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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겠다’는 백신접종후 사망자 아들[기자의 눈/조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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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3일만에 숨진 경찰관 아버지

‘인과성 없다’에 국가 믿음 사라져

정부는 ‘접종의 책임’ 말할수 있나

동아일보

조응형·사회부


“엄마, 우리 이민 가면 안 돼요?”

열다섯 살 장세호 군은 요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버지 장호기 씨(사망 당시 51세)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화이자 백신 2차 접종을 한 뒤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급성 심장사였다.

경찰이던 장 씨는 사회필수인력으로 분류돼 일찌감치 백신을 접종했다. 세호 군은 “경찰이 먼저 맞아야 국민들도 맞는다”던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에서 별다른 이상 없이 건강하던 장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유족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접종 이상반응을 신고했지만 질병관리청은 제대로 된 설명 한번 없이 3개월 뒤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5줄짜리 결론만 전해 왔다. 통지문에는 인과성 여부를 누가, 어떻게 논의했다는 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어머니 김민경 씨(46)가 질병청에 문의했을 때 “지침에 없어 인정해줄 수 없다”는 답만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정부에 대한 세호 군의 불신도 커졌다. 김 씨는 “아이들에게 내색은 안 하지만 나도 국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부작용을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던 정부는 사망과 백신 접종 사이의 인과성 입증을 블랙박스에 넣고 철저하게 봉인했다. 본보가 어렵게 입수한 예방접종 피해조사반과 피해보상 전문위원회의 백신 인과성 심의 녹취에는 전문가들이 여러 근거를 들며 ‘인과성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데도 “해외에서 부작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과성 없음’ 결론을 내리는 모습이 반복됐다. ‘K방역’을 홍보하던 정부가 이상반응 인과성 검증에선 해외 기준만 앞세운 것이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행보를 두고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이숭덕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최근 피해보상 전문위원직을 사임하며 동료 위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모든 약물이 그렇듯 코로나19 백신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역시 불완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과성) 결정이 불완전하단 사실을 받아들이고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질병청은 ‘불완전’을 인정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을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말을 믿고 백신을 접종한 후 이상반응을 겪은 국민들에게도 “결정된 대로 따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계속 이런 방식으로 정부와 백신의 신뢰를 높일 순 없다. 20일은 장호기 씨의 첫 번째 기일이다. 한국을 떠나겠다는 세호 군에게, 정부는 ‘접종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지금이라도 돌아봤으면 한다.

조응형 사회부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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