년부터는 7개월 이상 활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극동 매체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올해 1∼5월 동북항로를 통한 해상 운송량은 1300만t을 기록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동북항로 전체 운송량(3500만t)의 35%를 넘는 규모다. 제재로 인한 타격이 거의 없었단 얘기다. 러시아는 쇄빙선 에스코트 없이 단독으로 운송할 수 있는 핵 추진 쇄빙 화물선까지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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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얼음이 녹으면서 심해 자원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수출 주력 상품인 원유 생산이 늘고 있다.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투데이(RT)은 지난 4일 "러시아 국영 석유업체 로스네프트가 북극 페초라해에서 8200만t 규모의 유전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북극에서 발견된 60여개 유전·천연가스전 중 40여개가 러시아에 속해있다.

러시아는 이 같은 경제적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지난 2월 말 "러시아가 지난 2007년부터 소련 시절 설치한 북극 전초기지를 보수하는 등 북극해를 따라서 군사력을 광범위하게 증강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북극지대 주요 군사시설이 24곳에 이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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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러시아는 지난달 1일 2030년까지 북극지대 활주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에 완전히 가동된 최북단 기지 나구르스코예 공군기지에 활주로를 더 만들고, 1990년대에 버려졌던 다른 북극 활주로 7개를 재건할 예정이다. 또 북극에서 핵추진 어뢰, 최첨단 방공미사일 등 첨단무기를 시험하고 있다.

올 초에는 해상훈련 영역을 북극해권으로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핵 추진 잠수함 3척이 1.5m 두께의 얼음을 깨고 부상하는 모습이 담긴 북극해 종합 군사 훈련을 공개해 주목받았다.

러시아의 북극권 야욕이 커지자 나토도 바짝 경계하고 나섰다. 지난 3월 노르웨이에서 28개국 3만5000여명의 나토 병력이 육해공 합동 동계 훈련을 실시했다. 나토가 30년 만에 실시한 최대 규모의 북극 훈련이었다. 같은 달 미국·캐나다 공군도 합동으로 캐나다 북극 전역에서 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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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는 지난 3월 노르웨이에서 30년 만에 최대 규모의 북극 훈련을 실시했다. 나토 합동 동계 훈련에 앞서 옌스 스톨텐베르그나토 사무총장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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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북극이사회 소속 서방 7개국은 지난달 초 러시아를 제외하고 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2년 임기의 의장국을 맡고 있던 러시아는 "북극의 유일한 정부 간 협력체가 정치화됐다"면서 크게 반발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민수 경제전략연구 본부장은 "북극권이 이토록 긴장이 높아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러시아가 ‘근(近) 북극 국가’로 나선 중국과 연합해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북극이사회는 환경·기후 이슈를 주로 논의했지만 새 협의체는 안보나 군사적 논의가 포함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북극권에서 나토와 러·중의 대립은 전 세계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극지연구소 정책개발실의 서현교 박사는 "북극은 환경·기후 이슈가 가장 중요한데 현재는 정세 이슈에 다 엉켜버렸다"면서 "북극권 절반을 차지한 러시아가 기후 변화 협의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지구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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